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친구들은 여전히 젊은 날의 연인들처럼 외국여행 중에 서로 엽서를 써서 부치고 식당에 가서는 각자 다른 음식들을 하나씩 시켜서 한 스푼씩 나눠먹기도 하고 함께 손을 잡고 영화를 감상한다.
아내의 친구들은 서로의 결점들을 잘 알고 있지만 그것이 치명적인 독이 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친구가 가지고 있는 결점이 나에게도 있는 공통된 결점임을 잘 알고 있으므로.
아내의 친구들은 패거리를 이루어 모반을 꿈꾸지도 아니하고, 이따금씩 만나서 계집아이가 되어 서로 민들레꽃이나 사금파리 같은 하찮은 물건들을 소꿉장난처럼 나누다가 시간이 되면 각자의 집으로 어머니가 되어 아내가 되어 할머니가 되어 긴 그림자를 끌며 돌아온다.‘
TV는 경쟁적으로 시청자들을 사로잡기 위해서라면 그 무슨 방법이든 가리지 않겠다는 무차별적 선정주의로 치닫게 되었다. 주로 일본의 경박하기 이를데없는 집단 MC들의 쇼 무대를 그대로 직수입해 들여온 방송들은 또다시 출연자들의 행동에 일일이 자막을 달아 이들을 만화의 주인공으로 희화화하고 있다. 그리하여 TV는 연예인의, 연예인을 위한, 연예인에 의한 거대한 쇼 무대로 전락하고 말았으며 시청자들은 그들끼리 나와서 까불며, 말장난하며, 놀고 있는 장면을 훔쳐보게 되었다.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박한 생존 게임의 법칙은 전 출연자들을 보이지 않는 강박관념으로 사로잡아 모두 남보다 돋보이기 위해서 튀고, 과장을 하고, 쌍소리를 남발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TV에 나오고 있는 사람들은 대통령이건 정치가이건, 학자건, 성직자건 그 누구든 제3의 눈인 TV카메라에 비춰지는 나, 즉 진짜의 나가 아닌 가짜의 나에 매달려 전 국민들은 가짜의 가짜에 의한 가짜를 위한 어릿광대로 전락해버리고 만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