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보다 매혹적인 시인들
김광일 지음 / 문학세계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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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시인 이형기) 께서는 일정한 정도의 어려움, 난해성에 대해 "시는 최초의 언어이기 때문에 당시대에 통용되고 있는 상투성을 벗어나 있으며, 따라서 필연적으로 어려운 것이 되지 않을 수 없다"는 논지를 펴고 계십니다. 그러나 그 어려움을 정녕 쉽게 말하는 방법은 없겠습니까? 그 어려운 경지로 손잡고 이끌어서 정신적 장애인도 그곳에 도달하여 산 정상의 기쁨을 함께 누릴 방도는 없겠습니까?

"그렇게 했으면 좋겠는데, 난 잘 안돼요. 남들이, 이를테면, 시가 좋더라, 그러면 기분이야 좋지요. 그러면서도 싫어요. 철저히 개인주의화한 것이지요."

이때까지 남편의 답변을 경청하던 부인께서 지나가는 투로 한마디 껴든다. "예술가는 변덕쟁이들이에요." - [투병, 새롭게 시를 벼린다]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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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를 쓰다 1 - 흠영 선집 돌베개 우리고전 100선 19
유만주 지음, 김하라 편역 / 돌베개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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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영에는 죽을 때까지 자기 확신을 갖지 못한 청년의 답답하고 회의적인 마음이 넘치도록 일렁인다. (역자 김하라님 ‘책머리에‘중)

밖에 나갈 일을 줄이는 것이 참으로 이득이 될 것이다. 잘 하느니 못 하느니 하는 지겨운 이야기가 귀에 들지 않고, 촌스럽기 짝이 없는 모습들이 눈에 닫지 않으며, 재주도 없고 지혜도 없는 진부한 내 몰골을 드러내지 않아도 될 테니 말이다.

그리하여 스스로 의취 있는 있는 일을 고요히 찾아 나간다면 무한히 좋을 것이다. 내 본성은 고요한 것과 잘 맞는다. 본성과 어울리지 않는 것을 억지로 해서는 안 될뿐더러 배워서 잘할 수도 없다.

(...)

고상하고 심원한 사람이 되면 손해일까? 맑고 준엄한 사람이 되면 손해일까? 대체로 이 두 가지 미덕을 갖고 있다면 세상의 척도에 부합하기 어렵다.

스스로 돌아보고 헤아려 보아도 이미 어긋버긋하고 두루뭉술하고 물정을 몰라, 나긋나긋하고 세련되게 꾸미기를 요구하는 세상의 규울에 너무나 맞지 않는다는 걸 알겠다.

- p.69 ‘세상에 나오지 못하는 호랑이‘

그저 나가서는 여러 사람들 앞에서 신세한탄이나 하고 들어와서는 또 저 혼자 탄식을 한다.
우유부단하고 나약하고 산만할 뿐 끝내 삶에 아무런 박자가 없다.
옛사람은 이런 걸 두고 ‘뜻을 세우지 못하는 병‘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

겉으로는 고상하고 빛나며 맑고 준엄한 것 같지만, 내실은 둔하고 나약하며 속이 텅 비고 엉성하다.
이런 점에서 온 나라에 너와 맞먹을 자 누구겠는가?

-p.74 ‘바람에 나부끼는 마음‘

나는 고상한 데도 비속한 데도 해당되지 않는다.
그저 비썩 메마른 처지를 견딘다.
세상사의 변화를 잘 알면 뭔가 긴요한 작용을 할 텐데 그런 변화를 잘 모르므로 작용을 할 줄도 모른다.

-p.84 ‘아무 것도 아닌 사람‘

‘언제나 오두마니 앉아 글 읽으며 한 해를 다 보낸다‘는 이 말은 책상물림의 썩어 빠진 행태를 잘 형용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나면 ‘죽음‘이라는 단어가 당도해 있다가 눈 돌릴 새도 없이 데리고 가는 거다.


-p.85 ‘아무 것도 아닌 사람‘

유만주는 스스로를 모멸하고 비하하는 별명을 붙인 적이 간혹 있는데 ‘열 가지가 없는 허랑한 인간‘도 그중 하나다.

내가 여기에 있어야 하는 필연적인 이유도 모르겠고,
얼굴이 잘 생긴 것도 아니고,
인간관계에서는 세련되지 못하고 서툴기만 하고,
특별한 재능도 없고,
무슨 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고,
집에는 돈도 없고,
한다하는 뼈대 있는 가문 있는 출신도 아니고,
말을 잘하는 것도 그렇다고 글을 잘 쓰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와 같은 아홉 가지 부정적 상황을 딛고 일어날 의지가 없다.

이로써 그는 ‘아무 것도 아닌 사람‘으로 자신을 그려 내고 있는데,
이런 그에게 ‘자신을 좋게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무엇보다 간절한 것이었을 터이다. - p.88 (역자 김하라님)

대체로 몸과 마음이 잠의 힘을 이기지 못하는 것은 역시 도무지 즐겁고 살맛나는 일이 없어서 게을러지기 때문일 것이다.

한밤중에 잠에서 깨었을 때를 생각해 본다.
눈에 보이는 것이라곤 칠흑같은 어둠뿐이고, 귀에 들리는 것은 아득한 정적뿐이다.
이런 시간은 유독 태곳적과 같아, 참고 견뎌야 하는 이 세상 가운데 별도로 존재하는 하나의 세계라 하겠다.
이런 시간에 몸을 뒤척이며 생각해 보면 내가 했던 말들이 혼돈과 순수함 사이에서 또렷이 떠오르는데, 여기에 참으로 무한한 의취와 맛이 있다.
그러나 해가 떠서 허다한 이들이 일어나고 번뇌가 밀려들어 나에게 들러붙게 되는 때보다 훨씬 낫다.
이런 까닭에, 맘이 탁 트인 사람들이 영원한 쉼을 즐거운 일로 여긴 것도 본디 깊은 뜻이 있었다 하겠다.

-
고요하고 캄캄한 밤이 벌건 대낮보다 나은 것 같다.
무언가 의미 있는 행동을 하고 세계에 영향을 미쳐야 한다는 생각이 없기에 그런 듯한데, 이처럼 아무런 작용이 없기 때문에 벌건 대낮과 볕바른 맑은 날씨를 버려두게 되는 것이다.
반면 비 내리고 흐린 날이나 고요한 밤에는 온통 어두침침하고 모호하여 ‘나‘와 내가 노닐 수 있다. - p.91

하늘이 내린 빼어난 품성을 타고난 이들이 있다.
그들 가운데, 도를 간직하고 재능을 품고 있어, 크게는 천하를 바로잡아 다스릴 수 있거나,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보람 있는 일을 할 만한 이가 얼마나 수없이 많을 것인가.
다만 때를 만나지 못한 나머지, 헛되어 태어나 헛되어 늙어 가다가 풀과 나무와 티끌과 마찬가지로 썩어 가고 소멸하게 되는 것이니
누가 다시 그들을 알아주겠는가? 이것은 예나 지금이나 애달프고 서글픈 일이다.

-p.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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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밭
최인호 지음, 김점선 그림 / 열림원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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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친구들은 여전히 젊은 날의 연인들처럼 외국여행 중에 서로 엽서를 써서 부치고 식당에 가서는 각자 다른 음식들을 하나씩 시켜서 한 스푼씩 나눠먹기도 하고 함께 손을 잡고 영화를 감상한다.

아내의 친구들은 서로의 결점들을 잘 알고 있지만 그것이 치명적인 독이 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친구가 가지고 있는 결점이 나에게도 있는 공통된 결점임을 잘 알고 있으므로.

아내의 친구들은 패거리를 이루어 모반을 꿈꾸지도 아니하고, 이따금씩 만나서 계집아이가 되어 서로 민들레꽃이나 사금파리 같은 하찮은 물건들을 소꿉장난처럼 나누다가 시간이 되면 각자의 집으로 어머니가 되어 아내가 되어 할머니가 되어 긴 그림자를 끌며 돌아온다.‘

TV는 경쟁적으로 시청자들을 사로잡기 위해서라면 그 무슨 방법이든 가리지 않겠다는 무차별적 선정주의로 치닫게 되었다. 주로 일본의 경박하기 이를데없는 집단 MC들의 쇼 무대를 그대로 직수입해 들여온 방송들은 또다시 출연자들의 행동에 일일이 자막을 달아 이들을 만화의 주인공으로 희화화하고 있다. 그리하여 TV는 연예인의, 연예인을 위한, 연예인에 의한 거대한 쇼 무대로 전락하고 말았으며 시청자들은 그들끼리 나와서 까불며, 말장난하며, 놀고 있는 장면을 훔쳐보게 되었다.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박한 생존 게임의 법칙은 전 출연자들을 보이지 않는 강박관념으로 사로잡아 모두 남보다 돋보이기 위해서 튀고, 과장을 하고, 쌍소리를 남발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TV에 나오고 있는 사람들은 대통령이건 정치가이건, 학자건, 성직자건 그 누구든 제3의 눈인 TV카메라에 비춰지는 나, 즉 진짜의 나가 아닌 가짜의 나에 매달려 전 국민들은 가짜의 가짜에 의한 가짜를 위한 어릿광대로 전락해버리고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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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과 전장 - 박경리 장편소설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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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戰場)과 시장(市場)이 서로 등을 맞대고 그 사이를 사람들은 움직이고 흘러간다.
사람들도 상품도 소모의 한길을 내달리며, 그리고 마음들은 그와 반대 방향으로 내달리고 있는 것이다.

사라져가는 민심을, 사라져가는 인민들의 불길을 억지로라도 되살리기에는 오직 승리가, 사람과 상품의 소모를 막아 줄 결정적인 승리가 있을 뿐이라고 기훈은 생각한다.

‘민중을 믿다니 어림도 없는 소리, 그들도 결코, 결코 우리를 믿지 않았다. 그들은 어떠한 약속도 믿으려 하지 않는다. 오직 현실을 받아들일 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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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빼미의 없음
배수아 지음 / 창비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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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걸어라, 울어라, 그리고 써라.
내가 이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그것뿐이었으므로.

걸어라, 울어라, 그리고 써라.
그러면서 한없이 비경제적이고 간헐적인 여행자로 죽는 날까지 남는 것일 뿐.

- ‘올빼미의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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