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오랜만에 밑줄을 그으며 책을 읽었다.
책의 제목과 커다란 나뭇가지 사이에 빨랫줄을 걸어 빨래를 늘어놓고는, 나무 의자에 앉아 고즈넉이 책을 읽는 여인의 모습이 파스텔톤 색체와 어울려 따뜻함을 느끼게 한다.
책의 내용만큼이나 여유롭고 평화롭다.
처음에 NHK의 사회부 기자로 재직하다가 퇴직 후 논픽션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일본 작가 야나기다 구니오의 경력만으로 본다면,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에게 적극적으로 그림책을 권하는 그의 노력은 생소하고도 이상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가 그림책의 번역 작업을 하면서 발견한 그림책에 대한 그의 생각을 읽노라면,
내가 아이들에게 좋은책을 선정해 주기 위한 모임에서 회원들끼리 주고 받았던 생각과 같은 부분이 많아서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논픽션이나 문예서를 이야기할 때와는 달리 그림책이라는 쟝르는 이야기하고 있는 것 자체에 가슴 뛰는 즐거움이 있다. 상상력, 공상력, 평이하지만 고르고 고른 언어, 유머, 개성적인 그림, 아름다운 그림, 대담한 그림, 그리고 삶과 마음 자세와 배려하는 마음 등을 확실하게 표현하고 있는 이야기 등을 맛보기 때문에 즐겁지 않을 이유가 없다(152쪽)
는 것이다.
아이를 키우면서 그림책을 읽어주고, 또 아이들에게 양서를 추천해 주는 모임을 몇 년째 쭈욱 해 오는 동안 나 역시 너무나 절실히 느낀 것이기에 참으로 공감하는 부분이었다.
다른 그림책이나 어린이책에 대한 비평서와는 달리,
이 책의 매력은 지은이가 자신이 감명깊게 읽은 그림책을 소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한 권의 그림책을 통해 어떻게 자신의 상처난 마음이 치유되었고,
다른 사람과 마음의 유대를 얻게 되었으며,
생활이 바뀔 만큼 영향을 받았는지 다양한 에피소드를 곁들이고 있어 더욱 실현성 있게 다가온다는 데 있다.
또한 여러 사람의 에피소드를 책의 제 3장'어른이야말고 그림책을 읽어야 한다'와 4장 '마음과 언어의 위기 시대에'에 소개함으로써 그림책의 힘을 보여준다.
하나. 어른이 그림책을 읽는 것의 의미에 대한 깨달음.
둘. 이러한 깨달음은 크건 작건 사람의 생활방식이나 아이와의 접촉 방식을 바꿀 만큼 영향을 가져다준다는 것.
셋. 읽어주기를 하는 사람도 소중한 무엇을 얻는다는 것.
넷. 그림책의 힘은 크고, 내일을 사는 힘이 되며, 인생을 떠받쳐 주는 힘이 될 수도 있다는 것.
지금 우리는 아이들이고 어른들이고 날마다 아침부터 밤까지 온갖 잡동사니 지식과 정보를 공부하느라 몸과 마음이 망가지고 메말라 가고 있다.
아이들이 날마다 등에 지고 어깨에 메고 이 학원 저 학원으로 넣어 다니는 책은 즐기며 읽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을 짓누르는 짐이 되어 아름다운 자연의 소리도, 사람다운 감정과 생각도, 인간다운 행동도 하지 못하게 막는다.
회사를 오고가는 어른들에게도 다름 아니며, 노년기에 접어든 무기력한 노인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그가 말한 '그림책은 자신이 아이였을 때, 아이를 기를 때, 인생 후반이 되고 나서 인생에 세 번 읽는다'란 캐치프레이즈처럼 아이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 평생 손에서 떼지 말라고 강조한다.
그가 소개한 대표적인 작품들에서도 나타나지만,
그가 이렇게 당당히 이야기할 수 있는 이유는
"그림책은 어른이 되어(특히 인생 후반이 되어) 읽으면 삶과 생명과 사랑에 대해 작품에 담긴 깊은 의미를 강하게 느낄 수 있다."고 말한 열성 속에 그 포인트가 들어있다.
나도 예전엔 그림책은 그저 아이들에게 읽어주는 책일 뿐이었지만, 점점 나이가 들어갈수록 그림책의 깊이와 상징성, 글과 그림의 조화로움에 흠뻑 매료되어 감동을 받는 그림책이 늘어간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에 내가 읽은 [여우의 스케이트](유모토 카즈미 글, 호리카와 리마코 그림,아이세움), [옆집에는 누가 살고 있을까](이지현 글, 변정연 그림,소년한길), [네 얼굴을 보여 줘](알레스 쿠소 글, 나탈리 슈 그림, 푸른나무+시소), [곰이라고요 곰](프랭크 태슐린 글.그림, 계수나무) 등도 지은이 야나기다 구니오가 얘기한 '슬픔을 살아가는 내일의 양식으로'전환하거나 도시화로 효율만을 추구하는 우리 사회가 내팽개친 소중한 것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게 하는 그림책으로 적극 추천해 주고 싶은 책들이다.
그림책은 분명 유아들과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기획되고 출판된 것이지만, 어른이 읽으면 그 언어의 맛과 너무나 절묘하게 표현된 그림을 통해 인생관과 세계관을 새삼 다시 생각할 만큼 뭔가를 느낄 것이 틀림없다.
부록에는 어른에게 권하는 그림책 1탄 24권과 2탄 27권이 어떤 것인지 궁금해 할 독자들을 위해 겉표지와 지은이, 출판사 등을 친절하게 소개하고 있다.
물론 책 속에 소개된 책들에 대한 간단한 목록과 한국어판으로 소개되지 않은 책들에 대한 구분도 잊지 않고 표시해 놓았다.
그가 소개한 그림책 중 벌써 읽어 본 책도, 아직 읽어보지 못한 그림책도 애써 찾아가며 눈여겨 읽어보고 싶다.^^
*수정할 부분 : 30p~31p 그림책의 그림 이미지 책 제목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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