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화 쓴 공주님
글.그림 심미아
처음부터 눈에 들어오는 책은 아니다. 아마 직접 사라고 했으면 구입하지 않았을 책이다. 그런데도 우리 책꽂이에 자리잡게 된 건 타의에 의해서다. 지금 하고 있는 공부 중 과제로 선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아이도 한 번 본 후로 싫다고 밀어놓는다. 내가 본 느낌도 너무 철학적이지 않나 싶었다. 주제도 잡을 수 없었고 한 마디로 난감했다. 아무래도 안되겠기에 아이에게 협조를 구하기로 했다.
이거 엄마가 공부해야하는 책이거든. 그러니까 잘 좀 보고 생각해보자~.
알았어!
대답과 함께 자세히(조금 진지하게) 들여다본다.
그리고 며칠에 걸쳐 탐구(?)에 들어갔다.
그 동안 안보이고, 못 보던 게 보이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어째 표지부터 침울하다. 우울한 회색빛.. 침대 위에서 한 아이가 울고 있다.
그러나 표지를 넘기면 그런 염려를 씻겨내듯 활짝 핀 개나리 빛이다. 마음이 밝아지며 이야기가 그리 우울하지만은 않으리란 걸 짐작하게 된다. (실제 노란빛이 훨씬 밝답니다.)
창에 기대어 밖을 내다보는 공주님의 머리가 높다란데
"성머리다! 까만 게 다 창문이야."
(아이가 하는 말을 책에 조금씩 써놓았습니다. 본문 말고 흐리게 보이는 부분들입니다.)
공주님의 기발하고 자유로운 머리모양이 나타난다. 주전자에서 차를 따르는데 입구로 머리카락이 흘러나오고, 천사머리도 보이고, 머리 여기저기에 쿠키를 주렁주렁 단 쿠키머리를 하고 있고, 비오는 날은 우산머리를 하질 않나, 못 말리는 공주님의 상상이 끝이 없다.
책을 보던 공주님은 책속의 사자머리에 반해서 사자머리를 하게 되고..
사자는 그런 공주를 어이없어하는 눈초리로 보고있다.
이 장면을 보던 아이가
"중심잡고 있는거야. 그래서 막 땀이 나."
"힘들까봐 붙잡고 있어. 공주님 몸이 흔들리니까 어지러워 눈이 빙글빙글!!"
"사과 하나 따고 싶어."
공주가 팔을 쫙 벌리고 서있는 걸 중심 잡느라 그런다고 하고. 얼굴에 땀이 맺혀있고.. 몸이 살짝 흔들리는 걸 나타내느라 꼬불꼬불 애벌레 같은 표시도 있다. 또 공주를 붙잡고 있는 고양이의 눈이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다.
벌거숭이 임금님에서처럼 사기꾼이 등장하여 '달로 만든 머리장식이 어울리는 사람은 공주님뿐'이라며 공주를 현혹시킨다. 그리고는 모두 눈을 감으라고 한 뒤 왕관, 보석.. 신용카드도 훔쳐간다.^^ (이건 아이들은 잘 찾지 못하고 같이 공부하는 한 엄마가 찾아냈다.)
그러나 눈을 뜨고 거울을 본 공주의 머리 위엔 꼬질꼬질 낡은 장화가 쓰여있다. 공주의 놀란 마음을 커다란 거울에 커다랗게 확대된 모습으로... 그 충격이 어떠했을 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공주는 부끄러워하며 다음 페이지에서도 계단을 날아가듯 뛰어오르는 게 보인다.
이제 공주는 예전의 활기찬 모습에서 모든 걸 체념한 듯 방에 틀어박혀 있다. 물론 머리모양엔 신경도 쓰지 않고... 여기선 모든 것들이 색을 잃어버렸다. 그래서 더욱 스산하게 느껴진다. 상심한 공주의 심정이 그대로 전해져온다.
마지막 장면은 백성들이 각각의 신발을 머리에 뒤집어쓰고 재미있어하는 장면이다. 그걸 보는 공주는 표정이 다시 환해지며 좋아한다.
여기서 태현이가 새로운 말을 해서 나를 놀래킨다.
"주인공이 왕자님이라면 방에 들어가 울고 있는 게 아니라 장화를 칼로 막 잘랐을 거야.(왕자님은 옆에 칼을 차고 다니니까)그리고 나서 밖으로 나가 사기꾼한테 화를 냈을 거야."
"나한테 장난치지 마!"이렇게..
"그런 다음에 맨 마지막엔 부끄러웠을 거야. 사람들이 다 장화를 쓰기도 하는데 먼저 화를 냈으니까..."
이 책에 등장하는 공주님은 '벌거숭이 임금님'의 손녀이다. 태어났을 때부터 아버지한테 들어온 말이 있다. "절대로 옷차림은 신경 쓰지 말거라." 그러니 공주님은 무명옷만 입고 지낸다. 그러나 머리모양에 온 신경이 집중되는지, 공주님의 머리장식은 놀이의 형태로 개성을 표현하는 한 방법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놀라운 점은 아이들이 그림 속에서 이야기를 끄집어낸다는 것이다. 엉뚱하고 기발한 상상력을 마음껏 펼치는 공주모습을 통해 아이들의 자유로운 상상력을 기를 수 있는 그림책이라 할 수 있다. 또 안데르센 원작의 ‘벌거숭이 임금님’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보게 하면서 ‘벌거숭이 임금님’ 후편이란 느낌을 주는 설정이 독특하다. 더구나 그런 새로운 시도가 국내작가의 작품이란 점이 반갑다. 태현이도 처음엔 반기지 않았지만 지금은 가끔 펼쳐보며 중얼거린다. 접근방법만 신중하다면 필요에 의한 독서도 가능하다는 걸 배울 수 있었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알게 된다는 것도 새삼 깨닫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