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알라딘도서팀 > 2007년 2월 내맘대로 좋은책

안녕하세요 ^^ 절찬리(!!) 진행중인 내맘대로 좋은 책입니다.
이번 달부터는 코너에 활기를 더할 객원멤버를 모시게 되었습니다. 첫번째 손님은 알라딘 조유식 대표이사입니다. 많은 환영 부탁드립니다. ^^  

 

"우리 가슴은 부러움에 멍든다"
 
토스카나 달콤한 내 인생
필 도란 지음, 노진선 옮김 / 푸른숲
 
이 책은 열심히 일하는 독자들의 염장을 지른다. 토스카나는 유럽에서도 가장 아름답다는 지방이다. 영화에도 책에도 많이 등장했다. 키안티 와인이 넘쳐 흐르고 올리브 열매가 지천으로 널려있는 그곳에, 길 가다가 아무 파스타집에나 들어가도 정신이 혼미해질 만큼 맛있는 요리를 즐길 수 있다는 그곳에, 미국인 부부가 집을 사서 정착했다. 몇백년 된 벽돌집을 수리해 들어가 살기까지 이 부부는 시끄럽고 울기 잘하고 낙천적이고 정 많은 이태리 사람들과 부딪치면서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는다. 세상에 이런 사람들 처음 봤다고 고래고래 불평하는 이야기지만, 그런 고생 나도 좀 해봤으면 원이 없겠다 싶은 게 읽는 독자들의 심정이다. 더구나 저자는 걸핏하면 와인에 파스타에 갓 구운 빵에 신선한 올리브유까지 곁들여 맛의 향연을 즐긴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토스카나는 유럽인들에게 무릉도원과 같다. 세상의 시름과 부귀영화로부터 귀거래하여 올리브 농사를 지으며 혹은 포도나무를 키우며 살아가길 꿈꾸는 사람들이 많다. 그 꿈을 이뤄낸 사람들이 그 동네에 가서 무슨 고생을 하건 우리의 가슴은 부러움으로 멍들 뿐이다.
 
나의 프로방스
피터 메일 지음, 강주헌 옮김 / 효형출판
 
유럽인에게 또하나의 무릉도원이 프로방스다. 인상파 화가들의 고향이요, 태양과 와인과 치즈의 고장인 이 곳에 이번에는 영국인 부부가 둥지를 틀었다. 여행 삼아 이 동네를 지나다가 수영장이 달린 고풍스런 저택이 포도농장과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는 것을 보고 덜컥 사버린 후 무사히 정착하기까지 고생한 이야기를 잔뜩 떠들어놨지만 독자들의 가슴은 마찬가지로 원통할 뿐이다. 여기도 들어가는 레스토랑마다 엄청나게 값싸고 어마어마하게 맛있는 요리들이 즐비하여, 영국인 부부의 입은 마냥 행복하다. 동네 사람들은 칙칙한 영국인들과 달리 웃기고 정많은 사람들이다. 거리의 청소부도 미쉘린가이드에 나오는 별 다섯개 짜리 음식점을 품평할 정도로 멋쟁이 미식가다. 이 정도면 이미 지상낙원이다. 나는 낙원 이야기가 좋다. 삶을 더욱 사랑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대표이사 조유식
(sindbad@aladin.co.kr)

 
 
"윤대녕 다시 보기"
 
제비를 기르다
윤대녕 지음 / 창비
 
솔직히 고백하건대, 나는 윤대녕의 팬이 아니었다. 이번 책을 집어들 때도 기대가 크지 않았던 것이 사실. 그런데 처음 두 작품을 읽고 '어어' 놀란 후, 새벽까지 단숨에 읽어내렸다. 정말 오랜만에, 이야기에 몰입하며 읽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강산이 변할 세월 동안, 애쓴듯 애쓰지 않은듯, 그가 제 자리를 지키며 계속 묵묵하게 글을 써왔다는 걸 알겠다. 후기 등을 통해서도 알 수 있지만, 어떤 계기를 통해 작가로서 확실히 한 단계 도약했으며, 요 몇년 사이에 출간된 한국 소설 중에 가장 눈에 띄는 작품집임에 틀림없다.
 
"살면서 누구나 겪는 일이겠으나, 몇해 동안 여러 죽음의 소식을 접해야만 했다. 그중 한 죽음은 내게 너무도 뼈아픈 것이어서 그것을 덜컥 나의 것으로 받아들여 긴 세월 함께 몸부림쳤다. 그간의 사정을 여기 수록된 '낙타 주머니'에 쓰고 난 뒤, 불현듯 스스로 해방되었을 때, 나는 문학이 왜 내게 문학이어야만 하는 이유를 새삼 절실하게 깨달았다. 그 어찌할 수 없는 그리움들을 밖으로 떨쳐내기 위해서라도 나는 또한 쓰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이다. - 작가 후기 중에서"
 
윤대녕의 이번 새 책은 여전히 만남과 헤어짐, 결핍에 대한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인물들은 그대로이나 현실의 물감은 더 짙어졌고, 작가가 삶의 정체라 칭한 ‘그리움’의 깊이는 더 깊어졌다.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고스란히 지키되, 한 단계 더 성장한 작가적 시선과 역량을 보여주는 작품집이다.
 
책에 실린 8편의 단편 중 추천작은 '못구멍‘. 작은 우연과 오해, 훼손되어가는 것들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얼 바라는지도 모르는 채 계속 기다리는 일뿐. 사랑을 잃어버리고도, 결코 복원되지 못할 상처를 입고서도, 생 안에 계속 머물 수밖에 없는 모든 이들에 대한 연민과 이해의 목소리가 나직하게 마음에 스며든다.
 
“인생이란 헐벗은 나뭇가지 사이로 잠깐잠깐 스쳐지나가는 빛을 바라보는 것. 따뜻한 강물처럼 나를 안아줘. 더 이상 맨발로 추운 벌판을 걷고 싶지 않아. ...그래도 인생은 살 만한 거라고 내게 얘기해줘. - '못구멍' 중에서”
 
문학담당 박하영
(zooey@aladin.co.kr)

 
 
"책과 친구는 오래될수록 좋다"
 
원더랜드 여행기
이창수 지음 / 시공사
 
가끔은 옆에 신간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도 옛날에 읽었던 책에 손이 가는 때가 있다. '오늘은 새로운 책을 펼쳐들기에는 많이 지쳐있단 말이야!'라는 마음 속 외침이 들릴 때. 이럴 때는 다시 읽어 봐야지 하며 책상에 꽂아두었던 책을 꺼낸다. 한 일년 정도 지난, 특히 이런 여행서가 좋다.
 
한 번 읽은 책이라고 내용이 다 생각나는 것은 아니다. 사실 대부분 생각나지 않는다. 80%정도는 새 책이다. 이게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하다. 맘에 드는 책을 매번 읽을 수 있으니 좋지만, 기억력 감퇴 문제는 아닌지 매번 걱정이 된다. 한번 읽고 내용도 좋았고 편안했고 마음도 들었으니 다시 읽을 때는 설렁설렁 읽으면 된다. 읽는 다기 보다 책을 펼쳐놓고 쉰다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가끔 전에 읽었던 좋은 문장을 다시 발견하는 것이 즐겁다.
 
이 책은 내가 좋아하는 여행기의 삼박자를 다 갖추고 있다. 재미 (어쩌면 다른 사람은 썰렁하다고 표현할지도 모르겠지만) + 인생에 대한 이야기 (여행지의 풍경보다는) + 비전문가 (전문가의 글은 왠지 모르게 힘이 들어가 있다). 어린 나이에도 이런 훌륭한 여행기를 쓸 수 있다니 그의 재능이 부럽기만 하다.
 
카스트로가 계단에서 넘어졌고, 더 이상 카스트로의 쿠바는 없어질지도 모른 생각에 무작정 떠났다는 주인공. 아직 카스트로는 살아있지만 언젠가는 그의 말처럼 카스트로의 쿠바는 지구상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 더 늦기 전에 쿠바에 가봐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또 해본다.
 
경영.컴퓨터담당 윤성화
(rain@aladin.co.kr)
 
 
"공존은 생각이 아닌, 행동이다 "
 
나는 길고양이에 탐닉한다
고경원 지음 / 갤리온
 
15년 전에는 내가 버섯을 먹을 수 있게 되리라는 사실을 몰랐다. 5년 전에는 내가 알라딘에 다니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몰랐다. 3년 전에는 내가 혼자 살게 되리라는 사실을 몰랐다. 그 전에는...그 전에는...
 
셀 수 없이 많은 '그 전에는' 시리즈 중에도 유독 떠올릴 때마다 새삼스러운 것들이 몇 가지 있다. 그 중 하나가 '5년 전에는 고양이 홀릭이 되리라는 것을 몰랐다'이다. 지금 나는 고양이 두 마리를 키운다. 둘 다 다음까페 '냥이네'에서 입양한 아가들이다. 첫째는 한 달, 둘째는 세 달 동안 길에서 자랐다. 길에서 더 오래 생활한 둘째는 아무래도 사람이 더 무섭다. 손님이 오면 꼬리를 파르르 떨며 영역표시를 하거나, "난 너를 몰라!"라는 뜻으로 하악 소리를 연발한다. 부르면 달려오고, 쓰다듬어주는대로 몸을 맡기는 강아지에 익숙한 손님이 "이래서 고양이는..."라고 할 때에는 조금 섭섭하다.
 
이 책의 저자인 고경원씨의 블로그(http://blog.daum.net/forestcat)의 글에는 길냥이(길에서 생활하는 고양이를 부르는 애칭)에 대한 애정, 그들과의 공존보다는 대립을 택하는 사람에 대한 안타까움이 듬뿍 묻어난다. 서서히 길고양이에 대한 인식이 좋아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비상식적인 행각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한 예로, 검색창에 '한강맨션'이라고 쳐보라. 길고양이의 출몰에 시달리던 주민들이, 고양이들의 피난처였던 지하실 철문을 용접으로 막아버렸다. 이 대체 무슨 일인가. (관련카툰: http://www.lumensarah.com/attach/1/9131822720.bmp)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책을 보자면, 둥글둥글한 예쁜 길냥이를 보는 마음도 덩달아 착잡하다.
 
얼마 전 삼청동에서 열린 저자의 사진전은 성황을 이루었다고 한다. 참 다행이다.
 
외국어.만화담당 김세진
(sarah2002@aladin.co.kr)
 
 
"지루함을 덜어 드립니다!"
 
바티스타 수술팀의 영광
가이도 다케루 지음, 권일영 옮김 / 예담
 
“이 사건은 새로운 타입의 밀실 살인입니다. 여러 사람이 빤히 보고 있는 상태에서 당당하게 행했으니까요. 아마 모든 수수께끼가 풀릴 때쯤이면 의료 시스템과 사람의 심리가 만들어낸 밀실이었다는 것이 또렷하게 드러날 겁니다” (246쪽)
 
도조대학 의학부 부속병원에 심장이식 권위자 기류가 초빙된다. 그가 구축한 팀은 심장의식의 대체 수술인 바티스타 수술 전문. 수술 성공률 100%를 기록하던 팀이, 세 차례 연속 수술 실패로 환자를 잃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에 병원장은 수술에 문외한인 내과의 다구치에게 조사를 의뢰하고, 거기에 탐정역을 맡은 의사 출신 공무원 시라토리가 합세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
 
연속 수술 사망은 의료진에 의한 살인임이 밝혀지는데, 그 과정이 제법 재밌다. 병원 내의 권력관계에 따라 캐릭터들을 대비시켜 조직의 생리를 보여주는 것도 실감나고(구린 아저씨들 많다), 그 아수라에서 저만의 영역을 지키고 고집하며 살아가는 ‘욕심없는’(사실은 ‘다른 욕심’을 가진) 사람들의 심리를 파고든 것도 흥미롭고, 서로 다른 캐릭터가 만나 벌이는 심리전도 재밌다. 옮긴이 후기를 읽으니 이런 책을 두고 ‘일본 엔터테인먼트 문학’이라 한다는데, 그 기준으로 평가하면 서비스 충실도 별 넷은 된다.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소녀
다이 시지에 지음, 이원희 옮김 / 현대문학
 
문화대혁명 시기 부르주아 재교육의 일환으로 열일곱 살의 두 소년이 산골 벽지로 보내진다. 하루아침에 '인민의 적' 되어 힘겨운 노동을 견디는 기약없는 생활. 그러던 어느날 발자크의 책 한권을 얻게 된다. 그로부터 이어지는 사랑과 성장에 대한 이야기.
 
책을 통해 열리는 세상이 있고, 이전과 다른 존재가 되는 순간이 있고, 책 속 인물들과 무언가를 나누고 나면 더 이상 삶의 어리석음을 마냥 유쾌하게 비웃을 수 없게 되는 순간이 있다. 잘 씌어진 이야기를 읽는 것은 그런 일이다. 발자크를 읽는 책 속 소년들과 바느질 소녀처럼, 혹은 이 책을 읽는 나처럼.
 
출근길 지하철에서 이 책을 읽는 시간이 얼마나 힘이 됐는지, 작가가 알리 없지만, 그래도 고마움을 표해둔다. 답답할 때마다 리 책상에 놓아둔 이 책을 바라보고 기운을 냈다. 이야기와 함께 살아간다는 건 이런 거다. 그래서 나는 긴장된 마음으로 때론 경박하고 때론 진지하게 이야기를 읽어간다.
 
덧. 이 책은 북디자인도 너무 멋지다. 표지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여러 곳을 여행할 수 있다니!
 
인문사회담당 김현주
(realsea@aladin.co.kr)
 
 
"anywhere but here"
 
생은 다른 곳에
밀란 쿤데라 지음, 안정효 옮김 / 까치글방
 
삶을 계량하는 취미는 없지만, 흘러가는 하루하루는 때론 그 끔찍한 유사성으로 인해 오직 잴 수 있는 것으로만 자각된다. 담배 한 갑이 비면 하루가, 지포 라이터의 기름이 떨어지면 보름이, 무심코 인출한 통장의 잔고가 바닥을 보이면 한달이 간다. 어쩌면 삶이란 그것이 전부여서 생각보다 일찍 담배가·기름이·잔고가 떨어지면 당신은 당황한다. 마치 삶이 당신을 배신하기라도 한 것처럼, 살의 한 구석이 베이기라도 한 것처럼.
 
그 숫자들로부터, 온갖 잴 수 있는 것들로부터 -당신의 삶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당신은 책을 읽는다. 부드러운 단어들 속으로, 아름다운 천처럼 잘 짜여진 문장들 속으로, 뛰어든다. 하지만 대게 당신은 초대받지 않았고, 따라서 철저한 이방인일 뿐이다. 당신은 여전히 도망자이고, 그래서 쫓기듯이 책을 읽는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숫자를 확인하며, 마지막 장까지 남은 페이지를 계산하며.
 
마침내 도착한 마지막, 때때로 당신은 눈물을 흘리겠지만 아무 것도 바뀌지는 않는다. 당신은 그저, 한 가치의 담배를 피고, 읽은 책의 목록에 하나를 더한 후, 또다시 도망칠 뿐이다. 어딘가로, 당신을 끝낼, 혹은 당신에게 진짜 삶을 안길,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 그곳으로. 당신은 언제나 도망칠 뿐, 결국 살아보지 못했다. 생은 다른 곳에 있고, 당신은 결코 그곳에 닿을 수 없을테니까. 그래서 당신은, 자조적인 심정으로 한 권의 책을 집는다.
 
행복한 책읽기
김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죽어버린 이를 추억하기란 얼마나 얄팍하며 또 쉬운가. 하지만 잠시, 담배라도 한 대 피우며, 내버려두도록 하자. 삶 없는 삶 속에서라도, 고요하며 뜨겁게 빛나는 한 순간은, 필요하기 마련이니까.
 
어린이담당 금정연
(stereo@aladin.co.kr)
 
 
 
"William, it was really nothing"
 
딱 90일만 더 살아볼까
닉 혼비 지음, 이나경 옮김 / 문학사상사
 
아기다리 고기다리던 닉 혼비의 신작이 (이제야) 번역, 출간되었습니다. 소설은 역시 재미, 꼭 필요한 것은 위트, 추가로 스타일이라고 생각하신다면 당장 집어드셔도 무방합니다. 언제나처럼 그렇게 가볍지만은 않지만요. 위트와 대중문화에 대한 찬탄(및 비난) 때문에 간과할 수도 있지만 사실 그의 소설 세계는 이제껏 축구광, 우울증, 왕따, 자살, 혼외정사, 이혼, 부랑자, 제3세계의 부채 등을 다뤄왔습니다. 이번에는? 그보다 더한 막장 인생을 당신을 기다리고 있죠. 12월 31일 밤, 모두가 축제 분위기에 들떠 있는 가운데 토퍼스 하우스의 옥상에서 자살하기 위해 네 명의 주인공이 모여듭니다. 미성년자와 성관계를 갖고 명예와 지위를 모두 잃어버린 전과자, 식물인간인 아들을 수발하며 19년간 자신의 인생을 포기했던 여인, 마리화나와 싸움질, 욕지거리가 전문인 십대, 그리고 음악에만 빠져 살다 인생을 잃어버리게 생긴 록커가 바로 그 주인공 들입니다. 스미스(The Smiths) 만큼이나 뒤틀린 유머를 발휘할 줄 아는 닉 혼비는 과연 이들을 어떻게 이끌어 나갈까요. 그 끝은 해피엔딩일까요, 아닐까요. 진지하지 않은 척 내뱉는 인생에 대한 쓰라린 농담. 작가는 그런 간절한 희망에 대해서, 우리가 살도록 만드는 힘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거리에서 스미스의 "윌리엄, 그건 아무것도 아니었어"를 흥얼거리는 캐릭터와 함께 말이죠. (참, 이 소설엔 <진짜 좋은 게 뭐지?>에서 연유된 것 같은 디제이 '굿뉴스'가 등장합니다.)
 
로맹 가리
도미니크 보나 지음, 이상해 엮음 / 문학동네
 
역시 편력은 부리고 봐야... 라는 생각이 들게 할 만큼, 격동의 시대를 두려울 것 없이 살았던 작가의 인생은 파란만장합니다. 잘 뜯어보면 뻔뻔한 인생이지만, 그 뻔뻔함이 도를 지나치면 왕왕 그렇듯이 매혹적이기도 하고요. 대사관이 되기 전까지 이십대의 가리는 (책을 읽고 나니 이런 호칭을 쓰게 됩니다) 죽을 고비만 대여섯 번 넘깁니다. 그게 그냥 위험도 아니고 동료들을 여러 명 잃을 정도로 위급한 상황들이었죠. 그런데 가리는 이 와중에도 글쓰기를 넘추지 않았고, 결국 작가라는 훈장을 달게 됩니다. 드골 장군(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의 무공훈장과 함께 말이지요. 그것도 전쟁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는, 조용하고 사려 깊(을 것 같)은 소설로 이뤄낸 일이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그렇겠지만, 저 역시 에밀 아자르와 관계된 부분이 궁금해서 책을 집어들었는데, 역시나 흥미진진하더군요. 가리의 소설들을 다시 읽어보고 싶게 만들어 주는 건 덤입니다.
 
 
영화감독이 된다면(될리가...) 꼭 해보고 싶었던 것이 테리 길리엄의 [바론의 대모험]처럼 구식 특수효과를 잔뜩 집어넣은 영화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유행을 선도하는 뇌(Brain) 전문감독 미쉘 공드리가 2006년에 그 일을 해버리고 말았더군요. 그건 그렇고, 골판지와 셀로판지, 솜 등을 활용해 몽롱하고 감상적인 세계를 만들어낸 공드리의 세계 속에서 빛나던 또 하나는 '음악'이었습니다. 어디선가 영화의 배경음악이 입혀지는 과정을 보았는데, 오케스트라가 튜닝하는 것 같은 음산한 선율이 새롭더군요.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이 부른 "If you rescue me"의 가사가 '뇌' 속을 맴도는 건 비단 오늘이 부슬비가 내리는 날이기 때문만은 아닐 겁니다.
 
청소년.예술.종교담당 김재욱
(actually@aladin.co.kr)
 
 
"삶의 처방전"
 
나를 격려하는 하루
김미라 지음, 이은호 그림 / 나무생각
 
정신없이 하루하루 바쁘게 살다보면, 왠지 모를 쓸쓸함과 불안감이 밀려올 때가 있기 마련이다. 가끔은 따뜻한 위로가 절실하게 필요한, 그런 날... 무심코 지나쳐 버리기도 하고, 때론 다정한 친구와의 커피 한잔의 여유와 수다로, 또 어떤 날은 아무 생각없이 웃을 수 있는 코믹 영화 한편으로 풀어버리기도 하지만, 우울했던 그런 날을 한 편 한 편 진솔한 이야기로 달래준 이가 있었으니... 바로 이 책 <나를 격려하는 하루>
 
25년동안 방송 작가로 글을 써 온 작가는 일상에 숨겨진 삶의 의미를 찾아내는 특별한 힘을 지녔다. 가녀린 꽃대 위에 꾸깃꾸깃하지만 고운 빛의 꽃잎을 자랑하는 양귀비 그림도 책 군데군데에서 시선을 끈다. 인생이란 이런 거란다, 하나 하나 찬찬히 가르침을 전해주는 듯한, 그래서 유난히도 줄 긋고 기억하고 싶은 부분이 많아 다 읽고 보니 접힌 부분이 많기도 하다.
 
몇 달전쯤 처음 책을 받아들고 무심코 몇 장 들춰보았을 때 뭔가 탁 머리를 치는 느낌을 주던 한 토막의 글이 있었다. '사람은 이해의 대상이지, 결코 판단의 대상은 아니다' (본문 '사람은' 중에서) 그 즈음엔 부대끼는 인간관계 속에서, 나름대로의 잣대로 다른 이들을 평가해가며 한없이 불만을 키워가고 있던 시기였다. 당장 책상 앞 모니터에 적어놓고 마음 속으로 되뇌이며 조금은 마음을 다스릴 수 있었던 기억이 이번에 다시금 조언과 격려가 필요했던 내게 끝까지 읽어볼 마음을 가지게 했다.
 
유독 예술가들의 일화가 많이 소개되어 있어 유명한 그들의 화려한 삶 뒤켠에 숨겨진 사랑과 고뇌, 가치관 등을 알게 해 주었고, 또 그 안에서 깨달음을 얻게 해주는 글들은 김미라 작가의 예술에 대한 깊은 조예와 애정을 엿볼수 있게 해 준다. 또한 그저 지나칠 수도 있는 주위의 사물들이나 사람들에게서 그 의미를 찾아내는 작가의 시선이 감탄스럽기까지 하다. 요즘같은 웰빙 시대에 진정한 웰빙은 좋은 음식이나 규칙적인 운동보다도 마음다스리기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인생길에 혜안을 가진 선배의 따뜻한 격려가 전해지는 이 글들을 읽으면서, 내 주위 사람들의 소중함, 이미 가진 것들에 대한 감사함에 대해, 또 조급하기만 했던 내 허술함과 빈틈에 대해서도 조금 여유로워진 마음으로 되돌아 본다.
 
그 풍경을 나는 이제 사랑하려 하네
안도현 엮음, 김기찬 사진 / 이가서
 
시를 제대로 읽고 느껴본 것이 언제였는지. 아주 간간히 베스트셀러에 등장하는 유명 작가들의 대표적인 시들을 주워 들었던 거 외엔 아주 오래된 듯 하다. 시 안 읽는 세상에 대체 어떤 시길래 그것도 '안도현의 노트에 베끼고 싶은 시'라는 건지 궁금해졌다.
 
골목길에서 너무나 해맑게 웃고 있는 보조개 소녀의 흑백사진. 그 표지부터가 미소를 머금게 한다. 산동네에서 온갖 잡동사니를 들고 소꼽장난을 하는 어린 아이들의 모습, 이제는 잘 쓰지도 않는 '복덕방'이라는 간판아래 툇마루에서 입이 찢어지게 하품하고 계신 머리 하얀 할머니의 모습하며 책 곳곳에서 정겨운 사진들이 사실 시보다 더 매력있게 다가온다. 소녀시절 그저 미사여구에 감탄해가며 외워대던 시와는 많이 다른 시들이다. 대부분 서술형의 조금은 투박한..하지만 한 줄 한 줄 그냥 좋다는 느낌..' 교과서에 나오는 정형화된 시의 감상을 받아들이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문득 신났다.
 
시 한 편마다 곁들여지는 작가 안도현 나름의 견해도 재미있다. '부부'라는 시에서는 나란히도 아니고, 앞뒤도 아닌 이차선 도로의 양끝을 밟으며 걸어가는 부부의 모습을 담아낸다. '탓도 상처도 밟아 가는 양 날개 / 안팍으로 침묵과 위로가 나란하다' 요새 우리네 시선에선 촌스럽기만 한 그 풍경이 그저 묵묵히, 심심하게 하지만 서로를 보듬으며 세월을 함께한 내 부모님을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 또 한번 미소를 머금는다.
 
외서담당 공현숙
(ball98@aladin.co.kr)
 
 
"가끔은 자유와 이상과 고독에 대해서도 우리 얘기해"
 
도쿄 타워
릴리 프랭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엄마는 매일 궁금한 게 많다. 아침은 뭘 먹었는지, 비가 오는 건 알고 있는지, 택시에서 자버린 건 아닌지, 맨날맨날, 지치지도 않고, 궁금한 게 많다. 나는 엄마한테 궁금한 게 없다. 허리가 아픈지 여행은 갈건지 말건지 내 걱정 말고 뭘 하면서 하루를 보내는지 나는 물어본 적이 없다.
 
그 엄마의 이야기를 쓴 <도쿄 타워>는 간만에 읽는 '정통 신파'다. "이런 글을 써내다니 작가는 악취미!"라고 읽는 내내 욕했다. 울었다. 사는 게 그렇지 자식이 그렇지 뭐, 생각했다. 세상에 엄마 이야기보다 더한 신파가 있을까, 얘기를 시작하면 밤을 새고 하루를 넘겨도 다 못할 엄마의 이야기. <도쿄 타워>는 그런 이야기다.
 
흑과 다의 환상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북폴리오
 
서른여덟 살 네 남녀가 여행을 떠난다. 숨겨왔던 이야기를 드러내기도 하고 마음 속으로만 되짚어보기도 한다. 이것으로 끝. 도무지 무슨 감상을 어떻게 덧붙여야할지 모르겠다. 털어놓을 수 없던 비밀을 앙코르와트에 가서 속삭일지 높은 곳에 올라 묻어두고 올 지는 각자의 마음. 하루쯤 밤을 새워 말없이 걸어보고 싶다. 늦기 전에 한번은 트레킹을 떠날 수 있으면 좋겠다. 인생은 만나고 헤어지고 또 만나고 헤어지는 일.
 
그리고 이번 달, (내맘대로존책과 별도로) 내내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던 문장은 이것이었다.
"인생이란 헐벗은 나뭇가지들 사이로 틈틈이 지나가는 햇살을 바라보는 것. 따뜻한 강물처럼 나를 안아줘. 더 이상 맨발로 추운 벌판을 걷고 싶지 않아. 당신의 입속에서 스며나오는 치약냄새를 나는 사랑했던 거야. 우리 무지갯빛 피라미들처럼 함께 춤을 춰. 그래도 인생은 살 만한 거라고 내게 얘기해줘. 가끔은 자유와 이상과 고독에 대해서도 우리 얘기해. 화병처럼 나는 주인만을 사랑해. 나도 너의 주인이 되고 싶어. 당신이 먼저 잠든 밤마다 나는 이렇게 한줄씩 쓰고 있어요." - <제비를 기르다> '못구멍' 중에서
 
편집팀장 이예린
(yerin@alad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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