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아무튼, 목욕탕 - 마음의 부드러운 결을 되찾을 때까지 나를 씻긴다 아무튼 시리즈 36
정혜덕 지음 / 위고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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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01 정혜덕.

누군가는 영혼까지 붙은 특정 음식을 먹으면서 푼다. 누군가는 동전 몇 개 넣으면 흘러나오는 음악과 어우러진 에코 잔뜩 들어간 자신의 목소리로, 누군가는 저 먼 곳의 요기들처럼 나무나 전사나 코브라의 자세로, 또 누군가는 이어폰을 꽂고 하염 없이 달리면서 잊고 털고 채운다.
이 책의 누군가는 목욕탕에 가서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스스로 또는 목욕관리사의 도움을 받아 묵은 때를 벗기고, 흰우유 한 팩을 마신다. 그러고 목욕탕을 나서면 청소년들을 가르치고 세 아이를 먹이고 남편과 투닥이고 실수를 자책하는 등등 모든 사는 일에 지친 몸과 마음이 조금이나마 풀리고 충전되는 모양이다. 대중목욕탕을 찾은 지 너무도 오래된 나는 새삼 신기하다. 그런 육체적이고 단순한 위안 거리가 있다면 좋을 것 같다. 아직 내게 맞는 잊고 털고 채우는 활동을 찾지 못했다. 읽고 쓰는 일이 어느 정도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긴 하지만 이건 너무 머리와 마음을 쓰는 일이기도 해서 조금 더 쉬운 뭔가가 필요해. 쟤 지금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냐, 편협하고 혐오가 가득한 남의 멍청한 말에 발끈한 마음은 따끈한 탕물에 몸을 담글 여유가 없어서 그냥 샤워나 대충하고 신경 안정제 몇 알을 입에 털어 넣으며 오늘 밤은 제발, 죽은 것처럼 잠들었으면, 아니 그냥 자다가 죽었으면, 그러다가 아침이 되면 다시 살아나서 아무렇지 않게 살아갔으면, 싶은 밤이다.

+밑줄 긋기
-순수한 연애, 오랜 연애, 시원찮은 연애, 미친 연애 등 각종 연애를 경험하고 나니 두 문장이 남았다. 첫째, 사람 마음은 변한다.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봄날은 간다>의 유지태가 되어 애끓는 절규를 외친들 소용이 없다. 사랑이니까 변한다. 사람의 마음에서 나온 사랑이니까 변하는 것이다. 사람 마음은 시시각각 움직이고 일관성을 갖추기가 굉장히 어렵다. 나는 변했는데 상대방이 아직 안 변했으면 나쁜 년이 되는 것이고, 반대 경우는 나쁜 놈이 되는 것이다. 둘 다 비슷한 시기에 변하면 유통기한 만료이니 미안해할 사람이 없어서 다행일 수도 있다. 둘째, 그러므로 낭만적 사랑은 언젠가 시든다. 물론 예외도 있겠지만 내 경험상 대체로 그렇더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러면 어쩌란 말이냐?

-혼자 목욕하러 온 분들은 말없이 몸을 씻고 때를 민다. 그런 분들이 만든 묵직한 침묵, 그 침묵이 주는 안정감을 누리고 있으면 남의 입에서 나와 내 귀로 들어온 독한 말들이 몸 밖으로 천천히 빠져나간다. 탕에 앉아 묵은 각질을 불리며 마음에 낀 말의 때도 함께 녹이곤 한다. 마음을 후벼 파는 말을 더는 곱씹지 않고 땀과 함께 내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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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01 23: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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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02 06: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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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agene 2021-03-02 13: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지금 장문의 댓글을 남겼는데 실수로 날렸어요...ㅠㅠ이런 바보팅이..ㅠㅠ 흑흑
열반인님 기운이 없으신 것 같아요.
괜찮으신지 걱정되네요 ㅠㅠ

반유행열반인 2021-03-02 13:50   좋아요 1 | URL
언제나 걱정 해주셔서 감사해요 ㅋㅋㅋ일하기실어증이죠 뭐 ㅋㅋㅋㅋ힘내보겠습니다. 예진님이야 말로 새 직장에서 고생 많으시겠어요 화이팅!!!!

2021-03-02 20: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3-02 20:4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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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07 23:5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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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08 06: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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