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입자들
정혁용 지음 / 다산책방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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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무슨 조화인가? 정신없이 책을 읽다보니 어느새 이야기의 결말에 이른 상태였다. 매우 흡인력이 있는 책이라 주위 사람들에게 " 정말 재미있다 " 를 연발하면서 읽어내려갔다. 고독을 씹는 한 냉소적인 택배기사가 겪는 좌충우돌......이라고만 설명하기에는 너무나 독특한 설정의 내용들이 이 책 [ 침입자들 ] 에 실려있다.


사실 제목이 " 침입자들 " 이고 한국형 " 하드보일드 " 라기에 한 택배기사와 관련된 살인, 방화, 강도와 같은 중범죄 (?) 를 기대했건만 ... 아무리 눈 씻고 봐도 그런 장면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읽는 내내 심장이 이렇게 쫄깃하고 손에 땀이 흥건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 책은 반드시 칼과 총이 춤을 추고 선혈이 낭자해야 스릴과 긴장감을 줄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이야기 내내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는 작품이다.


주머니에 든 돈은 9만원 가량,, 하룻밤 묵을 숙소에 투자하고 나니 전 재산이 3만원 가량 남은 주인공. 고향을 막 떠나온 듯해 보이는 주인공은 너무나 지쳐보인다. 도대체 무슨 일을 겪은 걸까? 그러나 다소 불친절한 이 소설은 주인공에 대한 정보를 독자에게 쉽게 보여주지 않는다. 주위 사람들이 주인공에 대한 신변이 궁금해서 질문을 할 때 그가 날리는 기상천외하고도 선문답같은 대답 속에서 단지 그의 과거 행적을 유추만 할 수 있을 뿐. ( 하드보일드 소설을 좋아하고 사람들로부터 자꾸 숨는 태도로 미루어보아 혹시 스파이?? )


굶을 수는 없기에 허름한 중고 택배사에 취직한 우리의 주인공. 묵묵히 일만 하는 그는, 행운동을 담당하고 있어서 주위 사람들에게 행운동 형님 혹은 행운동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 단지 당장 돈이 필요하기 때문에 시작한 택배일... 그런데 이 일이 이렇게 고된 일인지 몰랐다. 엘리베이터 없는 건물 4층에 쌀 30가마니를 올려야하는 일부터 비 내리는 날 상자에 약간의 물이 묻었다고 시비를 거는 진상 고객에 대처해야 하고 계단에서 굴러도 남은 택배를 처리해야 퇴근할 수 있는 택배기사들의 삶을 지켜보고 있노라니 정글 같은 한국 사회에서 주어진 미션을 수행해야 겨우겨우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게임 캐릭터들 같았다. 이게 스릴러지,,,,, 달리 스릴러일까?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 평범한 택배 아저씨에게 ( 그가 나누는 대화를 들으면 결코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지만 )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한다. 그것도 매우 독특한 사연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만... 이쯤되니 이 주인공이 혹시 사연있는 사람들만 끌어들이는 자석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사람을 좋아하지 않고 다른 이의 삶에 간섭하기 싫어하는 이 주인공에게 역으로 침범하기 시작하는 사람들....




전 당신을 죽이려고 했었어요


갑자기 그의 앞에 나타나 꾸준하게 담배 한 개를 빌려가던 여인. 심각한 우울증을 겪고 있었다는 그녀는 그에게 이 말을 툭 던지고 사라진다. 그리고 뒷골목에서 소변을 해결한 그에게 생수를 빌려주며 손을 깨끗이 씻으라던 동네 바보 마이클 ( 그가 지어준 이름 ). 양아치같은 동네 아이들에게 신나게 얻어맞고 있던 마이클을 우리의 주인공이 구해줬는데 그 이후로 갑자기 어떤 할아버지가 나타나서 그에게 경제학을 가르쳐주겠다고 하며 집에 들르라고 한다. 그리고 매주 토요일마다 택배를 배달하게 되는 한 게이바의 여인 " 제니 " 는 유난히 그에게 관심을 보이며 추파를 던지는데........







이 [ 침입자들 ] 속 주인공 행운동이라 불리는 남자의 정체는 안개에 싸여있다. 독자들은 책의 결말에 이르기까지 그가 어떤 사람인지 도저히 갈피를 잡을 수 없다. 그런데 그가 남들에게 인용하는 책 구절과 예의없는 사람들에게 날리는 논리적인 독설을 지켜봤을땐 결코 평범한 사람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리고 그에게 접근한 한 사설 경호원의 칼집에서 몰래 칼을 뽑아내서 위협하는 실력을 봤을 땐,,, 도대체 이 사람의 과거가 뭔지 의심스럽기만 했다.



마틴 크루즈 스미스는 [ 레드 스퀘어 ] 에서 가장 비참한 죽음에 대해 이렇게 썼다.

' 아무도 내가 죽어간다는 사실에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아는 채로 죽어가는 것'

비참한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그런 그런 죽음을 맞을 것 같긴 했다. ( 39쪽 )


내가 생각하는 서비스업의 정의는 간단하다. 나는 고객에게 불친절하지 않을 의무가 있고

( 친절까지는 의무가 아니다 ) 고객은 나에게 불친절할 권리가 없다 ( 내가 먼저 불친절하지 않는 이상 ) 그뿐이다. ( 75쪽 )


인생이란 한없이 덧없는 것.

이 시간이 흐르면 아무 소용없는 것.

함께 노래해. 즐거운 이 순간 노래해. ( 110쪽 )


사회는 집념, 포기하지 않는 노력, 뭐 그런 걸 강요하지만 글쎄요.

제 생각엔 희망이란 게 사람에게 힘을 주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자신을 괴롭히기만 할 뿐인 것 같아요.

그럴 땐 포기하면 편하죠. ( 189쪽 )



작가의 말을 읽어보니 역시...... 많은 직업들을 전전했고 고단한 삶을 살았다고 적혀있다.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살벌하기까지한 택배기사들의 삶이 잘 묘사되어 있는 것을 보면 생활 전선에서 보고 듣고 체험한 부분이 책이 잘 녹아들어있는 듯 하다. 하지만 이 책의 묘미는 주인공이 겪는 소소하지만 살벌한 사건들 뿐만 아니라 주인공의 맛깔나는 대사에 있다. 작가의 말에 나와있듯 많은 책과 영화에서 인용한 부분이 많다고 했지만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하리,, 적재적소에서 사이다처럼 날리는 일종의 선문답같은 ( 사람들이 잘 알아듣지 못하니 ) 주인공의 독백 및 대화가 한 독자를 즐겁게 해주었다는 사실만은 작가님이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커트 보네거트가 이런 말을 했다.


" 예술은 생계 수단이 아니다. 예술은 삶을 보다 견딜 수 있게 만드는 인간적인 방법이다. 잘하건 못하건 예술은 진짜 인간으로 성장하게 만드는 길이다. "


- 작가의 말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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