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온 Go On 1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19년 5월
평점 :
절판


 

 
 
" 각각의 가족은 비밀스러운 사회라 할 수 있다. 그 가족들에게만 특별히 존재하는 법칙, 규칙, 한계, 경계의 영역이 존재한다. 다른 사람들의 시각으로 보자면 도저히 말도 안되는 규칙이 어느 특정한 가족들 사이에서는 능히 통용될 수 있다 “

더글라스 케네디 작가의 < 빅 픽쳐 >를 읽었을 때가 생각난다.   작가는 겉보기엔 아무 문제 없어 보이는 부부 사이에 곪을 데로 곪아서 곧 터져버릴 것 같은 아슬아슬함이 도사리고 있음을,   주인공의 심리상태와 그가 저지른 사건을 통해 잘 표현했었다. 사건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한시도 편하게 쉴 수 없는 주인공의 불안한 심리가 매우 빠른 호흡으로 묘사되어서, 매우 박진감 넘치고 스릴감 있는 작품이라고 느꼈었다.

이처럼 더글라스 케네디 작가는 밖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가족 간의 갈등과 반목 그리고 가족들끼리서로  감추고 있는 어두운 비밀 등을 다루는데 특히 일가견이 있는 작가이다. 그는 그렇게 소통불능, 일그러진 가족의 군상을 미국의 역사적 흐름과 정치 상황과 연계시켜서 보여준다. 개인의 운명이 사회의 운명과 결코 무관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일까? 주인공의 친구와 가족들의 일신상에 발생하는 사건들은 당시 미국을 휩쓸던 사회적 정치적 사건들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것들이다. 

< 빅 픽쳐 > 가 다소 짧은 호흡으로 이야기를 풀어냈다면 이번 책 < 고 온 > 은 다소 호흡이 긴 편이다. 긴박함과 스릴이 넘치는 사건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기보다는, 여주인공 앨리스가 학생일 때부터 어른이 되기까지 일생을 따라가면서 특정 시기마다 그녀와 그녀 가족들에게 일어난 사건들을 차근차근 풀어내고 있다. 
 
시대적 배경은 70~80년대부터 시작된다.   작가는 매우 예민한 부분을 다루는데   그것은 바로 동성애 혐오. 동성애자인 엘리스의 친구 칼리와 하위가 사람들로부터 무지막지한 폭력을 당하여 칼리는 행방불명되고 하위는 코뼈가 내려앉는 사고를 당한다. 인종차별과 더불어 동성애 혐오가 도처에 널려있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앨리스의 아버지는 자신의 칠레 광산을 지키기 위해 칠레 군부정권에 영합한다. 좌파 정권을 무너뜨리고 무자비하게 인권탄압을 하는 그의 뒤에 미국 정권이 버티고 있음은 당연지사. 그 무렵 비교적 도덕적인 카터 정부가 물러나고 경제를 강조하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이 취임을 하게 된다. 본격적으로 자본주의 시대로 접어드는 미국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 어찌 이렇게도 역사는 반복되는 것일까? ) 자본의 논리가 미국을 좌지우지하기 시작했던 시기가 이때쯤이 아닐지? 자신이 자고 나란 미국을 강하게 비판하는 더글라스 케네디 작가의 입장이 보이는 부분이다. 
 
처음엔 가족들 사이에 벌어지는 사건들을 토대로 한 추리 스릴러 소설인줄 알았는데 뚜껑을 열고 보니 이것은 휴먼드라마였다.  사랑하지만 서로 이해할 수 없어 반목하고 갈등하고 배신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신경증인 어머니와 냉정한 아버지 사이에서 갈피를 못 잡고 자라난 아이들. 여주인공은 사랑에 매번 실패하고 ( 물론 아일랜드에서는 테러집단의 테러에 의한 폭발물 사고에 의해 연인을 잃기도 했지만 ) 부모님께 사랑받지 못해서 불안해하는 여주인공의 모습이 보였다, 큰오빠와 작은 오빠는 각각 아버지에게서 받지 못한 애정 결핍을 다르게 표현한다. 큰오빠는 칠레 군부 정권에 영합한 아버지와 맞서고 아버지를 꼭 닮은 남동생의 금융 비리를 고발하는 방식으로, 작은 오빠는 사회 속에서 성공하고 많은 돈을 벌어 아버지의 인정을 받는 쪽으로. 결국 그의 꿈은 하루 아침에 조각나 버리지만.
     
이 책은 조금만 더 길게 쓰면 한 미국의 중산층 가족을 통해 미국의 역사, 사회, 정치의 변화와 흐름을 들여다보는 대하 소설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더글라스 케네디 작가는 조국인 미국을 싫어해서 다른 나라로 떠돌아다닌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미국의 쇠락과 영광 그리고 성공과 좌절을 대변하는 인물들을 훌륭히 잘 그려내는 것을 보면 마음은 여전히 조국에 가 있는 것 같다

안타깝게도 앨리스는 끝내 아버지와 제대로 된 화해를 못 한 채 그를 떠나보내야 한다. 그러나 이제 짐스럽던 가족과의 관계를 한 걸음 뒤에서 바라볼 수 있다는 면에서 그녀는 성공을 거두었다. 너무 미워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사랑하지도 않고 적당히 거리를 두고 서로를 존중하는 법을 배운다. 비록 완벽한 가족은 아니지만 개인의 선택에 따라서 얼마든지 다시 사랑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남긴 채 이 책은 마무리를 짓는다.

“ 미래는 알 수 없어. 무슨 일이 기다리는지 절대 알 수 없어. 계획을 세우고 희망을 품을 수는 있지. 그러나 우연의 음악이 늘 기다리고 있어. 끝없이 이어지는 변수가 삶에 존재해. 즐겁고 재미있고 행복한 일도 언제든 슬프고 비극적이고 끔찍한 일로 변할 수 있지.........( 중략 )..... 그러나 아직 살아가고 있고, 아직 여행하고 있는 우리는, 우리 자신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에 대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앞으로 이어갈 이야기를 어떻게 요약할 수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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