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시절,, 책 내용이 온통 한자어 투성이라, 한자 사전을 옆에 끼고서 조윤제 선생이 썼던 [한국문학사]를 공부했던 기억이 난다.
교수님이 들려주시는 각 문학에 얽힌 재미난 얘기들은 고등학교 시절에 얼핏 들어서 제대로 맛보지 못했던 문학이란 것에 대해 상당히 흥미를 느끼도록 해 주었기에, 토를 달아가며 읽어야 했던 한자들마저도 전혀 밉지 않고 풋풋하게 다가왔었다.
그리고,,,너무나 많은 시간이 흘러 버린 지금.
'박물관'이란 이름을 달고서 그 때 만났던 상상력 넘치는 문학들이 고스란히 한자리에 모여 앉아서 어린이들의 시선을 사로잡으려 한다.
감회가 새롭기 그지없다.
수많은 어린이책들이 화려한 겉표지와 현란하고 달달한 내용들로 아이들을 끌어당기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데, 과연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처럼 누룽지맛 나는 우리의 옛문학에 아이들이 눈길이나 돌릴까?'하는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소파에 편안하게 누워서 '어렵게 묘사된 문학의 흐름을 이리도 재미있게 쓸 수도 있구나!'란 생각이 미치자, 글쓴이 장세현씨가 큰일을 하나 해 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중.고교 국어책에서나 볼 수 있는 문학작품들을 아이들이 쉽게 맛볼 수 있도록 고전적이면서도 해학적인 삽화를 넣어서 시각적 이미지화 시킨 것부터가 아주 세련되다.
그런데도 중,고교 교과서에서 처음 접하게 되면 정말이지 고리타분한 고전으로 아이들에게 다가가는 경우가 많다.
한자로 씌어진 원문이나 딱딱한 한자어투는 흑백의 규격화된 교과서와 더불어 선생님이 들려주시는 곁가지식 얘기들만 중구난방 흩어져서 머리 속에 남게 되니, 시대적 맥을 잡기란 사실상 쉽지 않은 것이다.
그러면 결국 재미난 입말에서 시작된 문학은 어느새 '지겨운 문학'으로 전락해 버리고 만다.
또, 고대가요인 <구지가>부터 향가, 고려속요, 시조, 가사, 고전 소설, 근대 초기 문학인 <김소월의 시>까지를 시대적 흐름에 따라 역사 이야기를 섞어가며 맛깔스럽게도 풀어낸다.
어떤 시대적 배경 속에서 이런 이야기가 생겼으며, 우리 문학사에서 지니는 가치는 무엇인지에 대해 쉽게 이해하도록 꾸며놓은 것이다.
그래서 구성 또한 상당히 체계적이고 깊이가 있다.
문학 작품 하나하나는 초등학생들이 봐도 전혀 어렵지 않도록 재미있게 소개되고 있고,
이야기가 끝나면 여운과 함께 그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숨은 내용을 <작품 속 이야기>란 카테고리로 묶어서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그리고 이어지는 <한 걸음 더>는 말 그대로 그 작품이 있게 된 시대적 배경과 사상, 그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 등으로 작품 내용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흥미로운 정보들을 제공한다.
문학상식을 풍부하게 넓혀 주는 견인차 역할을 하는 셈이다.
역사적 순서대로 이야기들을 풀어놓았기 때문인지,
가만히 이 책을 끝까지 읽다보면, 시대에 따라 그 특징이나 내용이 조금씩 달라졌음을 알 수 있다.
처음에는 비현실적이고 황당 무계한 내용이 많다가 점차 현실을 반영하는 작품들이 많이 나오면서 서민들의 생각을 대신 말해 주는 작품이 많이 창작되었다는 것이다.
즉, 좀더 인간다운 세상을 바랐다는 점이다.
그래서 지금 이 시대에도 이런 작품을 읽으며 분노하고, 웃고, 가슴 졸이고,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것이 아닐런지......
이 책을 읽으면서부터, 계속 예전에 깔깔거리며 읽었던 옛시조 한 수가 부쩍 마음을 끈다.
지금 읽어도 여전히 재미있다.
우리 아이들이 문학을 어렵고 딱딱한 것이 아니라, 이렇게 즐겁고 재미있는 것임을 한 방에 깨우쳐 줄 재치만점의 사설시조!
두꺼비 파리 한 마리 물고 두엄더미 위에 올라 앉아
건너산 바라보니 날쌘 송골매 한 마리가 떠 있거늘 기겁을
하고 놀라 펄쩍 뛰어내리다가 두엄더미 아래 굴러떨어졌구나.
두꺼비 일어서며 말하길, 휴우 다행히 몸이 재빠른 나였기에
망정이지 둔한 놈이었으면 다쳐서 멍이 들 뻔했구나!
해학 속에 숨은 날카로운 풍자가 아무리 봐도 일품이다.하하하~~~
이 책을 제대로 신나게 읽은 어린이라면 나처럼 큰소리로 웃게 되겠지? ^^
어두침침한 민속박물관에 처박혀 있을 뻔 했던 우리 옛문학을,,,,
어른과 아이들이 방학 체험학습 삼아 삐죽 쳐다 보고 오는 것이 아니라, 생각날 때면 언제든 신나게 볼 수 있는 밝은 어린이 도서관으로 자연스럽게 분위기를 옮겨 놓은 듯하다.
맨 뒤에 실린 '국문학사 연표'는 연대를 쭈욱 나열하고 소개된 작품이 국문학사에서 어디 위치에 있는지를 한 눈에 볼 수 있게 정리한 것이지만, 차라리 없는 것이 낫지 싶다.
아이들이 쉽게 알 수 있도록 시대명을 적어 구분을 해 주는 것도 아니고,
B.C(기원전)와 A.D(기원후)로 나눠 딱딱한 도표 속에 다른 친구들이 알지 못하는 풍부한 지식들을 갖게 해주려고 했다니.......
부담없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어서 좋다고 박수치며 입이 마르도록 칭찬하던 내게는,
숫자와 작품을 꿰맞춰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인지 영~ 끝맛을 쌉싸름하게 만드는 '옥의 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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