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설헌 - 제1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최문희 지음 / 다산책방 / 202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난설헌>

최문희 | 다산책방


토닥토닥 분 바르고 큰머리 만지자니

소상반죽 피눈물의 자국인 듯 고와라

이따금 붓을 쥐고 초생달 그리다 보면

붉은 빗방울이 눈썹에 스치는가 싶네

_염지봉선화가_


허난설헌은 조선시대의 천재라 일컬어지는 시인이다. 그 당시에 여성은 사회에서 자신이라는 삶의 자리를 차지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시를 쓴다니. 그로인해 그녀가 받은 수많은 억압과 서러움과 아픔을 이 책을 통해서 세세하게 느낄 수 있었다.

아직까지도 여성보다는 남성의 세계에 속해 있는 건축을 전공한 나는 한때, 어떻게하면 여성으로 그리고 건축가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다. 그래서 여성에 대한 책도 많이 찾아서 읽곤 했다. 그 중 하나가 이 책 <난설헌>이다. 여성에 대한 수많은 책들 속에서 이 책이 나에게 인상깊었던 이유중에 하나는 여성의 업적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여성 그 자신, '허난설헌'이라는 여성의 삶에 초점을 맞춘 소설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서문 일러두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 글은 소설로, 오로지 소설로 읽혀야 한다. 실명으로 등장하는 인물의 성격과 행동 등의 묘사로 그 인물을 평가해서는 안 된다. 일부 등장인물의 경우 소설적 개연성을 위해 재구성한 허구임을 밝혀준다."

소설이 가진 매력이 이 작가의 말에서 확연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그래서 나는 소설이 좋다. <난설헌>은 허난설헌의 삶이 담겨있고, 그녀의 작품이 담겨있고, 그녀를 둘러싼 사람들과 그 시대의 풍경이 담겨있다. 마음으로 그녀를 이해하며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15만부 돌파 기념 에디션이 출간되어서, 오랜만에 다시 읽었다. 여전히 좋았다. 그리고 내가 그 사이에 경험한 세상이 책 속에 더 녹아있는 것 같아서 전보다 더 가슴이 아프기도 하고 더 눈물이 흐르기도 했다.

난설헌은 허초희의 필명이다. 그래서 우리는 허난설헌으로 알고있다. 책에서 난설헌의 이름은 다양하게 나온다. 어린시절은 초희, 결혼하고부터는 그미, 그리고 자호이자 필명은 난설헌. 그녀는 초희이자 난설헌으로 살아가고 싶지 않았을까 싶다. 그미로 불리는 순간부터 너무 험난한 일들을 많이 겪었다. 가슴이 아프다.

초희는 아버지 허엽의 둘째 부인 강릉 김씨의 둘째 딸로 비교적 자유롭게 자랐다. 그래서 둘째 오빠 허봉의 친구이자 최고의 시인이었던 이달에게 시를 배울 수 있었다. 또한 그당시 여성에게는 잘 허락되지 않았던 서책도 많이 접할 수도 있었다. 이렇듯 둘째 오빠 허봉의 지지를 받으며 좋은 시절을 보냈기에 허봉에게 많이 기대는 초희였다.

"허봉은 내일모레면 시집갈 초희에 대한 한 자락 연민과 염려가 울컥 밀려왔다. 비범한 재능이 그대로 사장되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은 숨길 수가 없다." _p.51_

초희는 열 다섯에 엄한 시어머니를 둔 안동 김씨 집안으로 시집을 간다. 그의 신랑 김성립은 결혼 후에도 매번 과거에 낙방을 하고 너무나 높아 보이는 초희에게 마음을 두지 못한다. 그미는 신랑에게서도 안정을 찾지 못하고 어디에도 마음을 둘 곳이 없다. 아버지 허엽의 죽음, 아이의 유산, 허봉의 유배, 어리디 어린 아들, 딸의 잇달은 죽음 등 너무 많은 아픔을 겪는다. 그녀는 이러한 삶을 시로 풀어낸다. 그리고 초연하게 이 세상에서의 삶의 마지막을 차근히 준비하고서 떠난다.

그 마지막이 가슴 절절하고 아팠지만 나에게는 그녀의 그 모습이 너무나도 아름답게 다가왔다.

"성립의 손에서 막무가내로 구겨지고 발기발기 찢어진 것은 시로 표현한 서한이 아니라 그미 자신인지도 모른다. 그미는 받아든 쪽지를 잘게 찢어서 물대접에 버렸다. 거무스름하게 번진 먹물이 그미의 가슴을 적신다. 메아리 없는 외침에 그미의 가슴에는 마른 먼지바람만 인다." _p.159_

"거울은 그미에게 있어 사유의 우물이었고 기다림의 자화상이기도 했다. 그런 거울을 놓고 산 지 몇 년이던가. 나를 버리고, 나를 팽개치고, 나를 숨기고, 나를 가두고 살아온 세월이었다." _p.255_

"어머니 김씨가 딸의 야윈 어깨를 얼싸안았다. '초희야. 너무 영민함도, 너무 다정함도, 지나친 나약함도 이 세상에 배겨나지 못하는 것을, 어쩌자고 머릿속에 촛불을 켜고 산다더냐.'." _p.338_

"희고 가느다란 손이 낙엽처럼 파삭하니 말라 있다. 모든 것을 놓아 버린 텅 빈 맑음이, 균의 더운 가슴을 무두질해댔다. 이렇게 사그라지는 건가, 얼마나 덧없고 속절없는 인생인가, 누이의 나이 스물일곱, 아직은 꽃다운 시절인 것을..... 오열이 목구명을 타고 넘는다." _p.359_

'먼저 갑니다. 부디 평안하소서.'

그미의 육신이 홀연 깃털처럼 날아오른다. ... 그 모두를 가슴에 묻고 흘러간다.

삼월 초아흐레, 꽃샘바람이 잦아든 건천동 후원 연못가, 밤새 추적추적 내린 비로 한두 잎 낙화한 목련 화판이 처연하다. 촛농이 되어 흘러내리는 붉은 눈물이 세상을 적시며 흘러간다. _p.362_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고 진지하고 읽은 후 작성한 지극히 주관적인 서평입니다. *


#난설헌 #최문희 #다산책방 #허난설헌 #조선의천재시인 #조선의여인 #제1회혼불문학상 #15만부돌파기념 #리커버에디션 #책추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