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꼭두각시
윌리엄 트레버 지음, 김연 옮김 / 한겨레출판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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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라의11월독파_2023 ] - 1


<운명의 꼭두각시>


윌리엄 트레버 장편소설
김 연 옮김 | 한겨레출판


윌리엄 트레버라는 작가는 <펠리시아의 여정>을 통해서 알게 되었지만, 읽은 건 소설집인 <밀회>의 단편 소설이 처음이었고, 최근에 <마지막 이야기들>을 통해서 조금 더 그 맛을 보았으며 장편소설은 <운명의 꼭두각시>가 처음이다.


단편과 장편의 느낌이 많이 다르다는 건 나만 느끼는 걸까?


읽으면서 물음표가 많았다. 내가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건지, 앞을 다시 넘겨보기도 했다. 하지만 이해하려는 생각을 멈추고 문장으로 그 느낌을 이어갔다. 문장이 좋다. 인물이나 풍경, 그 묘사가 좋다.


말은 정확하고 단호했지만 어조은 그지없이 나른했다. 킬네이의 하얀 문을 지나 두 줄로 늘어선 너도밤나무 길을 따라 나아갈 때 서두르지 않는 우리의 걸음과 잘 어울렸다. 래브라도들이 우리에게 뛰어오르며 집 앞 자갈길에서 법석을 떨었고 떠돌이 개들은 집 주위를 뛰어 다녔다. _p.70_


<운명의 꼭두각시>는 제목 그대로 기구한 운명에 대한 이야기이고 사랑 이야기이다. 영국과 아일랜드의 역사적인 관계에 대해서 알고 있으면 이해가 조금 더 수훨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윌리, 메리앤, 이멜다의 이야기가 하나씩 나온다. 윌리가 주측을 이루고 있기때문에 그의 시점으로 소설이 이루어져도 전혀 무리가 없었을 텐데, 메리앤과 이멜다의 시선도 함께 나온다. 그래서 중간에 싹뚝 잘려져 버린 내용도 있다. 독자가 추측해야한다.


책만 읽었을 때에는 내 생각이 맞는 건지, 내가 생각하는 상황이 그렇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 혼란스럽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에이 모르겠다~ 싶었는데, 김다인 편집자님과 이미상 작가님과 함께 한 줌 북토크를 통해서 아하! 했다. 윌리엄 트레버라는 작가의 특이점도 있었다. 내가 잘 모르고 있던 부분을 독파 줌 북토크를 통해서 알게 되어서 얼마나 상쾌하던지!! 작가님도 얘기했지만 실제로 만나서 얼굴 보며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고, 그건 그런거 아닐까요? 이렇게 대화를 나누는 게 정말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토에 적합한 책 혹은 작가님, 발견!!


<운명의 꼭두각시>는 초기작품에 속하는데 우리나라에 번역본으로는 한겨레출판에서 여섯 번째, 그 사이에 문학동네 세계문학 전집으로 두 권이 더 나왔으니 여덟번째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책이 초기작품이니까 출간 순서대로 (우리나라에 번역된 책만으로 : <운명의 꼭두각시> - <펠리시아의 여정> - <비온 뒤> - <루시 골트 이야기> - <밀회> - <그의 옛 연인> - <여름의 끝> - <마지막 이야기들>) 읽어보면 작가님 특유의 그 느낌을 살려가며 더 깊이있게 다가갈 수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작년부터 <펠리시아의 여정> 읽으려고 꺼내놨는데, 이제는 정말로 읽을 때가 되었나보다!! 하지만 그 전에 <운명의 꼭두각시> 다시한번 더 읽어야겠다! 더 재미있을 듯!



즐거운 독서였다!
독파 덕분에 새롭게 생각하고 나누고 알아갈 수있었다!! 감사합니다 >_<


#윌리엄트레버 #운명의꼭두각시 #한겨레출판 #독파 #독파챌린지 #완독챌린지독파 #아일랜드 #영국 #블랙앤탠즈 #williamTrevor #blackandtans #Ireland #Brit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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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영역 마르코폴로의 도서관
쓰시마 유코 지음, 서지은 옮김 / 마르코폴로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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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영역>


쓰시마 유코 지음
서지은 옮김 | 마르코폴로


저자 쓰시마 유코는 오래전 우연히 몇몇 문장을 읽고 알게 된 소설집 <나>를 통해서 처음 만나게 된 작가이다. 작가가 한 살 때 사망한 소설가 다자이 오사무의 딸이라는 타이틀이 그녀에게 부담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다행히도 나는 그 당시에 그 아버지는 이름만으로 접했던 때였다. 오래 전이어서 잘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나>는 무언가 특이했고 노래같았다는 느낌만 가지고 있다. 몇 달 전에 <나>를 다시 읽고 싶어서 꺼내 놓았는데 <빛의 영역>을 읽기 전에는 동일작가라는 걸 깨닫지 못했다는 웃픈 이야기.


표지가 마음에 든다. <빛의 영역>이라는 제목도 좋다. 다 잘 어울린다.


<빛의 영역>은 빛과 꿈의 향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평범한 일상을 담담히 서술한 에세이 같은 이야기이다.


내 바로 앞에 있는 사람, 혹은 나의 심리를 설명하며 화자가 직접 일기를 쓰는 것 같기도 하고, 뭔가 특이한 느낌을 받았다.


불현듯 지금까지 살면서 단 한 번도 내가 살 집을 내 손으로 찾아본 일이 없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아니야, 그럴 리 없어' 라며 부정하고 싶었지만, 그것은 엄연한 사실이었다.
혼자서 묵묵히 아이 어린이집 주변의 살 만한 집을 찾아 걷고 또 걷는 동안 어느샌가 달이 바뀌었다. 예산으로 잡아둔 월세가 워낙 작았지만 별 뾰족한 수가 없었다. 아무리 그렇다고는 해도, 남편과 함께 집을 보러 다녔을 때와는 달리 조건이 별로인 집만 소개를 받았다. 그때마다 풀이 죽었지만 어둡고 좁은 집을 여기저기 보러 다니면 다닐수록 남편의 모습은 내 뇌리에서 사라지고, 들어간 집의 어둠 속에서 동물의 눈이 내뿜는 듯한 빛을 느끼기 시작했다. 거기엔 나를 노려보는 무언가가 있었다. 무서웠다. 하지만 동시에 가까이 다가가고 싶었다. _p.19_ 1. 빛의 영역_


4살 아이와 둘이서만 살게 된 화자, 나.
육아에 대해 미화되지 않은 그 마음이 절절했다. 물론 문화차이든지 아니든지 이해가 안가는 부분도 있기는 했지만.


꿈이 현실 같고 현실이 꿈 같은 모호한 경계도 여럿 있었는데, 이질감이 생기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느낌이 내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어 주어서 편안했다.

아이가 죽는 꿈을 꾸고 며칠 뒤, 밤에 여전히 한밤중에 일어나 우는 아이의 몸을 갓난아기 때처럼 무릎 위로 안아 올려 아이 가슴께부터 배까지 원을 그리듯 쓰다듬으며 주문을 외웠다.
나쁜 꿈 사라지고, 무서운 꿈 멀어져라. 우리 아기 착한 아기, 예쁜 꿈만 꾸도록. 나쁜 꿈 사라지고, 무서운 꿈 멀어져라. 우리 아기 착한 아기, 행복한 꿈만 꾸도록. 어여쁜 꽃 활짝 핀 꿈. 고운 옷 입고 춤추는 꿈 ......
문득 울음을 그친 아이가 얼굴에 미소를 띠고 내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아이 얼굴을 바라보며 열심히 주문을 외우고 또 외웠다. _p.108_ 6.주문_



빛에 투영되어 집착하던 밝음에서 벗어나 이제는 어둠도 바라볼 줄 알게 되는 듯한 마무리. 그녀와 딸의 미래를 가슴 깊이 응원하는 마음이다.



마침 방안으로 석양이 스며드는 시간이었다. 가득 찬 붉은빛으로 인해 집 안은 숨막힐 정도로 밝았다. 그 모습을, 몇 년이나 보지 못해 확실히 떠올릴 수 없게 된 사람이라도 된 듯 한참을 현관에 선 채 바라보았다. 움직이는 존재라곤 그 무엇도 없는 고요한 광경이었다. 빛이 사라지고 대신 방 안에 푸르스름한 어둠이 차오르자, 근처 아는 사람 집에 잠깐 맡긴 아이를 데려오기 위해 다시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_p.201_ 12. 빛의 입자_


#빛의영역_라라 #라라의소설추천 #책을대신읽어드립니다_라라 #빛의영역 #쓰시마유코 #마르코폴로 #이혼 #독립 #육아 #삶 #빛과어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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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비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백수린 옮김 / 미디어창비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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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뒤라스 읽기 ] - 2


여름비 La pluie d'ete


마르그리트 뒤라스 소설
백수린 옮김 | 창비


마르그리트 뒤라스, 그녀의 이름만 알고 궁금해만 하다가 지난 4월에 <이게 다에요>를 읽고서 ( #이게다에요_라라 ) 꾸준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백수린 작가님의 영향이 크기도 했지만!


제목에 걸맞게 여름에 읽기로 하고, 조심조심 마음의 준비를 했고, 시작을 했다.
음...... 음...... 음..... 음?!!!!!


무슨 내용인지..... ;;;;;;;;
에르네스토가 특별한 아이라는 건 알겠고... 동생들도 많고.... 엄마는 감자로 요리를 하고... 음.... 학교를 안가고.... 갔다가 안가기로 결심하고... 글을 안배웠는데 책을 읽을 줄 알고... 갑자기 희곡같이 대화채가 나오고..... 어머니와 에르네스토가 대화를 나누는데.. 그 분위기를 잘 모르겠고..... 이름이 바뀌어서 나오는데 새로운 인물은 아닌게 확실하고...


에르네스토 나는 아직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무언가를 이해했어요...... 그걸 적당하게 말하기에 나는 너무 어려요. 우주의 탄생 같은 무언가요. 나는 못에 박힌 것처럼 서 있었어요. 갑자기 내 앞에 우주가 탄생했어요. _p.43_


신은, 에르네스토에게 있어, 그가 동생들이며 어머니와 아버지, 봄 혹은 잔을 바라볼 때, 또는 아무것도 바라보지 않을 때 언제나 그의 곁에 있는 절망 같은 것이었다. 어머니는 어느 날 저녁 우연히 에르네스토를 바라보다가 자기를 쳐다보는 예의 비통한 눈빛, 때로는 텅 빈 듯한 그의 눈빛에서 에르네스토 안의 절망을 발견했다. 근라 저녁, 어머니는 에르네스토의 침묵이 신이며 동시에 신이 아닌 것, 삶에 대한 열정이자 동신에 죽음에 대한 갈망임을 알았다. _p.58_


몽환적인건 있다.
잔잔함 안에서 폭발적인 느낌도 받았다.
서로를 이해하는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겉으로만 이해하고 사랑하는 것 같은 느낌도 조금은 있었다.
그 시대의 모든 가족의 모습은 아닐 거라 생각한다. 이 집의 특이성. 어머니와 아버지의 다름. 틀리지 않고 다름. 그 다름이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 어쩌면 사랑.


어머니가 자장가를 부르며 식구들의 장난에 합세하는 그 순간들이 아버지와 아이들에게는 가장 커다란 행복에 도달하는 순간이었다. _p.87_


어머니의 매력이 어머니가 자기 자신에 대해 모른다는 데서 오는 한, 어머니를 사랑하는 일은 절망이었다. 아버지가 견딜 수 없었던 것은 그녀에 대한 열정을 품은 채 홀로 그녀 앞에 서 있는 것이었고, 그 열정에 대해서 말할 수조차 없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이 여인, 그들의 어머니에 대한 아버지의 슬픈 운명을 어렴풋이 예감하고 있었다. _p.95_


앞부분을 읽고 잠시 책을 덮었다.
읽다보면 괜찮아지리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며칠 뒤에 다시 책을 열었는데, 나도 모르게 쑤욱 들어갔다. 왜인지 이유를 알수는 없었다. 그리고 은근히 마음에 남는 문장들도 많았다. 이런저런 물음표가 많이 따라다니던 처음과는 다르게 그냥 그 흐름대로 나를 맡겼다. 이해하려고 애쓰지 않았다. 그렇게 다 읽었다.


내용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제대로 대답을 할 수는 없다. 좋으냐고 묻는다면 그에 또 적합한 답을 알지도 못한다. 그저 재미있는 책은 아니지만 그 느낌을 느껴보면 좋겠다고, 그렇게 얘기 해 주고 싶은 책이다.


고백하자면 처음 <여름비>를 읽기 시작했을 때, 나는 여러 번 당혹감을 느꼈다. 물론 나는 비교적 전통적인 방식으로 쓰인 뒤라스의 초기 작품들을 제외하면 뒤라스의 소설들이 대체로 심리묘사를 배제한 채, 암시와 반복, 맥락 없는 대화들로 모호하고 감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여름비>의 중간 중간에 삽입되어 있는 희곡 같은 대사들은 나의 독서를 중단시켰는데, 소설 안에 희곡을 삽입한 듯한 형식적인 낯섦 탓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희곡처럼 쓰인 부분과 그 외의 부분간의 톤이 너무 다르게 읽혀, 내가 오독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의문에 멈칫하게 되었던 것이다. _p.205_


소설 뒤에 있는 옮긴이의 말이 마음에 가장 와 닿았다. 그 느낌 딱 그대로 받아서...


정말 이상한 소설이야,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책을 천천히 읽어나갔다. 소설을 읽는 것이 아니라 시를 읽을 때처럼, 중간중간에 책을 덮어두었다가 다시 펼쳐들기를 반복하면서.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이해하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그대로 내버려두었다. _p.206_


#뒤라스읽는라라 #책을대신읽어드립니다_라라
#여름비 #Lapluied'ete #마르그리트뒤라스 #뒤라스 #백수린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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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의 딸, 김알렉산드라 -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꿈꾸었던 조선인 최초의 볼셰비키 혁명가
김금숙 지음, 정철훈 원작 / 서해문집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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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15. 제 78주년 광복절] - 2


<시베리아의 딸, 김알렉산드라 :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꿈꾸었던 조선인 최초의 볼셰비키 혁명가>


김금숙 만화
정철훈 원작 | 서해문집



작년에는 하얼빈을 읽었는데, 올 광복절에는 우연히도 어쩌면 필연적으로 그래픽 노블 두 권을 선택하게 되었다. 앞의 리뷰( #비꽃_라라 )에서 마지막 사진이 김금숙, 이 그래픽 노블의 작가 소개이다. 제주 4.3항쟁의 비극을 그린 <지슬>로 알게 되었는데, 너무 슬플 것 같아서 아직 읽어보지는 못했다. 내년 4월에는 꼭 읽어야지!


<시베리아의 딸, 김알렉산드라 :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꿈꾸었던 조선인 최초의 볼셰비키 혁명가>. 제목이 참 길다.


볼셰비키 혁명가라는 강인한 단어에 흠칫하기는 했지만 평등한 세상을 꿈꾸던 조선인 여성 혁명가는 어떤 일을 했을지 궁금했다. 이 그래픽 노블을 읽기 전까지는 알지 못했던 인물. 김알렉산드라.


노동자들, 농민들이 천시받던 시대, 일한 만큼 땅과 소득을 조금이라도 얻을 수 있었던 러시아로 목숨을 걸고 이주한 사람들이 많았던 그 시대. 살기 위해서 러시아로 건너갔지만 말이 제대로 통하지 않아서 억울하게 불평등 대우를 당하던 노동자들을 대변하고 통역해 주었던 여성이 김알렉산드라다. 노동자, 농민, 여성, 남성, 누구든지 평등한 세상, 아이들에게 평등한 세상에서 살게 해 주고 싶었던 엄마로서의 마음도 자신의 일에 약해지지 않고 멈추지 않고 강해지는 데 한몫을 한 것 같다.


말로는 많이 들어봤던 단어들과 역사적 사건들, 시대적 배경들이 우수수 지나가서 머리가 복잡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래픽 노블이기에 조금은 덜 부담스럽지 않았나 싶다. 조선 독립과 이름을 들어본 적 있는 독립군들도 나와서 조금 더 확장해서 인물들에 대해 알아봐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렇게 생각하고 알아보고 읽고 해도 내년 이맘때쯤이면 다시 텅 비어 버리게 되겠지만 그래도 자꾸 알아보려고 한다. 역사도 과거도 외면하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많은 동지들을 구하고 대신 잡힌 그녀가 재판에서 여성으로 자신의 범죄를 뉘우치고 호소하면 자유의 몸이 될 거라고 재판관이 회유했을 때 했던 말이 상당히 인상적이다.


여성으로서? 당신의 표현은 나뿐만 아니라 이 세계 인구의 반을 점하는 모든 여성을 모독했어요. 당신은 여성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고 있지요. 계급투쟁에 나뿐만 아니라 수만 명의 여성이 참여하고 있어요. 당신은 그 모든 여성에게 자신의 활동을 뉘우치라고 얘기할 건가요? 잘 들으세요. 몇 년 뒤에 극동에서, 조선에서, 중국에서, 전 세계에서 여성이 남성과 나란히 사회주의 혁명 운동에 참가할 것입니다. 내가 해 오던 일은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수만 명의 여성 가운데서 전개되어 나갈 것입니다. 만약 내가 당신의 말대로 여성으로서 자신의 범죄를 뉘우친다면, 나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배신하고 전 세계 여성 앞에 죄를 범하는 게 될 것이다.


1918년 9월 16일 향년 33세에 하바롭스크 아무르강 변에서 일본군과 백위군에게 총살당한 김알렉산드라. 백여 년 동안 수많은 김알렉산드라의 투쟁으로 우리는 이렇게 평등을 가장한 채 살아가고 있다. 완벽한 평등은 아직도 이루어지지 않았고, 여성은 남성에게 있어서 약하고 억누를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하지만 그건 또 이 사회가 풀어야 할 문제가 될 것 같다.


김알렉산드라는 아이들에게 평등한 세상을 주고자 했다. 표면상으로는 지금이 평등한 세상이긴하다. 그렇지만 표면상일뿐. 재력과 권력이 있는 사람들에게 평등은 그들 세계에서만 이루어지는 일이고, 노동자들,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의 세계에서 여자와 남자는 평등하지 않다. 이 시대에도 김알렉산드라가 분명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과거와 역사를 돌아보며 현재와 미래를 바꾸고 싶어 하는 혁명가가 있을 것이다. 슬프게도 내가 그 용기를 지니고 있지는 않지만 그녀들을 마음속 깊이 응원하고 있다. 여성으로 태어나서 싫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는 것 같으므로 더욱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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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꽃
이곤 지음 / 종이로만든책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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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15. 제 78주년 광복절] - 1


<비꽃>


이곤 만화 | 종이로만든책


비꽃
비가 내리기 시작할 때 성기게 떨어지는 빗방울.


눈으로 본 것, 눈에 보이는 것을 그대로 그림으로 그려낼 줄 아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면 나는 어떤 삶을 살아갈까?


한번만 보고도 정확하고 세세하게 그림을 그려내는 애정은 이런 특별한 능력으로 나라를 위해, 나라의 독립을 위해 자신을 바친다.


독립 운동을 하기 위해서 경성으로 오던 중 우연히 조선 총독의 아들을 알게 되고 세이지는 애정에게 호감이 생겨 미술이라는 공통점으로 그림 모임에 애정을 초대한다. 그 무리에 들어가서 동료들의 조선 총독 암살 작전을 돕는다는 설정만으로는 너무 판타지스러운거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지만 독립운동가들의 마음이 잘 나타나 있는 것 같아서 읽는 동안 집중할 수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과 다양한 능력을 지닌 사람들이 독립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았을 그 시기. 일본인은 절대로 알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마음이 만화에 담겨있다.


다카하시 씨,
평화로운 세상에서 살고 싶다 하셨었죠. 당신이 살고 있는 그 평화의 대가로 누군가가 희생되었다는 것을 정녕 모르셨나요? 당신이 지금 서 있는 그곳이 피로 이루어진 곳이란 걸 보지 못하셨나요.


역사적 사실을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이 제일 중요하겠지만, 고찰하여 증명된 사실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몸담고 있지 않았던 그 시대를 상상해보고 독립 운동가들을 기억하고 우리의 역사를 생각할 수 있도록 돕는 책이 많이 나오면 좋겠고 많이 읽히면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 이 책은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 지원하는 '2021 다양성 만화 제작 지원사업'과 '2022 만화 독립 출판 지원사업'의 선정 작품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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