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스트 인 러브
마르크 레비 지음, 이원희 옮김 / 작가정신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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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스트 인 러브>

마르크 레비 장편소설 | 이원희 옮김 | 작가정신


돌아가신 아버지의 유령이 나타나서 생전에 이루지 못한 사랑을 이루어 달라고 아들에게 부탁을 한다는 설정만으로도 흥미를 끌기에는 충분했다. 제목도 <고스트 인 러브>, 사랑에 빠져있는 유령이라니. 유령 아버지의 이루지 못한 연인에 대한 러브일 수도 있지만, 책을 다 읽고나면 그 '러브=사랑'이 꼭 아버지의 그녀에 대한 사랑만이 아님을 알 수 있다.

📖

피아니스트인 토마와 외과의사였던 아버지 레몽은 40년이라는 나이차이때문인지 서로 그리 가까워 지지 못했다. 토마에게 아버지가 필요할 때 아버지는 늘 바빴고, 모든 여자들에게 친절했지만 엄마와는 그리 오랫동안 함께 지내지 못했던, 그런 아쉬움이 남는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5년만에 유령으로 나타났다.

믿기지는 않았지만 이 상황을 받아들이고, 아버지가 사랑하는 그녀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참석해서 유골을 훔쳐서 아버지의 유골과 섞어서 바다에 뿌려주기 위해) 샌프란시스코로 떠난다. 굉장히 소중한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몰라서 둘다 툴툴대기만 한다.

"어깨가 짓눌릴 정도로 네 비난의 무게를 느끼고 있어. 하지만 우리가 함께할 이 작은 모험이 너에게도 꿈을 실현할 기회가 될 수도 있어." _p.95_

"오늘 저녁은 아버지를 저버리지 말았어야 했는데. 세상에서 누가 이런 기회를 얻는단 말인가? 대체 왜 아버지가 나타난 뒤로 진정한 대화를 하지 못하는 걸까? 아버지와의 암묵적 대화의 침묵을 그토록 후회하던 그였는데." _p.97_

비행기에서 아버지의 도움으로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혼자서 끊임없이 중얼거리는 토마를 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기기도 하며, 다양한 경험을 한다.

"너는 왜 내가 생전에 한 일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내가 죽은 뒤에 일어난 일에만 질문이 많은 거니? 흘러가는 시간에 관심이 있다면, 우리가 대화없이 보내면서 잃어버린 시간을 만회하고 싶다면 지금이 기회야 빙빙 돌리지 말고 물어보렴. 네 아버지에 대해 알고 싶은 게 뭐니?" _p.152_

아버지의 그녀는 마농이라는 딸이 있다. 토마와 마농은 어린시절 휴가지에서 종종 마주치곤 했지만 너무나도 오래전의 기억이라 둘다 명확하지는 않다. 어머니를 잃은 마농의 슬픔을 토마는 이해할 수 있고, 유골을 훔치는 것에 대한 죄책감을 느낀다.

"마침내 우리 둘만 있게 됐어요, 엄마. 이상하게도 엄마가 아직 여기 있는 느낌이 들어요. 지난 몇 달 엄마는 오늘보다도 더 말이 없었어요. 내가 그토록 엄마에게 알려주고 싶던 자유, 엄마는 이제 원하는 곳으로 떠날 수 있어요. 어쩌면 훨씬 더 멀리 떠날 수도 있고요. 이따금 나를 보러 돌아온다는 조건이라면요. 엄마가 내 말을 들을 수만 있다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도 내어줄 수 있어요." _p.211_

유골을 훔치려는 작전은 수포로 돌아간다. 토마는 아버지에게도 미안하다. 아버지는 토마를 위로하고 둘은 한층 가까워짐을 느낀다. 그리고 토마는 아버지를 이제 진짜로 떠나보내야한다.

"언젠가는 샌프란시스코로 돌아와 심포니 홀 무대에서 연주할 것. 그리고 연주회가 끝나고 청중이 갈채를 보내면 네 아버지를 생각할 것."

"나는 무대에 오를 때마다 아빠를 생각해요." _p.218_

"슬퍼하지 마, 아들아. 함께 노력했잖아. 이 여행은 우리에게 주어진 덤의 시간이야.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건 아니지. 나 때문에 불행해하는 너를 보고 싶지 않아. 나는 멋진 인생을 보냈고, 네 인생은 훨씬 근사할 거야. 너를 기다리는 모든 걸 생각해. 너의 연주회, 사랑, 아름다운 아침, 살아 있는 기쁨, 네가 아직 경험하지 못한 모든 것들을. 살아볼 만한 멋진 인생이잖아. 네가 얼마나 운이 좋은지 알아? 내 운명에 대해 탄식하는 것으로 이 귀한 시간을 단 한순간도 날려버리면 안 돼. 내 선택이었고, 조금도 후회하지 않아. 나는 열심히 일했어. 그리고 너를 키웠고, 너를 사랑했고, 네가 성장하는 걸, 어엿한 남자가 되는 걸 봤어. 이렇게 멋진 남자가 되는 너를! 그러니까 내 말을 믿으렴. 나는 미련 없이 다시 떠나는 거야. ..." _p.249-250_

📘

개인적으로 상당히 오랜만에 만나는 "마르크 레비"의 책이었다. 그의 신작 <고스트 인 러브> 주인공들의 재기넘치는 대화가 재미있어서 큭큭 거리며 많이 웃기도 했지만, 그 안에 가슴이 따뜻해져오는 감동이 있어서 더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삶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누구를 위하여 무엇을 위하여 살아야 하는가,

만약 내일 죽는다면 오늘 무엇이 하고싶을까,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는 소중한 사람들과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면 좋을까, ...

많은 생각들이 마음속에 남았다. 그리고 하나씩 그에 대한 답을 정리하고 있는 중이다.

삶에 대해서, 소중한 이들에 대해서 상기하고 싶을 때, 이제는 만날 수 없는 그리운 이들이 생각날 때, 그리고 마음껏 웃고 싶을 때, 이 책을 꺼내서 다시 읽어야겠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재미있게 읽은 후 작성한 지극히 주관적인 서평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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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토요일에 I LOVE 그림책
오게 모라 지음, 신형건 옮김 / 보물창고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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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로해 준 그림책"

<토요일 토요일에>

오게 모라 지금 | 신형건 옮김 | 보물창고


2021년 새해가 되었어도 나아지는 것이 전혀 없었다. 자꾸만 일은 뒤엉켜만 갔고, 건강도 안 좋아졌다. 왼 손에도 문제가 생겨서 약과 물리치료를 병행하며 되도록이면 사용을 자제하라는 처방을 받았다. 그 후, 2주도 채 지나지 않아서 역류성 식도염에 걸렸다. 글을 많이 쓰지 못하는 대신에 점점 더 책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내가 그렇게 사랑하던 그림책 테라피와도 조금씩 멀어져만 갔다.

이렇게 많이 힘들어 하고 있는 나에게 큰 위로를 준 책이 <토요일 토요일에> 이 그림책이다. 눈물도 참 많이 흘렸다. 그리고 내가 지금 어떠한 상황에 처해 있든지 간에 다시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그 작은 빛이 내 안에서 다시 밝혀지는 것 같았다.

잠시 동안 가만히 머무르며,

눈을 지그시 감고,

크게 심호흡을 할 것.

📖

에이바는 일주일중에 단 하루, 엄마가 일을 쉬는 토요일을 매 주 기대하고 기다린다. 에이바와 엄마가 함께 지낼 수 있는 토요일은 에이바와 엄마에게 굉장히 소중한 날이다.

토요일마다 에이바와 엄마는,

도서관에 가서 주간 이야기 시간에 참석하고,

그 후에는 미용실에가서 느긋하게 머리를 하고,

또 공원 잔디밭에서 고요하고 편안한 오후를 보낸다.

그리고 이번 토요일에는 하룻밤만 열리는 인형극을 보러 가기로 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토요일.

에이바와 엄마는 시간이 아까워서 빠르게 준비를 하고 쌩~~ 하고 달려나가지만 모든 일정은 엉망이 되고만다.


너무 속상했지만, 둘은 가만히 서서, 눈을 지그시 감고, 휴우! 하고 심호흡을 한다. 엄마는 일이 어긋날 때마다 에이바를 달래주며 오늘은 특별한 날이 될 거라고, 오늘은 멋진 날이 될 거라고 주문을 외우듯이 이야기를 해 준다.

이제는 마지막 남은 일정인 인형극 마저 엉망이 되자, 엄마는 그만 무너지고 만다. 모든 것이 엄마의 탓인것만 같아서 에이바에게 너무나 미안한 마음이든다.

이번에는 에이바가 잠시동안 조용이 있다가 눈을 지그시 감고, 휴우! 하고 심호흡을 한 후에 엄마를 위로해준다.

"오늘은 특별한 날이었어요. 오늘은 멋진 날이었어요. 토요일은 끝내주게 좋잫아요... 왜냐하면 엄마랑 나랑 함께 보내잖아요."

그리고 집에 돌아와 둘 만이 아는 '그거'를 한다.

📙

모든 것이 엉망이 되어 에이바의 엄마가 무너졌을 때, 나도 함께 무너졌다. 그리고 나는 벌써 울고 있었다. 지금 내가 모든 것이 엉망이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던 것이다. 그렇게 울다가 뒷장을 넘겼을 때 에이바가 잠시동안 조용히 있다가, 눈을 지그시 감고, 휴우! 하고 심호흡을 하는 장면을 보며 나도 에이바를 따라하게 되었다. 눈을 감고 크게 호흡을 하니까 마음이 가라않았다. 그리고 에이바가 엄마를 안아주었을 때 나도 포근히 안겨서 모든 것이 곧 괜찮아지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큰 위로를 받았다.

모든 것이 엉망이되어 속상할 때 우리가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것은 굉장히 사소한 부분에서일 수도 있다. 그리고 어느곳에서건 위로를 받지 못하더라도 우리는 크고, 그리고 깊게 호흡을 하면서 마음을 가다듬을 수도 있다.

매일 매일이 특별하고 멋진 날이 되기를 바라면서,

오늘도 그림책은 나이를 불문하고 모든이들에게 기쁨과 사랑과 위로와 기운을 가져다 준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다.

아이들 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어른들이 그림책을 많이 보면 좋겠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감동적으로 읽은 후 작성한 지극히 주관적인 서평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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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설헌 - 제1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최문희 지음 / 다산책방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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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설헌>

최문희 | 다산책방


토닥토닥 분 바르고 큰머리 만지자니

소상반죽 피눈물의 자국인 듯 고와라

이따금 붓을 쥐고 초생달 그리다 보면

붉은 빗방울이 눈썹에 스치는가 싶네

_염지봉선화가_


허난설헌은 조선시대의 천재라 일컬어지는 시인이다. 그 당시에 여성은 사회에서 자신이라는 삶의 자리를 차지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시를 쓴다니. 그로인해 그녀가 받은 수많은 억압과 서러움과 아픔을 이 책을 통해서 세세하게 느낄 수 있었다.

아직까지도 여성보다는 남성의 세계에 속해 있는 건축을 전공한 나는 한때, 어떻게하면 여성으로 그리고 건축가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다. 그래서 여성에 대한 책도 많이 찾아서 읽곤 했다. 그 중 하나가 이 책 <난설헌>이다. 여성에 대한 수많은 책들 속에서 이 책이 나에게 인상깊었던 이유중에 하나는 여성의 업적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여성 그 자신, '허난설헌'이라는 여성의 삶에 초점을 맞춘 소설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서문 일러두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 글은 소설로, 오로지 소설로 읽혀야 한다. 실명으로 등장하는 인물의 성격과 행동 등의 묘사로 그 인물을 평가해서는 안 된다. 일부 등장인물의 경우 소설적 개연성을 위해 재구성한 허구임을 밝혀준다."

소설이 가진 매력이 이 작가의 말에서 확연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그래서 나는 소설이 좋다. <난설헌>은 허난설헌의 삶이 담겨있고, 그녀의 작품이 담겨있고, 그녀를 둘러싼 사람들과 그 시대의 풍경이 담겨있다. 마음으로 그녀를 이해하며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15만부 돌파 기념 에디션이 출간되어서, 오랜만에 다시 읽었다. 여전히 좋았다. 그리고 내가 그 사이에 경험한 세상이 책 속에 더 녹아있는 것 같아서 전보다 더 가슴이 아프기도 하고 더 눈물이 흐르기도 했다.

난설헌은 허초희의 필명이다. 그래서 우리는 허난설헌으로 알고있다. 책에서 난설헌의 이름은 다양하게 나온다. 어린시절은 초희, 결혼하고부터는 그미, 그리고 자호이자 필명은 난설헌. 그녀는 초희이자 난설헌으로 살아가고 싶지 않았을까 싶다. 그미로 불리는 순간부터 너무 험난한 일들을 많이 겪었다. 가슴이 아프다.

초희는 아버지 허엽의 둘째 부인 강릉 김씨의 둘째 딸로 비교적 자유롭게 자랐다. 그래서 둘째 오빠 허봉의 친구이자 최고의 시인이었던 이달에게 시를 배울 수 있었다. 또한 그당시 여성에게는 잘 허락되지 않았던 서책도 많이 접할 수도 있었다. 이렇듯 둘째 오빠 허봉의 지지를 받으며 좋은 시절을 보냈기에 허봉에게 많이 기대는 초희였다.

"허봉은 내일모레면 시집갈 초희에 대한 한 자락 연민과 염려가 울컥 밀려왔다. 비범한 재능이 그대로 사장되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은 숨길 수가 없다." _p.51_

초희는 열 다섯에 엄한 시어머니를 둔 안동 김씨 집안으로 시집을 간다. 그의 신랑 김성립은 결혼 후에도 매번 과거에 낙방을 하고 너무나 높아 보이는 초희에게 마음을 두지 못한다. 그미는 신랑에게서도 안정을 찾지 못하고 어디에도 마음을 둘 곳이 없다. 아버지 허엽의 죽음, 아이의 유산, 허봉의 유배, 어리디 어린 아들, 딸의 잇달은 죽음 등 너무 많은 아픔을 겪는다. 그녀는 이러한 삶을 시로 풀어낸다. 그리고 초연하게 이 세상에서의 삶의 마지막을 차근히 준비하고서 떠난다.

그 마지막이 가슴 절절하고 아팠지만 나에게는 그녀의 그 모습이 너무나도 아름답게 다가왔다.

"성립의 손에서 막무가내로 구겨지고 발기발기 찢어진 것은 시로 표현한 서한이 아니라 그미 자신인지도 모른다. 그미는 받아든 쪽지를 잘게 찢어서 물대접에 버렸다. 거무스름하게 번진 먹물이 그미의 가슴을 적신다. 메아리 없는 외침에 그미의 가슴에는 마른 먼지바람만 인다." _p.159_

"거울은 그미에게 있어 사유의 우물이었고 기다림의 자화상이기도 했다. 그런 거울을 놓고 산 지 몇 년이던가. 나를 버리고, 나를 팽개치고, 나를 숨기고, 나를 가두고 살아온 세월이었다." _p.255_

"어머니 김씨가 딸의 야윈 어깨를 얼싸안았다. '초희야. 너무 영민함도, 너무 다정함도, 지나친 나약함도 이 세상에 배겨나지 못하는 것을, 어쩌자고 머릿속에 촛불을 켜고 산다더냐.'." _p.338_

"희고 가느다란 손이 낙엽처럼 파삭하니 말라 있다. 모든 것을 놓아 버린 텅 빈 맑음이, 균의 더운 가슴을 무두질해댔다. 이렇게 사그라지는 건가, 얼마나 덧없고 속절없는 인생인가, 누이의 나이 스물일곱, 아직은 꽃다운 시절인 것을..... 오열이 목구명을 타고 넘는다." _p.359_

'먼저 갑니다. 부디 평안하소서.'

그미의 육신이 홀연 깃털처럼 날아오른다. ... 그 모두를 가슴에 묻고 흘러간다.

삼월 초아흐레, 꽃샘바람이 잦아든 건천동 후원 연못가, 밤새 추적추적 내린 비로 한두 잎 낙화한 목련 화판이 처연하다. 촛농이 되어 흘러내리는 붉은 눈물이 세상을 적시며 흘러간다. _p.362_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고 진지하고 읽은 후 작성한 지극히 주관적인 서평입니다. *


#난설헌 #최문희 #다산책방 #허난설헌 #조선의천재시인 #조선의여인 #제1회혼불문학상 #15만부돌파기념 #리커버에디션 #책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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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것들
로이 야콥센 지음, 공민희 옮김 / 잔(도서출판)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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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것들

로이 야콥센 지음 | 공민희 옮김 | 도서출판 잔


"아무도 섬을 떠날 수 없다. 간단히 말하면 섬은 곧 우주고 별은 눈 아래 풀 속에서 잠을 잔다. 하지만 간혹 섬을 떠나려고 시도하는 이들도 있다. 동풍이 거세지 않은 날에 말이다." _p.24_

나는 서울에서 나고자랐다.

어린시절,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께서 강원도에 한동안 지내셨던 것 말고는 딱히 시골이라 부를 만한 곳도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시골 생활은 더군다나 섬에서의 생활은 전혀 알길이 없었다. 그저 여태껏 읽어왔던 책들을 통해서 섬 생활이 시골 생활과 비슷하리라는 추측만을 한 채 이 책을 읽기 시작 했다.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 두 가지의 궁금증이 있었다. 하나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라는 제목의 의미에 대한 궁금증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노르웨이 작가의 작품이기에 북유럽 문학의 감성은 어떨지 호기심이 일어서였다.

책을 다 읽고나서 그 궁금증이 해소가 되었을까?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안도인지, 희망인지, 걱정인지, 정확하게는 잘 표현할 수 없는 그런 감정을 담은 큰 한숨이 입밖으로 새어나왔다. 궁금증에 대한 생각은 아얘 할 수가 없었다. 지금에서야 다시금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알것 같다. 제목의 의미를, 그리고 북유럽 문학이 아닌 노르웨이 섬 사람들의 감성을.

📖

바뢰이섬에는 이 섬의 합법적인 소유주이자 유일한 가구인 바뢰이 가족들이 살고 있다. 가장인 어부 겸 농부 한스 바뢰이, 한스의 늙은 아버지 마틴, 한스와 터울이 많이 나는 미혼의 여동생 바브로, 섬의 여주인 마리아, 그리고 한스와 마리아의 세 살 된 딸 잉그리드 이렇게 다섯이서 이 섬을 일구고 지키면서 살아간다. 시작은 이렇게 다섯이다. 하지만 하루 하루가 지나고 한 해 한 해 세월이 흐르면서 가족 구성원에도 변화가 생기고, 끝에는 다른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여섯 식구로 마무리가 된다. 세대의 변화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한스는 밖에서 걸쇠 두 개를 달아 서로 걸려서 창문을 열어 둬도 바람에 꽝 닫히지 않게 만들었다. 다른 작업과 마찬가지로 마틴의 시대에 끝냈어야 하는 일이었다." _p.108_

** 섬사람들의 생각과 일상과 하루의 삶을 담담하게 하나씩 매 장마다 풀어내고 있다. 그리 길지 않은 이야기들이 많은 장 (53장)으로 이루어져 있는 책이다. 한 장에 하나의 에피소드를 이야기 하는 것 처럼 보여도 그건 한 인물의 행동이기도 하고 모든 인물의 삶이기도 하다.

섬에서는 모두가 일을 한다. 밭을 일구고, 고기를 잡고, 잡은 고기를 말리고, 그물을 짜고, 배를 고치고, 끊임없이 몸을 움직인다. 내가 생각하는 어린아이들도 많은 일들을 금새 배우고 그 일들을 해낸다. 그래서 굉장히 놀라웠다. 4살의 잉그리드는 아버지가 잡은 고기를 함께 나르고, 7살의 잉그리드는 어머니에게 뜨개질을 배운다. 심지어 12살의 라스는 배를 수리하기까지 한다. (라스는 나중에 태어나는 바브로의 아들이다.)

"잉그리드는 더는 나무 자르는 일을 하고 싶지 않아서 레프세를 굽고, 소젖을 짜고, 크림을 분리하고 치대서 달콤한 치즈와 피클 같은 고메를 만들고, 실을 잣고, 뜨개질을 하고, 노를 젓고, 수영을 했다. 이제는 거의 모든 걸 할 수 있었다." _p.149_

바뢰이섬 사람들은 여러 가구들이 함께 살고 있는 다른 섬이나 육지(본토)로 나가고 싶은 생각을 마음속 깊이 갖고 있지만 누구도 말로 표현하지는 않는다. 잉그리드는 성인이 되어, 본토에서 하녀로 일하기 시작하지만 시련을 겪게되고 결국에는 섬으로 돌아오게 된다.

** 바뢰이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가 이 책에 담겨 있다. 잉그리드를 중심으로 그녀의 성장과 생각이 많이 표현되기는 하지만 자연이, 섬이 인간에게 주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아름다운 풍경과 자연에 대한 인간의 고통스러운 두려움을 담고 있기도하다. 그리고 지혜롭게 순응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엄숙게 느껴지기까지했다.

"폭풍은 널 해치지 못해." 한스가 딸의 귀에 대고 소맃쳤다. 하지만 잉그리드는 들리지 않았다. 두 사람 다 들리지 않았다. 그는 섬이 요동치고 가라앉지 않으며 영원히 그 자리에 딱 붙어 있다는 걸 몸소 느껴 보라고 소리쳤다. 이 순간 딸과 공유하고픈 신앙같은 거였다. _p.60_

** 참 광활하다. 하나의 거대한 서사시를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이들이 섬을 벗어날 수 없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책의 제목 <보이지 않는 것들>은 우리의 마음속에 있다. 인간의 삶이고 인간의 성장이고 또한 자연이다.

"아주 드문 침묵이었다. 이 일이 특별한 것은 섬에서 일어났다는 데 있었다. 경고 없이 숲속에서 내려오는 침묵보다 더 강했다. 숲은 종종 조용해졌다. 섬에서는 조용한 일이 별로 없어서 사람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며 무슨 일인지 서로 물었다. 침묵은 궁금증을 불렀다." _p.105_

📓

나에게는 모든 사항들이 흥미로웠지만, 너무나도 구체적인 섬 사람들의 삶이 담겨있어서 자칫 지루함을 느끼는 이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리고 노르웨이에 대해서 미리 알고 이 책을 읽으면 더 재미있었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든다. 책을 다 읽고 찾아보니 여러가지 노르웨이의 문화와 특징이 책 속 곳곳에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섬도, 커피도, 음식도.

끝까지 다 읽은 지금, 새로운 감동이 밀려오고있다. 말로 글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직접 느끼는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한두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해가 다시 고개를 내밀었다. 처음에는 삶은 대구의 눈처럼 게슴츠레하게 먼 북쪽에서 나타나더니 점점 더 노란색으로 바뀌고 한층 황금빛으로 변해 마지막 남은 안개를 모조리 몰아내고 야생마처럼 사방으로 그들의 시야를 터 주었다." _p.274_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고 감동적으로 읽은 후 작성한 지극히 주관적인 서평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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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도서관 2
자넷 스케슬린 찰스 지음, 우진하 옮김 / 하빌리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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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에 이어서 도서관 직원들이 어떻게 책을 사수할지. 그 당시의 상황들이 급박하게 진행될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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