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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망설이다 하루가 다 갔다 - 불안, 걱정, 회피의 사이클에서 벗어나기 위한 뇌 회복 훈련
샐리 M. 윈스턴.마틴 N. 세이프 지음, 박이봄 옮김 / 심심 / 2023년 6월
평점 :

이 책을 읽고나서 떠오르는 키워드를 딱 하나만 선택해보라고 한다면 아마 모든 독자들이 ‘예기불안’을 선택하지 않을까? 이 단어를 처음 읽고는 무슨 뜻인지, 불안과는 다른 것인지 등의 질문이 떠올랐고 생소한 이 단어가 곧 독서의 계기가 되었다.
저자는 서문에서부터 이 책을 꼭 순서대로 읽을 것을 당부한다. 앞부분에서 설명하는 불안이 일어나는 근본적인 과정들을 이해해야 후반부에 제시되는 내용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조급한 마음에 곧장 해결책을 찾아 8장부터 펼친 독자는 이런 주의를 마주하게 된다. 그러니 웬만하면 저자의 의도대로 독서할 것을 권한다.
그래서 도대체 예기불안이 뭔데? 나와 같은 호기심으로 이 리뷰를 보고 있을 분을 위해 책의 정의를 알려드리자면 ‘예기불안anticipatory anxiety’이란 스스로 불안하거나 불편하게 만들 것이라고 예상되는 사건과 상황들을 예측하면서 경험하는 불안을 의미한다.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면 21쪽에 실린 공포의 3단계를 보면 좀 더 이해가 쉽다. 예를 들어 ‘나는 벌이 무섭다’고 두려움을 가질 수 있다. 근데 그 다음에 ‘벌을 보면, 나는 너무나 공포에 질려서 공황발작을 일으키다가 통제력을 잃거나 심장발작을 일으킬지도 몰라.’ 라고 생각한다면 두려움에 대한 두려움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생각에서 더 나아가 ‘내가 벌을 보고 공황발작을 일으켜서 통제력을 잃고 무언가 미친 짓을 할까 봐 다음주에 있을 캠핑 생각만 해도 끔찍해.’까지 다다를 경우 두려움에 대한 두려움이 두려워지는 공포의 세 번째 단계, 바로 이 책에서 반복해서 등장하는 예기불안이다.
마지막 예시에서 추측할 수 있듯이 예기불안은 어떤 일이 미래의 특정 시점에 맞닥뜨릴 것이라 예측할 때, 예측된 시점 이전의 기간 동안 발생한다는 특징이 있다. 예기불안은 그게 설사 회피라 하더라도 일단 결정을 하면 사라지는데대개 그런 경우 효과는 일시적이다.
이런 예기불안에 사로잡히면 반복적으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에 빠져 결정을 회피하는 만성적인 망설임으로 이어진다. 결정을 회피하는 유형은 미루기와 지체하기, 손바닥으로 하늘가리기 식의 적극적인 책임 회피, 망각, 면책조항을 두는 조건으로 결정하기가 있다. 각 유형별로 일상 속에서 드러나는 모습은 책에 설명되어 있는데 그 중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최고의 선택 시도하기(지나친 분석으로 마비되기)’였다. 몇 가지 대안들 중 하나를 선택하기 몹시 어려워하는 경우를 말한다. 상식적인 수준을 넘어 너무 많은 정보를 수집하고 끊임없이 비교하는데에 신경을 쏟는 나머지 결국 결정을 회피하는 꼴이 되고 마는데, 완벽주의와 관련이 있다고 한다.
만성적으로 망설이는 사람들은 유독 행동하지 않았을 때 얻는 대가를 인식하지 못한다는 특징이 있다고 한다.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아서 손실을 겪을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다는 것인데 앞서 말한 완벽주의가 실패를 토대로 성장할 기회를 차단한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기에 회피로 인한 효과는 하나로 연결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3장에서는 뇌가 잘못된 경보에 반응하는 방식을 설명한다. 예기불안은 촉발 요인과 함께 시작되는 데 촉발 요인은 감정을 빠르게 ‘솟구치게’ 한다는 특징이 있다.

감정이 솟구치는 뇌의 부위는 편도체다. 편도체는 뇌의 영역 중 느끼고 반응하는 부위에 해당한다. 사고하는 부위와 다르다는 게 핵심이다. 편도체는 평가하고 확인하고 판단하는 일과 거리가 멀다. 경보시스템 역할만 담당하기에 켜지든지 꺼지든지 둘 중 하나다. 심리학이나 뇌과학 관련 책에서 투쟁-도피-경직 반응이란 용어를 본 적이 있다면 바로 이것과 연관된 부위가 편도체다. 편도체의 경보 반응은 의지나 의도와 상관없이 그냥 일어난다. 자동반사적으로 나오는 것이라 이런 즉각적인 공포 반응은 생각을 다스려서 가라앉히기 불가능하다.
문제는 실제 ‘공포’와 ‘불안’은 다르다는데 있다. 사람들이 흔히 불안함을 느낄 때 사실 실제로는 위험한 상황에 처해있지 않을 때가 많다. 그럼에도 불안은 안전한 상태에서도 위험에 처해있다고 느끼게 만들고 이런 느낌 때문에 예기 불안은 강한 회피를 유발한다. 그래서 이런 예기불안이 스트레스와도 연관이 깊을거라 생각하기 쉬운데, 의외로 스트레스는 예기불안의 원인이 아니라고 한다.
4장에서는 불안, 걱정, 회피의 사이클을 살피고 결국 회피는 새로운 배움, 회피하지 않고도 잘 지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기회 자체를 박탈한다는 쓰라린 현실을 알려준다. 이를 벗어나 성장하고 싶다면 회피를 회피해야한다는 말로 정리한다.
이어서 5장에서는 불안에 사로잡힌 사고를 멈추기 어려운 여섯가지 이유, 불안한 생각을 억누르기 위해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오히려 역효과를 낸다는 ‘노력의 역설’을 설명하고 6장에서는 불확실성을 대하는 태도와 후회에 대한 두려움, 완벽주의가 어떻게 의사결정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지 설명한다.
7장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한걸음 물러나 관찰하는 메타인지적 관점과 걱정에 대한 잘못된 일곱가지 믿음, 치유를 향한 사고방식으로 전환하는 방법을 전한다. 전환의 필수 요소 세 가지 ‘예상’, ‘수용’, ‘허용’은 이 책의 마지막까지 기억해야 할 중요한 키워드다. 그리고 불안을 느낄 때 만날 수 있는 내면의 세 가지 목소리에 대해서도 알아본다. 걱정하는 예기불안의 목소리와 회피하려는 거짓 위안의 목소리가 짝을 이뤄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변명의 대화를 나누는 것을 지켜보면 그게 꼭 남의 얘기 같지 않아서 부끄러운 기분이 든다. 그리고 이런 내면의 악순환을 깨닫게 해 줄 지혜로운 마음의 목소리를 내는 법을 배울 수 있다.
드디어 순서대로 다 읽고 오라던 8장이다. 8장에서는 좀 더 회복에 초점을 맞춰 기존의 다른 책들과는 다른 접근 방식을 제시한다. 8장의 제목이 내려놓음과 전념인 만큼 어떻게 내려놓음과 전념을 실천해야 하는지 저자가 정리한 방법론이 전개된다. 사실 절대 여기부터 보지 말고 순서대로 보라고 강조한 것치고는 제시한 방법이 내가 먼저 접한 방법들과 딱히 다를 게 없어 김이 빠지긴 했다.
하지만 읽다보면 미묘한 디테일의 차이를 찾을 수 있다. 마음챙김을 설명할 때 보통 다른 책에선 지금 내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생각들을 그저 바라보고 직시하라는 말들이 흔히 나온다. 중구난방으로 솟구치는 생각을 그저 바라보라는 것이다. 실제로 명상 등을 통해 마음을 들여다 볼 때면 생각의 내용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경우도 생기게 마련이다. 이 책에서는 생각의 ‘내용’을 다루지 않을 것을 강조한다. 내용을 곱씹기 시작하면 의심과 걱정이 다시 관여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저 일어나는 일들을 관찰하는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하며 거짓 위안의 내용을 되새기는 행동은 절대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한 어조로 말한다.
앞으로 예기불안을 마주칠 때마다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 책의 저자는 DANCE 할 것을 제안한다. 치유를 향한 내려놓음의 다섯가지 원리를 정리하고 그 앞 글자를 딴 것인데 내용은 아래의 첨부 사진을 참고할 것.

9장에서는 자주 묻는 질문과 답변을 실었고 마지막 10장에서는 유연함과 자신감을 쌓아나가는 방법을 얘기하며 마무리한다. 개인적으로 예기불안에 관해 이 책에서 전하고자 하는 바는 327~328쪽에 잘 정리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책의 제목처럼 오늘도 망설이다 하루를 다 보내고 마는 회피의 달인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 네이버 이북까페를 통해 출판사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