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곳에 그물을 드리우라 문학동네포에지 22
남진우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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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간될 연유가 다분합니다. 1983년의 등단작도 훌륭합니다. 곱씹어 반추할 만한 시편이 많아 다채롭습니다. 김종삼 문학상을 수상한 산문시집과 함께 읽어 봐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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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하는 자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78
토마스 베른하르트 지음, 박인원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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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몰락하는 자』를 읽으며 "예술 감각이 사라졌을 때 모든 예술 작품은 사멸한다."는 괴테의 격언이 생각났다. 예술가는 독창적인 감각을 스스로 발견하고 자신의 길을 나아가는 자이다. 그러나 그 마술적 감각이 누구에게나 동등하게 주어지지 않기에, 예술가는 저마다 타자의 재능에 대한 드러낼 수 없는 열등감을 갖고 있다. 유독 뛰어난 동료를 마주한다면 그 강박 관념은 걷잡을 수 없을 수 없이 부풀어오름과 동시에 자신이 가지지 못한 천재성에 대한 동경, 열망, 시기, 절망이 한데 어우러진 묘한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몰락하는 자』의 베르트하이머도 그렇다. 피아노의 대가 글렌 굴드를 만나고부터 그는 점차 파멸의 길을 걷는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글렌 굴드가 연주하는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듣고 나서 베르트하이머는 동료를 넘어설 수 없음에 절망하고 피아노 인생을 포기한다. 그 후 글렌 굴트가 뇌졸중으로 사망하고 나서 충격에 휩싸인 베르트하이머는 생의 갈림길에서 스스로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에 이른다. 베르트하이머에게 글렌 굴트의 사멸은 자신의 예술이 사라짐과 같으며 그로 인한 삶은 더 이상의 의미를 찾지 못한 것과 같다.

🔖베르트하이머는 글렌을 그리고 어쩌면 나까지도 증오했을지 모른다. 이런 생각은 수천 번, 아니 수만 번 이상 베르하이머와 글렌과 나 자신까지 관찰해서 얻은 것이다. 나 역시 글렌에 대한 증오심에서 자유롭지 못했지, 글렌을 매 순간 증오하기도 했지만 끝까지 사랑하기도 했지, 난 생각했다. 너무 위대한 나머지 그 위대함으로 우리를 파멸시키고 또 우리로 하여금 그런 파멸 과정을 참고 지켜보게 하다가 결국 인정하게 만드는 그런 위인보다 더 끔찍한 존재는 없으리라. 우리는 오랫동안 이런 파멸 과정을 믿지 않으려 하지만, 믿을 수 없는 명백한 사실이 되고 나면 이미 늦어버린다. 베르트하이머와 나는 글렌의 성장에 필요했던 존재들이었고 글렌은 우리를 이용했던 거야, 라고 식당에서 나는 생각했다. 매사를 대할 때 글렌이 보였던 뻔뻔스러움, 이에 비해 병적이었던 베르하이머의 망설임, 무조건 선입견부터 가졌던 내 성격을 생각했다.글렌은 갑자기 글렌 굴드가 되어버렸으며, 베르트하이머와 나를 포함한 모두가 글렌이 글렌 굴드가 되어버린 순간을 놓치고 말았다. - p.82

📌덧붙임 : 화자의 시점은 상이하지만, 의식의 흐름이라는 기법으로 예술가의 고뇌를 다루었다는 맥락에서 제임스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과 같이 읽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마지막으로 베르트하이머가 격정적으로 연주했을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를 찾아 들으며 얼굴 없는 그에게 한없이 젖어드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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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85
앙드레 브르통 지음, 오생근 옮김 / 민음사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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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프랑스를 시초로 전 세계적으로 확산된 초현실주의는 다다이즘(전통을 부정한 예술 운동)에 그 근간을 두고 있다. 초현실주의가 구체화된 것은 시인, 작가, 평론가를 겸하는 앙드레 브로통(1896~1966)의 제1차 <초현실주의 선언>에 의해서이다. 그는 획일화된 현실을 초월할 때 비로소 인간의 내면은 새로운 형태의 지식을 취할 수 있는 존재 지점을 발견할 수 있다고 믿었으며, 프로이드의 심리분석에 영향을 받아 인간의 닫혀 있는 마음을 무의식에 의한 몽상의 상태에서 발견하고자 하였다. 이와 같은 예술적인 견해를 자신의 작품에 적용하였고 제2차 <초현실주의 선언>을 발표하기 전인 1928년 실험주의적 소설 『나자』를 출간한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존재론적 물음으로 시작하는 『나자』는 파편화된 이미지와 텍스트를 교묘하게 연결하여 독자 스스로 암호를 해독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소설에서 앙드레 브로통은 자신이 작가이자 화자가 되어 직접 겪은 이야기를 환상적으로 서술한다. 여기에서 파악되지 않은 현상들은 일종의 불가사의한 삶으로 매개된 일종의 가치의 전복으로 그려진다.

🔖낮에 걸어 다니는 사람보다는 밤에 걸어 다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우리가 일하는 시간은 삶의 충만함을 갖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각자가 그 자리에서 자신만이 가지는 삶의 의미를 발견하기를 기대할 권리가 있는 사건, 아마도 나는 아직 발견하지 못했지만 내가 나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에서 맞닥뜨릴지 모르는 이 사건은 꼭 노동의 대가로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다른 어떤 것보다도, 그 시간에 나자의 등장을 이해할 수 있게 해 주는 것, 그리고 여기서 더 이상 지체하지 않고, 나자의 등장을 정당화할 수 있는 것을 예상하게 되는데, 왜냐하면 그 사건은 아마도 특히 그 자리에서만 발생할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p.61

사실주의 소설에 익숙한 독자에게 『나자』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소설이다. 많은 이질적 요소들이 불연속적으로 연결된 부분도 많고, 독자가 깊이 생각해야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암호문 같은 문장들과 유추적으로 연결시켜 추론해 볼 명사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사건의 시간과 공간이 분명히 밝혀져 있는 이야기도 있지만 그것들이 모호하게 처리되어 있는 이야기에서는 화자의 생각인지 실제의 사건인지, 사건이라면 소설의 주제와 어떻게 관련되는 것인지 알 수 없게 구성된 부분도 많다 이런 점 때문에 『나자』는 '질서와 무질서, 유기적인 계획과 우연적 요소가 변증법적으로 결합된' 작품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브르통은 서문에서 의학적인 관찰의 문제로 삶의 현장과 사건을 객관적으로 서술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것은 텍스트 안에서 작가의 주관적 개입을 가능한 한 줄이겠다는 뜻을 나타낸 것이지반 동시에 날것 그대로의 객관적인 텍스트 자료를 적극적으로 해석해야 하는 일이 독자의 몫임을 암시하는 말이기도 하다. 『나자』는 암호문의 텍스트를 판독하려는 의지를 갖고 읽어야 할 소설임이 분명하다 이러한 능동적 의지 없이 이 소설을 난해하다고 말하는 독자가 있다면, 작가는 그에게 수동적인 독서에 길들여져 있거나 삶에 대해 의문을 갖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할 것이다.
#작품해설

📌덧붙임 : 예술적 심미안을 갖고 싶은 사람이라면 초현실주의는 필수불가결하게 관심을 두어야 하는 요소이다.
수면 위에 둥둥 떠 있는 모호한 형상의 실루엣을 찾는 것과 같은 난해함은 분명 존재하지만 읽고 나서 멈추지 않고 생각하기를 반복할 때 어느 정도의 성과를 이룰 수 있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초현실주의 관련 서적을 찾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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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상학과 분석철학 - 후설, 하이데거, 사르트르, 메를로-퐁티, 무어, 러셀, 카르납, 비트겐슈타인 知의 총서 4
박이문 지음 / 지와사랑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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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상학에서 현상이라는 말은 의식이나 그 의식의 물질적 대상만을 따로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의식의 물질적 혹은 비물질적인 대상이 의식과의 관계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경험을 가리킨다. 그런데 현상학에서 말하는 현상, 즉 경험은 일반적으로 말하는 경험과는 달리 의식과 그 대상과의 가장 근원적이고 원초적인 관계를 가리킨다.

현상학의 목적은 어떤 존재, 어떤 대상의 본질을 발견하는 것인데, 그 목적은 궁극적으로는 존재의 본질을 보는 데 있다. 그런가 하면 분석철학의 입장에서 볼 때 철학의 역할은 무엇인가에 대한 혹은 그 밖의 목적을 위해서 사용된 언어의 의미를 분명히 이해하는 일인데, 그것은 결국 넓은 의미로서의 논리적 작업이다.

실존은 인간적 존재, 즉 인간을 가리키는 개념이다. 실존주의는 인간에 대한 이론, 즉 인간학이다. 그러나 인간이라는 개념은 막연하다. 왜냐하면 인간은 동물학적ㆍ생물학적ㆍ심리학적ㆍ화학적 혹은 물리적인 설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와 같은 입자에서 본 인간과 구별해서 구체적으로 살아가는 자율적 인간을 가리켜 실존이라 부른다. 그래서 실존의 과학적으로 객관적인 분석을 통해서 설명될 수 있는 객관적인 대상으로서의 인간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체험하는 살아 있는 인간을 가리킨다. 인간이라는 앎의 대상이 구체적이고 체험하는 주체로서 파악되었을 때 실존주의적 인간학은 현상학과 필연적인 관계를 갖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현상학과 분석철학의 근본적인 차이점의 하나는, 철학적 앎이 전자는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이라고 믿는 데 반해서 후자는 언어에 대한 명석한 이해라고 믿는 데 있다. 이와 같은 존재와 언어의 대립관계는 현상학과 분석철학이 다같이 삶이란 것을 두고 얘기할 때도 나타난다. 현상학이 삶의 세계를 말하는 데 반해서 분석철학은 삶의 양식을 이야기한다. 다시 말하자면 삶을 현상학은 존재적인 관점에서 그리고 분석철학은 그것의 언어화된 차원에서 각기 보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덧붙임 : 후설을 읽기 위해 현상학 입문서로 이 책을 읽었다. 나의 개인적 논점이 현상학에서 파생된 실존주의라 후설, 하이데거, 사르트르를 집중적으로 보았다. 그런 이유로 분석철학은 논점에서 벗어났으니 그에 따른 연구자들(무어, 러셀, 카르납, 비트겐슈타인)은 집중력이 분산될 수밖에 없었다. 분석철학은 다음 기회에 깊이 읽어야 할 것 같다.
메를로 퐁티가 후설 현상학의 가장 근접한 연구자라고 해도 내 성향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고 느껴졌다. 그에 반해 사르트르는 원래 관심이 있었으므로 해당 부분을 복습하듯 가장 집중적으로 흥미롭게 읽었다. 앞으로 사르트르는 쭉 읽어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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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 레스토랑 Less Than Nothing 시리즈 1
슬라보예 지젝 지음, 조형준 옮김 / 새물결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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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서 놓고 수업했었는데 번역 진짜 엉망이라고 교수님도 말씀하시더라고요. 사유할 건 넘치지만 가능을 불가능으로 해석하거나. 문장 자체가 좀 난삽한 문장들도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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