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마거릿 애트우드 외 지음, 남명성 옮김 / 비채 / 2026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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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바이러스가 세상을 휩쓸고 지나갔던 2020년을 떠올리면 아직도 생생하다. 내가 살던 도시는 진원지와 가까워 사실상 봉쇄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거리는 텅 비었고 버스에는 승객이 없었으며, 마스크 한 장조차 구하기 어려웠다. 모두가 두려움 속에서 집 안에 머물던 시간이었다.


<14 Days>는 미국에서도 코로나 피해가 가장 심했던 뉴욕의 한 오래된 아파트를 배경으로 한다. 봉쇄로 건물 안에 갇힌 세입자들은 의료진과 필수 노동자들을 응원하기 위해 매일 옥상에 모이고, 그곳에서 조금씩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한다.


가장 먼저 등장하는 인물은 건물 관리인이다. 그녀는 이전 관리인이 남긴 '펀스비 성경'이라는 바인더 책자를 발견하는데, 그 안에는 세입자들의 별명과 성격, 특징이 빼곡히 기록되어 있다. 상당히 날카롭고 철저한 내용에 관리인은 깜짝 놀라게 되지만 이를 토대로 독자들은 인물들의 특성을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있게 된 상황이라 그런지 사람들은 좀 더 개방적이고 소탈해진다. 누군가와의 대화를 시작으로 깊이 묻어둔 삶의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들. 나는 이를 보면서 흑사병을 피해서 피신한 사람들이 열흘간 이야기를 나누는 고전 <데카메론>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전염병이라는 비극 속에서 이야기가 사람들을 하나로 이어주는구나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매일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구급차 사이렌 소리가 끊이지 않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어쩌면 사람들은 서로의 이야기에 더 귀를 기울이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옥상이라는 공간은 어느새 초현실적인 장소가 되고 사람들은 현실의 짐을 내려놓고 과거 속으로 빠져들어간다.


600쪽이 넘는 분량이지만 이 책은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Day 1부터 Day 14까지 서로 다른 작가들이 하루씩 맡아 집필한 구성 덕분에 매일 새로운 분위기와 개성 넘치는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는 점이 큰 매력이었다.


개인적으로는 특히 둘째 날의 이야기가 인상 깊었다. 내가 좋아하는 당당한 여성 캐릭터와 유령 이야기가 함께 등장했기 때문이다. 첫날이 인물들을 한자리에 모으는 과정이라면, 둘째 날부터는 각자의 삶이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비니거(식초)’라는 별명을 가지게 된 제니퍼는 스스로를 와인처럼 숙성된 사람에 비유한다. 와인이나 식초가 오랜 시간을 거쳐 숙성이 되듯, 그녀 역시 예술가의 품격과 성숙함을 가지고 있다고. 자신이 신랄하게 느껴진다면, 주위에 저질스러운 사람이 있기에 그렇다는 그녀의 언변이 유독 날카롭게 다가왔다.


이어 휘트니 미술관에서 일하는 사서는 알라모 선교 시설 유적에서 유령을 보았던 경험을 들려준다. 다른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존재와 나눈 대화는 자연스럽게 죽음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지고, 결국 사람은 삶에 대한 미련이 클수록 죽음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라는 일종의 메시지를 남긴다.


실로 ‘이야기의 향연’ 혹은 ‘옥상에서의 천일야화’라고 느껴질 만큼 다양한 사연들이 독자들의 눈앞에서 펼쳐진다. 사람들이 경험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세상에는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불가사의하고 신비로운 이야기들이 많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9.11 사태를 겨우 피하고 자신의 목숨은 구했으나 비행기 사고로 사랑하는 남편과 아들을 한꺼번에 잃은 여인, 미운 사람들의 이름을 종이에 적어서 냉동고에 얼리는 방식으로 저주술을 행했던 어떤 할머니 그리고 제대로 만나보지도 못한 친어머니의 죽음을 알게 된 어떤 여인의 이야기까지... 독특하고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코로나라는 재난이 몰아친 상황, 극한의 두려움 속에서 사람들은 서로의 에너지와 기억 속 이야기로 결국 버텨낸다. 서로의 삶을 듣고 공감하고 위로를 건네는 행위가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또 한 번 이 책을 통해 느꼈다. 책 <14days>는 코로나 시간을 함께 견뎌내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때론 코믹하게, 때론 감동적으로 담아내는 특별한 책이다.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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