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어 노트 움직씨 퀴어 문학선 1
구묘진 지음, 방철환 옮김 / 움직씨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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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하고 살아간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나를 너무 잘 알고 세상과 영원히 타협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버린다면 그건 더 큰 불행이 아닐까? 대만의 천재적인 소설가 구묘진의 < 악어 노트 > 는 시대를 앞서갔던, 그리고 짧지만 불꽃같은 삶을 살았던 한 젊은이의 실험적인 소설이다. 사회가 규정하는 젠더 정체성에 의문을 제기함과 동시에 젠더 감수성으로 가득한 이 작품은 퀴어문학 장르라고 할 수 있겠다. 평소에 이런 작품을 대해보지 못해서 읽는 동안 혼란스러움을 좀 느꼈다. 이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자신을 특정 성에 묶어두지 않는다. 여성과 남성을 동시에 " 그 " 라고 일컫는 바람에 생경하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즉, 일반 사람들처럼 인간을 남성과 여성이라는 이분법으로 나누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나는 레즈비언이었던 구묘진 작가가 자신의 삶을 소설에 많이 투영했을 거라는 느낌을 받았다.

 

 

주인공 " 라즈 " 는 본인을 악어로 규정한다. 악어는 태어날 당시 수온에 따라서 수컷이 될 수도 있고 암컷이 될 수도 있다. 젠더 정체성과 감수성이 남달랐던, 아니면 규범적으로 정해진 젠더 정체성에 온몸으로 저항했던 소설 속 주인공은 자신을 악어에 비유하여 성적 소수자에게 무지하고 차별적이며 편견에 찬 대만 사회를 냉소적으로 비판한다.

 

" 악어를 보도할 때는 영상 기술적 측면에서 반드시 특수 처리를 해야 하며, 시청자들이 봤을 때 안개 뿌린 효과가 나도록 해야 합니다.

 이 효과는 다른 나라의 위성이 영상물을 받아

최신식 영사기로 카피하는 것을 방지하자는 것입니다. (..)

 만약 우리 나라의 악어 문제가 심각한 상황에 이르면

앞으로 우리는 국제 사회에서 퇴출당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

 

시대를 너무 일찍 태어난 것일까? 아마도 그녀가 대학생이었을 당시는, 특히 대만과 같은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과 편견은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어마어마한 것이였으리라. 그런 외부 상황을 내면화시켜버리면 스스로를 혐오하기 시작할 수도 있다.

그래서일까? 그녀는 악어 뿐만 아니라 자신을 괴물과 동일시하고 있다.

 

 

“ 이렇게 생겨 먹은 것이 나란 사람이다.

 세상 사람들에게 보이는 한 여자는 세상 사람들의 눈에 비친 한 사람의 환영이며,

 이 환영은 그들의 범주에 든다. 하지만 나만의 시선으로 스스로를 들여다보면

그리스 신화 속의 반인반마 괴물이다 .”

 

 

 

 

 

 

스토리는 간단하다. 이루어질 수 없었던 수령과의 사랑. " 라즈 "와 " 수령 " 은 서로 마음 깊이 사랑하지만 주류에 속하지 않는 사랑 때문에 서로를 밀어낸다. 특히 주인공 라즈는 수령을 일부러 잔인하게 대한다. 마음 속 피눈물이 흘러내림에도 불구하고. 라즈와 수령 커플이 있고, 또 몽생과 초광 커플이 있다. 자신의 성적 지향성 때문에 절망하고 목숨을 끊으려했던 초광을 구해줬던 사람이 바로 몽생이다. 그러나 몽생은 여러 여자와 바람을 피우며 초광을 괴롭힌다.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사랑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몽생은 자신만의 확고한 사랑 철학이 있다.

 

" 서로 사랑하기 때문에 복수하려는 것이고, 복수심 때문에 싸우는 것이고,

 또 싸웠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거든.

 이 세 가지는 함께 어우러져 있는 거야. 

 사랑에 의한 강력한 좌절감이 어떤 지점에 이르렀을 떄,

 그러니까 애정 욕구에 집착헤 온몸을 던져 버리는 짓을

아직 지속하거나 끝내지도 못하고 있을 때,

 허무의 동굴에서 빠져 나오지도 못하면서

그렇다고 가벼운 공기 속으로 승천하지도 못했을 때는

 오히려 더 큰 절망으로 사랑의 대상에 치명적으로 달라붙게 되는 거야."

 

세상은 그녀에게 어딘가에 속하라고 강요했을 것이다. 여성도 아니고 남성도 아닌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며 매일매일 범죄를 짓는 듯한 느낌을 가지거나 괴물처럼 느꼈다면 삶이 얼마나 피곤했을까? 이 소설은 소설의 일반적 서사 구조를 따르지 않는다. 작가의 소설 작법이 특이하다.

아방가르드 영화 및 실험 영화의 비서사적 구조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물 흐르듯 읽히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구나 싶다. 마치 콜라쥬를 완성하듯 주인공의 삶의 부분 부분을 찢어다가 소설 속에 녹아내는 저자. 주인공의 일생일대의 사랑인 수령과의 이야기와 자신을 따라다니는 괴짜 몽생 그리고 몽생을 사랑하는 게이 초광 의 이야기가 드문드문 흩어져서 나타난다. 파편화된 느낌의 소설을 읽다가 이해가 잘 안되어서 그녀가 영향을 받았다는 2명의 소설가 데렉 저먼과 영화 감독 장 뤽 고다르에 대한 조사를 해보았다.

 

 

데릭 저먼은 극단적으로 실험적인 영화 형식에 자서전적 색채를 입히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가 하려 했던 사적 이야기는 동성애라는 자신의 그리고 타인의 성 정체성과 그 정당성에 집중되어 있다. 그것이 플라톤적 사랑이건 혹은 잔혹한 성 역할의 폭로건 간에 호모섹슈얼리티의 형상화는 그의 영화에 불변의 주제였다.

 

 

장 뤽고다르. 고다르는 장르 관습을 타파했다. 그는 할리우드의 장르 구조를 해체하고 그 문법을 실험 수단으로 역이용했는데, 이는 촬영 및 편집에서부터 믹싱에 이르기까지 영화 창작의 전반에 걸쳐 이루어졌다. 예를 들어 각본 없이 즉흥적으로 촬영한 <네 멋대로 해라>에서 그는 연속 편집을 배제하고 그 자리에 파편화된 콜라주를 도입했다. 그가 창안한 점프 컷(jump cut)은 연속성의 부재라는 영상 논리의 파괴를 한층 더 강화했다.

 

 

너무나 안타깝게도 스물 여섯 살의 나이에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그녀. 옮긴이의 말에 따르면 작가 구묘진이 남긴 작품은 그녀의 죽음 이후 성 소수자 인권 운동과 이성애 중심인 혼인법 개정에 많은 영향을 주었으며 논 바이너리 ( 여성도 남성도 아닌, 성별 이분법에 따르지 않는 성 ) 문학의 효시이자 고전이 되었다고 한다. 결국 악어는 스스로 소멸하는 방법을 택하는데 세상에 대한 어떤 회한도 품지 않는다. 작가는 말한다.

 

" 세상은 결국 잘못한 것이 없다. 나의 정신이 나약할 뿐. 우리가 세상의 폭력을 막을 수 없으니 오래도록 마음의 병을 앓게 되는 것 "

 

이 반어적인 표현을 통해 편견에 찬 우리 사회의 벽이 얼마나 견고하고 높은지 알 수 있다고 옮긴이는 말하고 있다. 천재적인 젊은이의 방황과 절망 그리고 탈출을 그린 < 악어 노트 >. 많이 난해하고 어려웠지만 읽으면 읽을 수록 작가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가 만들고 싶은 세계는 무엇이었을까? 궁금하다.. 그리고 꼼꼼히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 대학 제도는 좋은 것이다. 사망 제도에 비하면 좀 부족해서 차석이 되었지만, 대학은 세 가지 제도인 강요된 교육, 강요된 일자리, 강요된 결혼이 첩첩이 잘 맞물리는 교차점에 있다. 이 세 가지 제도는 인류가 고안한 것 중 최고로 위대한 발명이다. 세 가지 위대한 것이 함께 올라타서 힘을 보태니 오히려 너무 무거운 위대성으로부터 탈출하게 된 것이다. 대학과 사망은 모두 일종의 비상구 같은 도피 제도다 .”

 

 

“ 스스로의 근원과 성욕에 대한 두려움은 두려움이 두려움을 휘저어 섞으며 덩어리로 변하더니 결국 삶 전체가 두려움에 지배되는 공포 괴물로 변하기에 이르렀다. 사람들에게 본모습을 들키지 않으려면 반드시 동굴에 살아야겠다는 자각을 하게 된 것이다 .”

 

 

“ 어려서부터 가족들이 내 주변을 에워싸며 아무리 사랑을 줬어도 나를 구하지 못했다. 우선 기질이 맞지 않았고, 나 역시 근본적으로 그들이 다가오지 못하도록 마음의 곁을 내주지 않았다. 가면을 쓰고서 비교적 그들의 상상에 가까운 나를 던져 주었다. 그들은 나의 꼭두각시를 안고 화목한 춤을 춘다. 그것은 인류가 평균적으로 상상하는 반경으로 정확하게 원심을 그린 중심이며, 계산을 통해 투영된 가짜 나의 허상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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