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랑에는 돈이 들어 - 사랑을 해킹당한 시대의 잔혹동화 미스터리 ㅣ 나비클럽 소설선
박하익 외 지음 / 나비클럽 / 2026년 8월
평점 :
"당신이 믿었던 사랑은 완벽한 시나리오였다"
과거에는 귀신과 전염병이 사람들에게 공포를 일으키는 존재였다면
현대에는 나의 눈과 판단력을 가리고 마음을 홀린 후
돈을 빼앗아가는 사기꾼이야말로 가장 무서운 존재가 아닐까?
뉴스에서 로맨스 스캠 사건을 접할 때마다 우리는 생각한다.
‘아니, 저렇게 허술한 거짓말에 속아 넘어갔다고?’
하지만 인간은 생각보다 외로움과 욕망에 너무나 취약한 존재이다.
누군가가 내가 가장 듣고 싶은 말을 건네고, 가장 외로운
순간에 다정하게 손을 내민다면 어떨까? 사람의 심리를 학습하고
꿰뚫은 상태로 작정하고 덤비는 사기꾼에게 과연 이길 자 누구인가?
그런 면에서 <사랑에는 돈이 들어>는 지금 우리 시대를 관통하는 범죄인,
로맨스 스캠, 즉 애정을 이용한 금융 사기를 전면에 내세운 소설이라
할 수 있다. 뉴스 등을 통해 이미 익숙해진 소재이나 단편소설로 만나보는
재미가 남다르다.
돈 앞에는 장사가 없다고 했던가? 그러나 요즘은 SNS 너머로 들려오는
달콤한 속삭임과 끈적한 언어에 넘어가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았으니...
단편 <사랑에는 돈이 들어>에서는 캄보디아 보이스 피싱 범죄 조직에
납치된 것으로 보이는 전 여자친구를 구하기 위해서 프놈펜까지 직접 날아간
남자가 등장한다. 처참한 현실에서 연인을 구했다는 영웅심도 잠시
그를 기다리는 것은 너무나도 잔인한 진실이었는데....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에서는 과거 동창생이었다는
남자의 연락을 받은 후 연애를 시작한 엄마가 등장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외로웠던 엄마의 볼이 연분홍빛으로
물든 것과는 반대로 집에는 옥장판을 비롯한 온갖 물건들이
쌓이기 시작하는데...
<할머니 수사단>의 박영자 여사는 평생 남편 대신 가정을
책임진 억척스러운 사람이었다. 그러다 SNS에서 만난 백인 남자
제임스에게 마음과 돈을 바치지만 한국으로 오겠다는 그는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데....
총 네 편의 단편들과 마지막에 있는 르포르타주 <사랑의 매뉴얼> 까지.
단편집 <사랑에는 돈이 들어>는 소위 ‘돼지 도살 사기’라는 이름이
붙은 사기꾼들의 시나리오를 너무나 흥미진진하게 그리고 현실적으로
잘 보여준다.
적당한 돼지를 찾아내고 키워서 도살하듯, 낯선 이에게 살살
접근하여 애정 공세를 퍼붓고 사랑에 빠지게 만든 다음
그들의 주머니를 탈탈 털어내는 방식.... 이제는 ‘사랑’마저
시나리오에 근거한 연기가 되어버린 상황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취향에 맞았던 작품은 바로 <봐라니 연가>
라는 제목의 단편이었다. “봐라, 니!"라는 경상도 사투리가
마치 귀에 쨍쨍하니 들리는 듯한 환청이 느껴진다.
이 작품은 무엇보다 반전의 묘미가 확실하다. 마치 서술 트릭처럼
어느 순간 이야기 전개가 확 뒤집어지면서 등골이 서늘해지고
머리끝이 쭈뼛 서는 공포심을 느끼게 될 수도 있다.
사기꾼도 다른 사기꾼에게 당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해서
아주 긍정적인 답변을 해준 듯한 작품인데, 장르적 쾌감이
좀 뛰어난 단편이었다고 생각한다.
로맨스 스캠에서 진짜로 무서운 것은 어쩌면 통장 잔액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나를 사랑했다고 말했던 사람과의 시간이 통째로 삭제되는
듯한 그 순간이 아닐까? 피해자들은 어쩌면 배신감에 무너지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사랑에는 돈이 들어>를 읽은 독자들은 주먹을 꼭 쥐고
단단히 결심을 해야 한다. 내가 가장 외로운 순간, 내가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을 해주는 자를 조심하자!!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사기꾼의
거짓말이 아니라 그 말이 진실이라고 믿고 싶어 하는 인간의 굶주린 마음일지도.
.
#사랑에는돈이들어 #나비클럽 #잔혹동화미스터리 #한국장르소설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