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의 선물 - 제1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개정판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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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제1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새의 선물>(1995)은 한국 문단을 대표하는 여류작가 은희경의 장편소설이다. 현재까지도 스테디셀러로 변함없는 독자의 사랑을 받아온 이 소설은 1인칭 시점의 열두 살의 어린 화자 '진희'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다. 정신이 온전치 못한 어머니를 잃고 할머니, 이모와 함께 살던 진희의 유년 시절 기억으로 스토리가 전개된다. 아픈 과거의 기억에도 불구하고 진희는 당돌하면서도 익살스러운 면모를 지녔다. 예민한 감각으로 눈치까지 빠른 모범생 소녀는 아이답지 않게 세상에 일찍 눈을 뜬다. 소녀의 시선에서 그려진 각양각색의 마을 사람들, 그들의 삶은 해학과 애환을 오롯이 담은 풍속도와 같았다.

감정의 골이 깊어졌는지 오랜만에 소설을 읽으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불현듯 오래전 그날 잊고 있었던 한 소녀를 떠올렸다.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를 읽다가 이불을 뒤집어 쓴 채 펑펑 울던 어린 소녀를 말이다. 영혼 속을 부유하던 슬픔의 재가 하나로 응집되어 하나의 테두리를 이루듯 침잠되었던 심연에서 강한 울림이 꿈틀거렸다. 풍화된 기억의 늪에서 서성이던 어느 이방인의 목소리. 그것은 오랜 기간 침묵을 지키던 그녀의 고백이었다. 가려진 커튼 사이로 새어나오는 한줄기 빛은 어느새 빛바랜 설렘처럼 이내 가슴에 살포시 젖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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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달픈 삶을 벗어난들 더 나은 삶이 있다는 확신은 누구에게도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떠난다. 더 나은 삻을 위해서라기보다 지금의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아무 확신도 없지만 더 이상 지금 삶에 머물러 있지 않아도 된다는 것 때문에 떠나는 이의 발걸음은 가볍다. - p.164

⦁슬픔. 그렇다. 내 마음속에 들어차고 있는 것은 명백한 슬픔이다. 그러나 나는 자아 속에서 천천히 나를 분리시키고 있다. 나는 두 개로 나누어진다. 슬픔을 느끼는 나와 그것을 바라보는 나. 극기훈련이 시작된다. '바라보는 나'는 일부러 슬픔을 느끼는 나를 뚫어져라 오랫동안 쳐다본다. 찬물을 조금씩 끼얹다보면 얼마 안 가 물이 차갑다는 걸 모르게 된다. 그러면 양동이째 끼얹어도 차갑지 않다. 슬픔을 느끼자, 그것을 똑똑히 집요하게 바라보자. - p.229

⦁성숙한 어른이 슬퍼하는 것보다 철없는 아이의 슬픔은 더 마음을 아프게 한다. 그러므로 철없는 사람은 마음껏 철없이 행동하면서도 슬픔에 닥치면 불공평하게도 더 많은 사랑과 배려를 받는 것이다. 성숙한 사람은 으레 슬픔을 이겨낼 수 있으리라고 여겨지기 때문에 그같은 배려를 받지 못한다. 성숙한 사람은 언제나 손해이다. 나는 너무 일찍 성숙했고 그러기에 일찍부터 삶을 알게 된 만큼 삶에서 빨리 밑지기 시작했다. -.p.401

📌덧붙임 : 숨은 금은보화를 발굴한 듯 기대 이상의 만족감을 주는 소설이었다. 마치 응답하라 시리즈를 보는 듯 생생한 웃음과 감동이 가슴속까지 고스란히 전해진다. 이로써 은희경의 작품을 좀 더 읽어 봐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긴장감 있는 이야기 전개에 문체까지 정갈하고 부드러워 독서에 몰입감을 극대화시킨다. 읽어 보지 않은 분께는 강력 추천하고 싶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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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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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담했다.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부들부들 떠는 손의 감각이 느껴졌다. 유혈이 낭자한 역사의 현장에서 그들은 처참히 죽어 갔고 그렇게 사라져 갔다. 형언할 수 없는 비통한 심정에 젖은 영혼은 이승을 유유히 맴돌았다.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쥐락펴락한 국가는 그들에게 무엇이었을까?
30년도 훨씬 지난 오래전 사건을 뒤적였다. 1980년 5월의 광주.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있었던 일이다. 내심 부끄러웠다. 고통 속에 울부짖던 이의 한숨을 이제야 되돌아 보게 된 것이 그 이유에 대한 변명이었다.

이 소설이 출간되었을 당시를 기억한다. 주목받는 소설이었기에 이 책을 읽는 이가 상당히 많았다. 소설평을 몇 차례 읽으면서 이 소설을 읽어야겠다는 용기를 잃었다. 아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는 표현이 맞겠다. 섬뜩할 정도의 적나라한 묘사를 쉽사리 읽어 나갈 자신이 없었다. 그러기를 몇 년, 이제야 이 소설을 읽을 수 있었다.
전공 과제 때문이었지만, 소설을 몇 편 썼던 경험이 있다. 갑작스레 소설 쓰기를 언급하는 건 이 소설을 쓴 작가 한강이 소설 구상에서 퇴고에까지 심적으로 얼마나 힘겨웠을까라는 막연한 공감 때문이다. 소설을 읽는 독자도 이렇게 심장이 쿵쾅거리는데, 이 소설을 완성한 작가가 참 대단해 보인다.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잠시 묵념을 올렸다. 소년의 한 맺힌 혼이 부디 다른 세상에서는 편안히 잠들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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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손, 사람의 허리, 사람의 다리가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보았다. 살려주시오. 헐떡이며 남자가 외쳤다. 경련하던 남자의 발이 잠잠해질 때까지 그들은 멈추지 않고 곤봉을 내리쳤다. 곁에서 쉬지 않고 비명을 지르다 머리채를 잡힌 여자가 어떻게 되었는지 너는 모른다. 덜덜 턱을 떨며 천변 언덕을 기어올라 거리로, 더 낯선 광경이 펼쳐지고 있는 거리로 들어섰기 때문이다. - p.25

하루하루의 불면과 악몽, 하루하루의 진통제와 수면유도제 속에서 우리는 더 이상 젊지 않았습니다. 너 이상 누구도 우리를 위해 염려하거나 눈물 흘리지 않았습니다. 우리 자신조차 우리를 경멸했습니나. 우리들의 몸속에 그 여름의 조사실이 있었습니다. 검정색 모나미 볼펜이 있었습니다. 하얗게 드러난 손가락뼈가 있었습니다. 흐느끼며 애원하고 구걸하는 낯익은 음성이 있었습니다. - p.126

그러니까 인간은, 근본적으로 잔인한 존재인 것입니까? 우리들은 단지 보편적인 경험을 한 것뿐입니까? 우리는 존엄하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을 뿐, 언제든 아무것도 아닌 것, 벌레, 짐승, 고름과 진물의 덩어리로 변할 수 있는 겁니까? 굴욕당하고 훼손되고 살해되는 것, 그것이 역사 속에서 증명된 인간의 본질입니까? - p.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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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로주점 2 (무선) -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84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84
에밀 졸라 지음, 박명숙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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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로 삶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가혹하다. 이율배반의 시초가 되는 욕망의 먹이사슬. 그 쓰디쓴 독배에 어떤 이의 삶은 위태롭게 일렁인다.
제르페즈를 비롯한 어느 누구에게도 강요된 선택은 없었다. 환멸과 고통으로 일그러진 현실 앞에 비상(飛上)은 가닿을 수 꿈에 불과했던 것일까? 부지불식간에 찾아든 무기력과 권태라는 이름으로, 쾌락과 오욕의 더미 속에 솟구치는 절망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것이 서서히 끝도 없이 추락한다. 마치 인생이라는 외줄 타기에서 낙하한 곡예사처럼 그렇게 신열에 들떠 울부짖는다. 내가 그녀이고, 그녀가 나인 듯이 그렇게 한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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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차가운 손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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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하루만에, 앉은 자리에서 밤을 새며 통독했다. 왠지 모를 씁쓸함과 전율이 느껴지는 소설이었다. 그녀의 소설 중 몽고반점이 교차되듯 떠올랐다. 한강이라는 작가. 정말 대단한 작가이다. 이 책 꼭 읽어 보길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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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욕적인 사창가 문예중앙시선 43
조동범 지음 / 문예중앙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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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 시인선으로 출간된 조동범 시인의 `카니발` 옆에 두고두고 읽을 정도로 내 취향이었기에 이 시집도 고대하며 구매했지만, 사실상 기대가 크면 그에 상응하지 않는지 기대만큼은 아니었다. 항상 느끼지만 대부분 산문시를 즐겨 쓰시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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