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홈즈 Miss 모리어티
헤더 W. 페티 지음, 박효정 옮김 / 황금가지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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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셜록이 손을 내밀어 내 손을 잡을 때쯤에 나는 한숨을 쉬고는 도대체 내 손에 뭐 그렇게 겁날 정도로 매력적인 점이 있는지 막 물으려던 차였다.

 

그는 즉시 침착해졌는데, 그리고 놀랍게도 나 역시 마음속 긴장이 완화되는 것을 느꼈다. 나는 살짝 미소까지 지었다.

 

셜록의 태도에는 지독하게 사랑스러운 뭔가가 있었다. 그 애가 날 짜증나게 만들 때조차도.

 

 

 

 

 

 

소녀 제임스 모리어티를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어머니였다. 세상 사람들은 경위 마누라, 모리어티 부인으로 불렀을지 모르지만. 그리고 어머니는 병으로 가족의 곁을 떠났다. 아버지는 야수로 돌변했고 <메모리즈 오브 유>를 들으며 어린 자식들을 학대했다. 모리어티는 도망치고 싶지만 갈 곳은 없었고, 지켜야 할 동생은 아래로 셋이나 있다. 매번 연기와 화재를 동반하는 실패자 친구와 화학 실험하는 학교생활도 지긋지긋하다. 실패를 넘어 화재를 일으키는 대형사고가 터지자 선생님은 그녀에게 지하 연구실에 있는 셜록이란 남학생과 대피해달라고 부탁한다. 학교에서 제일 괴짜로 소문난 녀석. 혼자 독차지하고 있는 연구실. 솔직히 조금은 그 녀석의 연구실이 궁금했다. 그것이 제임스 모리어티 양과 셜록 홈즈와의 만남이었다.

 

 

둘은 리젠트 공원에서 벌어지는 연쇄 살인사건의 시체에 이상한 점이 있음에도 경찰이 단순 사고사로 넘어가는 걸 보고 독자적으로 수사를 감행한다. 모리어티는 뭐든지 다 안다고 믿는 셜록이 재수없고, 셜록은 자신의 당위성을 인정하지 않는 모리어티에게 짜증이 나면서도 설렘과 호기심을 품고 있다. 미운 정도 정이라고, 사건이 진행될수록 둘은 점점 더 가까워지고 결국 선을 넘어 연인관계로 발전한다.

 

 

<mr. 홈즈 miss 모리어티>는 백 년이 넘도록 숙적이었던 아서 코난도일의 <셜록 홈즈>에 나오는 두 인물을 가지고 가상의 청춘로맨스물로 변신한 작품이다. 흥미로운 건 작가가 모리어티라는 인물을 아주 심도있게 이해하고 원작의 모리어티와는 전혀 다르면서도 여전히 원작의 인물과의 연관성을 버리지 않는 아슬아슬한 설정을 유지했다는 점이다. 작중 모리어티는 연쇄살인마가 자신의 아버지란 사실을 알게 된다. 그녀는 아버지가 살인마라는 걸 밝히는 걸 망설인다. 아버지가 겉으론 차가워도 속으론 가족을 생각하는 따스한 가장이라서? 아니면 섣불리 건드렸다가 도리어 해쳐질까봐? 이 이유에 대해서 작가는 원작 모리어티의 인생의 당위성으로 연관되어 설명한다. 그 연계과정이 '고작' 청춘로맨스물에 쓰여도 좋은건가 싶을 정도로 논리적이었다.작가가 모리어티란 인물을 얼마나 애정하는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다만 셜록이라는 인물은 원래 설명충(…)인데 명석한 두뇌를 가지고 있다는 것 말고는 원작의 셜록을 떠올릴만한 그 무엇도 없다는 게 아쉬웠다. 그게 또 다른 주인공인 모리어티를 이중삼중으로 더 복잡하고 매력적인 캐릭터로 만드는 데 일조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작품 자체가 추리에 초점이 맞춰진 게 아니라 모리어티라는 주인공의 로맨스에 좀 더 무게를 두었기 때문에 지나치게 셜록에게 집착하지 않았다. 사건과 행복이 너무 어이없이 풀린 점이 있지만 은근히 사랑스럽고, 달달한 10대 로맨스는 아이러니하게도 그래서 더 빛나보이게 만드는 효과가 있었다. 꽁냥대는 스케일이 서양 애들이라 그런지 풋풋함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었지만 그래도 달달함은 찐하게 남은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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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어디선가 시체가
박연선 지음 / 놀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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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소설 소재는 '할머니'가 대세인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프레드릭 배크만의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의 할머니만 매력적이고 특이한 줄 알았는데 <여름, 어디선가 시체가>의 할머니도 못지 않게 웃긴 여사님이었다. 62년을 함께 한 배우자의 장례식 날에도 가신 님은 묻어 두고 어디엔가 묻혀 있을 리모컨만 찾아 다녔다. 가족들이 할머니의 정신 상태를 걱정하지 않는 게 이상하지. 결국 가족들은 제단에 제물 바치듯 한 명의 여인을 산내면 두왕리에 떨궈놓고 집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그 희생양이 3수째 수능만 붙잡고 달리는 스물 한 살의 처녀 강무순이었다.


이 돈 갖고 내 아들과 헤어져 주세요같은 어려운 미션도 아니다. 할머니가 걱정되니 당분간 곁에 있으라는 미션이 뭐 그리 어렵겠나. 그러나 이건 할머니의 간호와는 거리가 멀다는 걸 하루 아침에 무순은 깨달았다. 공중파 티비조차도 제멋대로 잡히는데다 스마트폰은 시골에 와서 스마트를 벗어 버렸다. 조금 더 무거운 시계로 전락해버린 현대 과학 기술을 보고 무순은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이건 유배다. 확실한 유배.


몇 십년간 유배만 다니면서 저서를 집필한 정약용 선생과는 달리 우리의 무순은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여섯 살 적에 땅에 묻어놨던 보물상자를 꺼내면서 15년 전 '두왕리 네 소녀 실종 사건'을 접하게 된다. 기억나지 않는 어릴 적 친구의 실종. 그저 한 다리 건넌 남의 일일 뿐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호기심으로 나다니던 중 두왕리 일대를 장악하고 있는 경산 유씨 가문의 도련님을 만나게 된다. 외모는 훤칠한 박보검같은데 까칠하기로는 김창렬같은 존재랄까. 일명 '꽃돌이'인 이 소년은 그가 양자로 들어오고 나서 실종된 누이의 행방에 대해 의문점을 품고 있었다. 왜 타이밍이 딱 맞게 사라졌는가.


<여름, 어디선가 시체가>는 보물상자에서 발견된 목각인형 '자전거와 소년'을 실마리로 '두왕리 네 소녀 실종 사건'을 파헤치는 두 어리숙한 탐정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 그리고 15년 전, 묻혀버렸던 비극적인 진실들이 하나둘씩 드러나면서 모든 사건이 풀리게 된다. 물론, 사건 해결이 반드시 해피엔딩이라는 법은 없다. 누군가는 어떤 일을 행했고, 그 원인에는 결과가 따른다. 그를 받아들이든 받아들이지 못하든 인생은 꼬인채로라도 흘러가게 되어 있다. 해결이 되고나서도 전혀 기쁘지 않은 그저 슬프고 애매한 감정만 내 가슴 밑바닥에 눌러 붙어 버렸다.


가볍고 위트있는 표지로 시작된 작품은 시기를 잘 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나 평화롭고 아름다운 정경만 있을 것 같은 시골에서 하루 이틀 거리로 무섭고 흉흉한 사건이 터지는 때라면 아주 시기적절하다. 할머니라는 재미있는 캐릭터를 작가가 조금 더 살려냈으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드는 건 둘째다. 시골에서 벌어지는 흉흉한 살인 사건을 풀어헤치는 과정이 캐릭터를 따라가서 그런가 너무 어설프다. 삼수나 하는 높은 학력의 주인공이 '다임개술'이 타임캡슐인지 몰라서 물어보고 다닌다는 설정은 좀 참아내기 어렵더라. 짜임새 있는 미스터리를 기대했지만 박연선이 내게 보여준 건 여전히 '가능성'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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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더 스토리콜렉터 17
마리사 마이어 지음, 김지현 옮김 / 북로드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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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장르 소설계에는 한창 서양 배경의 소재의 로맨스의 바람이 불고 있다. 중세 시대에 있을 법한 기사도 정신의 이야기나 드레스를 입은 사교계 얘기들은 독자들에게 소녀적 환상을 불러일으키는데 충분하다. 그걸 서양 작가가 보면 뻔한 할리퀸을 보는 것 같을까 내심 그런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반대의 입장은 생각해보지 못했다. 서양 작가가 동양 감성과 로맨스를 소재로 삼는 것 말이다. 마리사 마이어의 <신더>는 BULGOGI라 표기하고 뚝배기 불고기가 나오는 작품이라 해도 무방하다.


<신더>는 유럽의 오랜 동화인 신데렐라의 이야기 속 주인공 신데렐라를 차용한 이름이다. <신더> 속 주인공 '신더'는 제 4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세상이 6개의 연합으로 나뉘어진 상태의 동방연합국 시민이다. 신베이징이라는 새로운 도시에서 사이보그로 살고 있다. 어렸을 적 호버(이 곳 운송수단이다)사고를 당해 무릎뼈가 과자 부스러기마냥 아작나 버린다. 기술의 발달로 그녀는 죽지 않았다. 대신 쓸모없는 부분을 버리고 새 부품으로 갈아 끼우는 짓을 내내 반복 중이다. 그녀의 법적 후견인이자 생활력이라고는 제로인 양어머니와 이복 동생 둘은 신더가 벌어오는 돈으로 먹고 사는 짐이고, 그들 스스로는 신더의 짐이 아니라 관리자처럼 행동하고 있다.


신더의 인생 자체는 판타지이지만 사이보그는 더 가혹한 현실을 보여주는 판타지였다. 사이보그이기 때문에 자신이 운영하는 수리점 근처의 상인들에게 무시를 당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날, 아주 비현실적인 일이 발생한다. 그녀의 수리점에 동방연합국의 황태자인 카이토가 방문한 것이다! 카이토의 오래된 가정교사 안드로이드의 수리를 맡게 된 신더는 그 날부터 품위있고 자상하던 소년 황태자를 생각한다. 동방연합국에 사는 소녀라면 누구나 반하고도 남을 아리따운 이성이 말이다.

그리고 동방연합국에 레투모시스라는 전염병이 퍼지기 시작한다.


치료제 없이 공기로 퍼지는 무시무시한 전염병은 사람들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고, 그 해답을 갖고 있는 것은 달에 사는 루나인의 여왕이었다. 호시탐탐 지구를 정복하고 싶어하는 사악한 여왕은 전염병으로 황제가 죽어가고 있다는 걸 알고 카이토 황태자에게 결혼 동맹을 맺자고 압박한다. 이제 고작 18살인 카이토 황태자는 여왕의 무력 앞에 무기력하게 복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는 끔찍이도 싫어하는 여왕과의 결혼을 피하기 위해 단 하나의 희망을 품는다. 그 희망은 무엇일까.

또한 그 희망을 찾기 위해 반드시 그의 안드로이드 나인시를 고쳐내야 한다. 신더를 자주 찾아가 그녀에게 안드로이드를 고칠 것을 부탁하던 새에 둘은 묘한 기류를 양성하게 된다.


<신더> 속 배경은 얼핏 보면 서양식 과학 기술을 갖춘 서양식 도시로 보이지만 실상은 동양의 일본, 중국을 차용한 배경과 인물이 묘사되고 있다. 황태자 카이토의 이름이나 주인공이 신더가 사는 신베이징같은 도시는 마리사 마이어의 의식을 보여주는 소재다. <신더>는 루나 크로니클 시리즈로, <신더>, <크레스>, <스칼렛>에 이은 <윈터>로 4부작을 구성하는 장편 소설이다. 올해 마지막 4부인 <윈터>가 출간되니 기다리면서 1~3부를 정주해보는 건 어떨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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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스칼렛 (Scarlet) [할인] 루나 크로니클 2
마리사 마이어 지음, 김지현 옮김 / 북로드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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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를 지키겠다고 약속했어. 그렇게 할 거야. 더 이상 이 문제로 토론해봤자 소용없어.

 1부 카이토, 2부 울프, 3부 카스웰까지. 빛나는 남주들 중에서도 단연 빛나는 남주를 꼽으라면 2부 울프가 되시겠다. 신더와 카이토에게는 설렘이 있는 만큼 의심이 공존한다. 서로를 위한 다는 말은 하지만 제대로 상대를 납득시킬 수 있는 말도, 행동도 보여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사랑이 흔들리지 않는 게 신기할 정도로. 카스웰과 크레스는 썸에서부터 시작해서 그런지 1부 커플보다 좀 더 꽁냥댄다. 그러나 크레스의 성장일기로 원동력을 다 써버린 <크레스>는 4부 윈터로 그들의 사랑담을 넘겨 버린다. 말 그대로 하자면 사랑다운 사랑을 말할 커플이 전무하다는 것이다. 무려 로맨스를 낀 판타지 소설인데! 마리사 여사도 동화 속 로맨스를 불사르기 위해 뭔가 해야겠다고 느꼈는지 2부 <스칼렛>에 스칼렛과 울프 커플을 집어 넣는다. 구원투수로 등장하듯 나온 이 커플들은 1,3부 커플들과 명백히 다른 행동을 보여주고 있다.


동화 <빨간 모자>에서 모티프를 얻은 2부 <스칼렛>은 늑대와 빨간 머리의 여성의 사랑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 한 때 우주 비행사였던 할머니 미셸 브누아의 실종을 단순 실종으로 해버리는 우리의 경찰(민중의 지팡이는 오늘도 평화롭습니다)의 나태한 일처리에 스칼렛은 인정하지 않는다. 분명 할머니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고 믿던 차에 그녀 앞에 나타난 것은 울프. 그의 도움으로 할머니가 감금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특수 첩보원의 본부로 가게 된다. 한 때 루나인의 우주 비행사로서 미셸 브누아는 무슨 일을 했던 것일까?


여전히 배경의 스케일은 크다. 다만 배경이 크다고 소재나 전개가 더 탄탄해지리란 보장은 없다. 마리사 마이어가 10대를 겨냥한 것이 아니라면 조금 더 세밀하고 다양성 있는 스토리를 그려낼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SF의 거대 서사를 포기하고 로맨스를 집중한 건 2부에서 마리사 여사가 보여줘야 할 필요가 있는 시점이었다. 타이밍을 기가막히게 맞춘 그녀의 전개 방식은 훌륭하다.


낯선 외모와 엄청난 힘, 그리고 왠지 모를 위험한 분위기를 풍기는 남자 울프에게 스칼렛은 정신적으로, 이성적으로 흔들린다. 의도를 밝히지 않은 채 그저 할머니를 찾는다는 걸 도와주겠다는 이 남자. 믿어도 될 지 모르겠다. 하지만 스칼렛은 그를 믿든 안 믿든 할머니에 대해 뭔가 안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 와중에 전 우주를 뒤흔들고 있는 희대의 범죄자 '신더'에 대한 뉴스를 접하면서 스칼렛의 인생은 휘몰아치고 만다.


스릴감을 속도가 있게 풀어내는 명솜씨와 솔직하고 두근두근 했던 로맨스가 발전하고 있다는 걸 2부 <스칼렛>으로 확인해보시라.

늑대인간과의 로맨스가 나오는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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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어쩌다 이런 가족
전아리 지음 / 다산책방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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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은 평소와 다름 없는 날이었다. 한국 출판사의 거목으로 이름 날리는 아버지, 갤러리를 운영하는 어머니, 마더 테레사로 유명한 엄친딸 언니 혜윤, 그리고 문제아의 표본이자 '우연하게' 낳은 둘째 딸 혜란. 그들에게 있어 아침식사는 당연히 해야 하는 의무이자 하루를 시작하는 의식같은 것이었다. 애정따윈 반찬 목록에 없다. 모였으니 의무는 지켰다. 가족 모두가 모이는 유일한 시간에 가족들은 모두 의무를 다하기 위해 식사한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혜윤이 차분하게 폭로한다. "저, XX동영상 찍힌 것 같아요."

​세상에서 가장 고상하기로 유명했던 딸이 돈 30 받아가며 남자와 잤단다. 30만원이면 콜걸도 아니고 A급도 뭣도 아닌 그냥 매춘부 아닌가! 아니 콜걸이나 매춘부나 거기서 거기인가. 가족끼리 대화라곤 요만큼도 없던 인물들이 다급해졌다. 내 자리가 위태로워질까봐. 내 세상이 무너질까봐 이 거대 폭탄을 수습하려 한다. 그 와중에도 머리 맞대는 일은 없다. 내 방식으로 알아서. 가족의 성매매 유출 동영상이 나돈다는 와중에도 다들 제멋대로다. 가화만사성이라는 가훈부터 뗐으면.

​<어쩌다 이런 가족>은 서로에게 절대 말하지 않는 가족들만의 불만이 챕터를 오가며 쏟아진다. 아버지의 인생, 어머니의 인생, 첫째 딸과 둘째 딸의 인생. 저마다 서로에게 불만이 넘치다 못해 폭발할 지경이지만 누구하나 대놓고 문제 삼아본 적이 없다. 피곤하기 때문에? 가족끼리 다투고 싶지 않아서? 그들이 제 방식대로 문제를 해결하려 할 때마다 독자는 이 가족의 문제점이 뭔지 서서히 깨닫는다. 이 사람들. 가족이 뭔지 모르는 구나.

누가 그랬더라. 나쁜 일은 한꺼번에 몰려 오는 법이라고. XX동영상을 지우려다 돈 날리고 피도 보는 아버지 서용훈은 그 놈의 영상 때문에 궂은 일 해주는 부하들도 잃었다. 심지어 그 부하들이 영상을 얻어 되려 협박질이다. 첩첩산중이란 것은 이런 거구나. 그 와중에 둘째 딸 혜란은 매번 착한 척 이미지 관리하던 언니를 한큐에 보내버리면서 자기 꿈을 이루겠다는 야망 찬 작전을 꺼내든다. 골머리 앓는 부모의 귀를 쫑긋하게 만든 그 악랄한 작전은 도대체 무엇일까?

남부러울 것 없는 여유로운 집안의 뮤지컬같은 막장 드라마를 한 데 모아놓은 <어쩌다 이런 가족>의 마지막 장을 넘길 때. 전아리의 이름값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진지함과 개그 요소가 뒤엉키던 와중에 소재가 너무 괴팍했던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은 들지만 그 파격적인 소재가 아니고선 흔들 수 없는 가족이었음을 인정해버리고 말았다. 다시 말하지만 가화만사성이란 가훈은 뗐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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