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urblue > 2년 만의 신작 <아일랜드>로 돌아온 인정옥 작가
2년 만의 신작 <아일랜드>로 돌아온 인정옥 작가
<네 멋대로 해라>의 열기가 뜨거웠던 2002년 여름, 그 폭풍의 가운데에 인정옥 작가가 있었다. 복수, 경, 미래가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양동근, 이나영, 공효진이라는 배우의 이름값이 높아졌지만 그 캐릭터와 그들이 처한 현실, 그들이 내뱉는 말의 창조자인 작가에 대한 찬사도 끊이지 않았다. 당연, 인 작가가 또 어떤 드라마로 우리를 설레게 할지 기대가 커졌고 꼭 2년 만에 그 실체를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네 멋대로 해라>가 한국 드라마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을 만큼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에 새 작품 <아일랜드>는 전작의 후광에서 자유롭기 힘들다. <네 멋대로 해라>의 아류작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무언가를 보여줄 것이라는 기대. 그러나 정작 작가 본인은 개의치 않는다는 태도다. “신경 안 써요. <네 멋대로 해라>와 크게 차별화하려고 하지는 않았어요. 기본적인 정서는 비슷할 수밖에 없어요. 단지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다르죠. <네 멋대로 해라>가 정갈하고 예쁜 사랑 이야기였다면 이번에는 좀더 현실적인 딜레마에 접근하려고 했어요. 아마 조금 어려울 거예요.”
작가 스스로 “어렵다”고 말할 만큼 <아일랜드>에서 담아내려고 하는 문제의식은 어떤 것일까. 어릴 적에 아일랜드로 입양되었다가 가족이 살해당하는 현장을 목격한 뒤 정신적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채 한국으로 돌아오는 주인공, 간신히 밑바닥 인생을 살아가는 한 건달에게서 소통의 가능성을 발견하지만 사랑을 확인하려는 순간 그가 친오빠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큰 줄기만 보아도 주인공들이 뒹굴어야 할 구차한 현실이 녹록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제목인 <아일랜드>는 중의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어요. 개인들이 자신의 가족, 역사, 공간 등 협소한 사회적 제약에 갇혀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섬’이라는 이미지를 통해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북아일랜드의 상황이 상징하는 바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고요. ‘남매간의 사랑’은 그 자체에 중점을 둔다기보다 혈연, 가족문제를 짚어보기 위한 수단인 거죠. 결국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싶은 건데, 입양아만큼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상징적으로 농축적으로 고민할 수 있는 캐릭터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무거운 주제지만 지나친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거대 담론으로 생각하는 문제들을 한 개인의 특수한 상황을 통해 되짚어보려고 해요. 정색하고 울부짖는다고 되는 문제가 아니니까 시청자를 골 아프게 하고 싶지는 않아요. 풀기 어려운 문제를 머리로 어렵게 생각하기보다 돌아가는 흐름을 통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시원하고 쉽게 쓰는 게 제 몫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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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에서는 이나영이라는 배우도 인정옥 작가에게 주어진 과제 중 하나인 듯싶다. 인 작가와 이나영이 <네 멋대로 해라>에 이어 호흡을 맞춘다는 것만으로 세간의 관심은 쏠렸고, 일부에서는 지레 이나영의 캐릭터가 식상할 것이라는 반응도 나왔다. “이나영이 제 작품과 정서적으로 교감하는 부분이 크기 때문에 잘 담아낼 거라고 생각하지만 거기에 안주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네 멋대로 해라> 이후에 ‘이나영화’된 부분은 장점이기도 하지만 단점이기도 하죠. 전 이나영이 보여주지 않은 부분이 많다고 생각해요. <아일랜드>에서 이나영이 배우로서의 스펙트럼을 어디까지 넓히는지 시험해보고 싶었고 그래서 처음부터 이나영을 염두에 두고 대본을 썼어요.”
이나영은 물론이요 인 작가는 배우들이 곧 자기 드라마의 힘이라고 말했다. 김민정, 현빈, 김민준의 캐스팅에 고개를 갸웃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자신이 만들어낸 캐릭터가 이 배우들을 통해 어떻게 자리잡을지 궁금하다고. “전 궁금증을 일으키는 배우들이 좋아요. 대본을 쓸 때는 캐릭터가 상상 속의 인물이지만 배우를 통해 실제 인물이 되거든요. 그 캐릭터를 담았을 때 제가 생각했던 것과는 또 다르게, 어떤 모습으로 현실 속의 인물이 될지 호기심이 생기는 배우들을 캐스팅하고 싶었어요. 그 캐릭터가 자리를 잡으면 <네 멋대로 해라>처럼 배우가 만들어낸 인물에 맞춰서 대본을 쓰게 되겠죠.”
이제 <아일랜드>는 시청자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고 어떤 반응을 얻을지는 지켜봐야 한다. 인 작가는 자신의 진심이 이번에는 어떤 방식으로 소통할지 궁금하다는 말로 기대를 드러냈다. “<네 멋대로 해라>가 젊은 세대의 코드를 잘 짚어냈다고 했지만 제가 그런 걸 취재하고 잘 파악해서 쓴 게 아니었거든요. 제가 프로답지 못해서 오히려 다가가는 면도 있는 것 같아요. 기본적으로 마이너 감수성을 가지고 있고 그 기반 위에서 진심을 다해서 써요. 그 감수성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TV라는 매체를 통해 저와 소통한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래서 제 드라마는 ‘국민드라마’가 되기는 어렵죠. (웃음) 이번에도 그렇게 저와 통하는 분들이 많았으면 좋겠어요.”
글=피소현/ <스카이라이프> 기자 plavel@hani.co.kr 사진=정진환/<씨네21>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