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언제나 당신과 함께 정보라 환상문학 단편선 2
정보라 지음 / 퍼플레인(갈매나무)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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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숨에 삶이 들어오는 만큼, 날숨에 삶이 빠져나간다. 오늘을 산 만큼 죽음이 다가온다.

삶과 죽음은 동전의 양면처럼 가깝지만 멀고, 멀지만 가깝다.

스무 살쯤 닥쳤던 할매의 부고는 당시의 나에겐 '너무 먼, 비현실적인, 아득한 미래'라고만 느껴졌다. 많이도 울고, 수많은 시간 동안 그리워했다. 할매는 이따금 꿈에 나타나 또렷한 잔상을 남기고 갔다. 할매는 생전에 나만보면 자동으로 '이놈이 아들만 되었어도….'라는 한 서린 말을 내뱉곤 했다. 말은 족족 화살이 되어 어린 마음을 많이도 찔러댔지만, 이제 그이는 더 이상 내게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그저, 친절하게 왔다가 조용히 사라지는 편이다.

얼마 전 할매의 딸인 고모의 부고 소식을 들었을 때는 '가까운, 현실적인, 당장의 오늘'이라고 생각되었다. 몸이 떨어져 있어서 그런지, 내가 나이가 들어서인 건지 코가 찡하며 눈물이 조금 났을 뿐 시끄럽지도 요란하지도 않은 시간을 보냈다. 공교롭게도 고모는 할매와 같은 날에 소천하셨다. 뭐가 그리 좋아 하늘에 가는 날까지 어미 뒤를 쫓아가는 건지.

정보라 작가의 저서 「죽음은 언제나 당신과 함께」는 평범한 일상에 스며드는 죽음의 기운을 다양한 형태로 그리고 있다. 그 기운은 기괴하고 그로테스크하면서도, 천사의 탈을 쓴 악마의 모습으로 현실인지 비현실인지 모를 경계 어디쯤에서 오늘의 독자를 흔들곤 한다. 평범함을 깨트리는 불편함은 주로 가까운 사람들에게서 비롯되었는데, 바로 그 점 때문에 더욱 어깨를 움츠리게 된다.

그러니까 기괴하고 낯선 세상에서 암담하고 불안하다고 느끼시는 분들께는 '나도 그거 뭔지 안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혼자만 암담하고 불안한 것보다는 같이 암담하고 불안한 쪽이 좀 덜 무서운 법이다. 그리고 조금 덜 무서워하면서 어떻게든 버티다 보면 좋은 날이 올 것이다.

- 작가의 말 中

무섭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너무 지나치게 기괴하고 오랫동안 낯설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는 작가의 말처럼, 척박한 현실에서도 한 걸음씩 내디디며 오늘을 걸어가기를. 그러니까, 죽음의 모습을 가장한 번뜩거림에 쉽게 굴복하지도, 슬퍼하지도 말고 조금만, 그래 그만큼만 힘을 내어 계속 살아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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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는 어떻게 자존감을 설계하는가 - 잃어버린 나를 찾기 위한 뇌과학자의 자기감 수업
김학진 지음 / 갈매나무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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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례없는 팬데믹 이후 많은 것들이 변화되었다. 개인 측면으로 우리보다 개인에 대해 더 집중하게 되었고, 사회 측면으로 분리된 각각이 연결하려는 시도가 높아지며 각종 IT 기술이 발달했다. 환경 측면으로는 기후 위기 및 환경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져 이를 해결하려는 시도가 많아졌다. 직접 만날 수 없는 개인이 인스타나 유튜브 등 소셜네트워크를 더 많이 찾았고 보이는 것들에 많은 영향을 받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비교를 통해 현재의 나의 상태를 점검하는 척도로 비교리즘의 온상이 되었다. 많은 이들이 자기만의 공간에 숨어있거나, 자책하거나, 열등의식을 느꼈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따라가지 못하면 생존하지 못할 것 같은 위기감을 느꼈다.

 

 

이러한 현상 속에서 저자는 자신의 온전한 마음 찾기에 골몰하였다고 한다. 코로나 이전부터 자존감 열풍이 불었지만, 고립된 사회에서 자존감 문제는 더욱 중요한 이슈로 떠올랐다. 특히 빠르고, 경쟁적이고, 승리문화가 지배적인 대한민국에서는 더욱 필요한 감정이기도 하다.

 

 

이 책은 자존감(self-esteem)을 향상하기 위해 단순한 마음가짐이나 태도에 관한 내용이 아니라, 이 감정을 제대로 설명하기 위해 뇌과학을 기반으로 근거를 제공하는 책이다. 즉 신경과학, 생물심리학을 바탕으로 자존감과 관련한 다양한 가설, 이론, 연구 결과, 분석 내용, 이론 등을 논리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따라서 단순히 자존감 향상에 대해 방법만 제공하는 것이 아닌, 그 기저를 과학적으로 증명함으로써 근본원리를 알고 이를 실천하게 하는 힘이 있는 것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 두 가지를 꼽자면, ‘알로스테시스자기감정 인식이다.

알로스테시스(Allostasis)란 신체의 항상성 불균형이 발생하기 전에 이를 예측하고 외부 환경을 활용하여 예방하려는 능동적 조절 회로이다. 이 때문에 인간은 더 적은 노력으로 더 많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끊임없이 효율성을 추구하며 목적을 달성하는 데서 자존감이 결정되는데, 이것이 과부하가 되면 자존감 불균형이 생긴다는 내용이다.

 

 

이를 회복하기 위한 자기감정 인식은 사회적 공감을 확대하기 위해 먼저 자신에게 관심을 돌리라는 내용이다. 이것이 어려운 이유는 고차원적인 메타인지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해 흥미로운 여러 과학적 지식을 얻음과 동시에, 나의 감정 읽기에 몰입하였다. 이것이 메타인지의 시작이지 않을까. 건전한 공동체를 위해서 나를 먼저 제대로 인식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각각의 개인이 건강한 자존감을 가질 때 타인을 향한 무차별적 행위가 감소할 것이다. 각종 묻지 마 식 범죄, 권력 다툼, 차별, 전쟁 등 온갖 부정적인 현상에서 벗어나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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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우루스
예브게니 보돌라스킨 지음, 승주연 옮김 / 은행나무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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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은 페스트가 창궐하던 15세기 중세 러시아를 배경으로, 의사에서 성자로 거듭난 인물의 이야기를 거대한 담론으로 시작한다.

중세 성자전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러시아 문학을 처음 접하는 독자 누구라도, 작가의 깊은 이해도와 독보적인 서사 형식으로 그의 세계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주인공 아르세니는 역병이라는 고질병으로 부모를 잃고, 마을의 약제사에게 약초술과 의술을 배운다. 그의 신들린 듯한 의술로 마을 사람들과 주변인들을 치료해 주면서 명성이 점점 높아진다. 마치 우리나라 ‘허준’이 유익태 선생께 의술을 배워 청출어람의 경지를 넘어선, 타인에게 ‘의’를 베푸는 것과 같다.

그러나 정작 그에게 중요한 인물인 사랑하는 연인과 아들의 죽음을 막지 못했으니, 그에게 아무리 훌륭한 의술이 무슨 의미가 있겠나, 자책과 죄의식이 그를 사로잡았을 것이다.

어떻게 그는 자기 죄를 벌했을까.

본질적인 자신이기를 포기한다. 자신의 아이덴티티인 원래 이름을 포기하고, 낯선 이름으로 새 인생을 펼치려 타지를 떠돌며 과거를 돌아보고, 죄를 사하고자 한다. 그 길이 너무나 고단하고 애처로우며 힘들지만, 자신을 찾는 역설적인 상황으로 되려 그를 구하고자 한 것.

때로는 순례자와 희생자의 모습으로 마치 구원의 상징인 성자로 비치는데, 바로 이 점이 하등의 인간인 우리가 삶을 회고하게 한다.

우리는 자신의 죄를 씻고, 진정한 구원을 받기 위해 어떠한 행동을 하고 있는가?

진정 그 행동은 자신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타인을 위한 것인가?

그가 아무리 성자로서의 모습을 하고 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결핍과 감정을 가진 어쩔 수 없는 인간임을 확인하는 순간,그를 더 이상 신(神)적 인물이 아닌 '결핍 투성의 나의 모습'으로 받아들인다.

그래, 아무리 고결하려 해도 당신 또한 어쩔 수 없는 인간이므로.

결국 우리네 인간은 죄를 짓고 사는 공동의 운명을 갖고 태어났으며, 그 오점을 만회하려고 노력하는 순간 조금 더 성숙한 존재로 살아가기 위한 노력을 역사적으로 되풀이하지 않는가, 싶은 것이다.

494.

"저는 아르세니였고, 우스틴이었고, 암브로시우스였으며, 이제는 라우루스가 되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제 기억을 신뢰하지 않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저는 서로 다른 시대의 저였던 사람들과 저를 더 이상 연관 지어 생각할 수 없습니다. 삶은 모자이크와 유사해서 여러 조각으로 흩어질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스스로 구원받고, 타인과 함께 희망을 찾는 삶을 이어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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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편견
제인 오스틴 지음, 박상곤 옮김 / 문예춘추사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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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한 재산을 가진 독신 남성에게 아내가 필요하다는 건 보편적인 진리이다."("It is a truth universally acknowledged, that a single man in possession of a good fortune must be in want of a wife.")의 문장으로 시작하는 소설은, 18~19세기 영국의 시대상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부유한 집안에 현모양처 스타일의 여성을 혼인시키는 것이 당시 초미의 관심사였다.

이후 다수의 작품이 비슷한 클리셰로 탄생했는데 영국의 『브리짓 존스의 일기』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하며, 한국의 로맨스 작품에서도 자주 볼 수 있다. 『시크릿 가든』, 『파리의 연인』 등 인기를 끌었던 작품의 줄거리는, 어려운 가운데 ‘캔디’ 같은 꿋꿋하고 밝은 이미지로 냉혈한이지만 알고 보면 츤데레인 재벌가 남성과 결혼에 성공하여 행복한 삶을 꾸린다는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 보통 여성들의 대리만족을 충족시켜 주는 한편, ‘어쩌면 나도 저런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동시에 안겨주었다. 요새야 당찬 여성의 이미지가 대두되고 있지만, 작품을 보면 당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욕망과 현상을 파악할 수 있는 점이 흥미롭다.

물론, 무조건적인 ‘신데렐라 신분 세탁’ 발상은 금지이다. 단순히 외모만 예쁘다고 ‘간택’되는 것이 아닌, 외모는 부족해도 자신만의 뚝심과 주장이 강한 여성들이 금수저를 잡는다는 식의 주제 의식이 바탕이 되었다. 첫째보다 덜 예쁘지만, 고집과 자존심이 있는 엘리자베스와 다아시의 결말만 봐도 그렇다. 그러니 ‘여성들이여, 자기 내면을 가꿔라! 당찬 속을 채워라! 진정한 사랑은 그런 당신을 알아봐 주는 사람과 하는 것이다.’, 라는 캐치프레이즈가 성행할 만도 하다. 남자든 여자든 연예 시장에서 자신의 매력을 최대로 뽐내고, 내가 선택한 그와 새로운 세대를 창조하는 것이 생물학적인 생존본능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요즘 세태와는 아주 다르다. 본능을 이성으로 억누르는 듯한 느낌이 자주 든다. 사회경제적으로 너무 힘들고 고된 개개인이 삶을 이어가기 때문이다. 결혼과 번성은 누구에게는 관심이 없고, 상관없고, 뜬구름인 주제인 것.

그런데도 이 작품이 갖는 고귀한 점은, 19세기 경직된 계급사회와 여성의 역할 한계를 지적한다는 것이다. 즉 자신의 위치를 결정하는 것이 부, 결혼, 평판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유머 섞인 풍자로 짚어준다. 재독 할 때마다 독자들에게 새로운 보상을 제공하는 걸작으로 페이지마다 인간의 본성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얻을 수 있다. 전 세대를 거울삼아 오늘날 우리를 비춰볼 기회를 제공하는 것만으로도 눈부신 문학적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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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개의 별, 우주를 말하다 - 불가해한 우주의 실체, 인류의 열망에 대하여
플로리안 프라이슈테터 지음, 유영미 옮김, 이희원 감수 / 갈매나무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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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올려다보면 반짝 빛나는 별,

 

이 신비로운 존재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시나요?

 

 

무수히 많은 별이 있지만, 그중 100개의 별을 엄선하여 친절히 설명해 주는 책이 있습니다.

 

바로 천문학자 플로리안 프라이슈테터의 100개의 별, 우주를 말하다_불가해한 우주의 실체, 인류의 열망에 대하여입니다.

 

 

책은 각각의 별에 대한 탄생 이야기와 주목할 사건 등 신화에서 블랙홀까지 별에 얽힌 모든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100개의 별 이야기로 우주의 탄생과 역사, 문화까지 두루 볼 수 있지요.

 

 

우주를 들여다봄으로써 우리 인간사를 되짚어 보게 됩니다.

 

 

 

 

 

그중 재미있게 읽었던 몇 가지를 소개해 봅니다.

 

 

 

혜성

 

혜성은 우리가 '꼬리별'로 알려진 매우 신비한 별입니다. 이는 예고 없이 나타나 이내 사라져 옛사람들에게는 신비를 넘어선 '()의 징조'라고 여겨졌습니다. 혜성 출현 이후 열, 질병, 페스트, 죽음, 기근, 전쟁, 화재, 홍수, 지진 등이 일어난다고 믿은 것이죠.

 

 

그도 그럴 것이 고대 사람들이 보기에 다른 별들은 움직임이 없는데 혜성은 규칙 없이 나타났다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이작 뉴턴이 혜성도 태양을 따라 공전하고 있다는 것을 밝혔고, 혜성은 태양계가 형성되는 시절에 쓰이고 남았던 암석과 얼음이 합쳐져 덩어리를 이루며 발생된 것이라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때문에 미신적인 요소는 거의 사라지고 과거로부터 온 소중한 '사절'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베들레헴의 별_메시아의 상징

 

성경에 등장하는 '동방박사와 별'.

 

이것의 본질을 밝혀내려는 많은 시도가 있었지만 오늘날 해석을 해보면 성경은 사실적, 학술적 기록이 아니므로 당시 시대적 서사, 모티브, 주제에 따른 창작의 별이라는 것입니다. 예수 탄생의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태어난 우주적 신분을 창조해낸 것이죠.

 

그러므로 예수의 존재가 더욱 성스럽고 신비하게 그려지지 않았을까요?

 

 

 

각각의 주제를 따라 독립적으로 서술이 되어있어, 순서대로 또는 관심 가는 챕터별로 봐도 재미있습니다. 우리가 막연하게 알았거나, 잘 몰랐던 내용이 쉽게 쓰여있어서 흥미를 돋웁니다.

 

 

우주의 일부를 전하고 있지만, 전반적인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어요. 관심 가는 부분은 책의 내용을 지렛대 삼아 파생하여 탐색하면 더욱 풍부하게 즐길 수 있습니다.

 

 

 

 

어렸을 적 하늘에 둘러진 별자리를 보며, 망원경을 눈에 대고 별을 관찰하며 꿈을 키워오지 않으셨나요?

 

'반짝반짝 작은 별~' 노래를 부르며 한없이 올려다봤던 그 별, 별에 대한 이야깃 거리를 가족과 자녀와 친구와 연인과 나눌 수 있다면 더욱 낭만적이겠죠?

 

 

 

우리 안의 여전히 남아있는 순수와 꿈, 과거와 미래의 시간을 함께 하시고 싶은 분들께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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