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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수 살인 사건 ㅣ 비명과 침묵 4
사카구치 안고 지음, 정혜원 옮김 / 니케북스 / 2026년 8월
평점 :
3편의 단편이 실린 추리 소설집 <투수 살인 사건>을 읽고 난
느낌은 다소 “비정하다”라는 것이다. 사람을 죽이는 데 있어서
죄책감이나 후회 같은 것을 찾아볼 수 없는 인간들의 모습이
놀라웠고 전쟁이 얼마나 쉽게 인간의 삶을 망가뜨리는지를 볼 수 있었다.
본격적으로 단편들에 들어가기 전에 저자 “사카구치 안고”에
대한 작가 소개 글을 읽어봤는데, 내가 느낀 게 틀린 게 아니란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인간의 ‘타락’을 부정이 아닌 본질로
바라본다는 점”과 “타락을 직시하고 통과할 때 비로소 재생의
가능성이 열린다"라고 봤다고 한다.
한마디로 말해서 인간은 본래적으로 악하게 태어났고
그런 본질을 우리가 깨달아야지 진정 거듭날 수 있다
라고 말한 것으로 나는 이해했다.
표제작 <투수 살인사건>은 개인적으로 어떤 특정 물건
때문에 살인범을 찾아낸 경우이다. 보일 듯 보이지 않게
단서라는 퍼즐 조각을 이곳 저곳 흩트려놨다는 점에서
정통 추리소설의 느낌이 많이 났다.
불륜에 휘말린, 촉망받는 신인 투수의 변사 사건...
그의 사생활과 관련된 사람들과 그의 뒤를 쫓는 스카우터들과 기자들
의 엇갈리고 스치는 행보.. 이 속에 범인이 있다?!
그리고 당연히 감정 문제일 것이라고 생각한 “나”라는
독자의 기대감을 완전히 무너뜨린 작품이다.
<그림자 없는 인간>에서는 누군가의 때이른 죽음에
그와 관계있는 모든 사람들의 이익이 걸려있게 된다.
한마디로 모두가 범인일 수도, 아니면 아무도 범인이
아니라 진짜 병사일 수도 있는 상황.
그런데 좀 잔인하기까지 하다고 느낀 점은 뭐냐면
분명 혈육인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서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하는 남매의 모습이었다. 와.. 이건 아닌데..
라는 느낌과 참으로 비정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암호>에서는 놀라운 반전이 드러나는데
세 편 중에서는 제일 인간적인 작품이라 느꼈다. 읽는 와중에
눈물이 덜컥 솟아올랐다. 전쟁터에 나갔다가 돌아온 야지마는
난리 통에 아내가 실명을 하고 남매는 실종 상태인 것을 알게 된다.
그러던 와중에 헌책방에서 낯익은 책을 발견하게 되는
야지마.. 그런데 그 안에 들어있던 종이의 숫자들은
왠지 아내와 자신과 가장 친한 친구가 불륜을 저질렀을
듯한 정황을 보여주는데...
결말은 진짜 놀랍고 가슴 아프다. 결말을 알고 나면 그
‘암호’의 의미가 전혀 다르게 다가온다. 개인적으로는
단편들 가운데 가장 마음이 아팠고 전쟁이 한 가족의
평범한 삶을 어떻게 산산조각 냈는지를 절실하게 보여준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들 세 작품들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누군가의 죽음이
품은 진실을 추적하고 있지만 그 밑바탕에는 인간의 욕망과
비정함 그리고 전쟁의 상흔이라는 키워드가 흐르고 있다.
그런 면에서 추리 단편집 <투수 살인 사건>은 추리소설이지만 동시에
인간이라는 존재가 함의하고 있는 ‘타락’이라는 본질을
드러내는 철학 서적 같다는 느낌도 드는 책이다.
*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