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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문, 작가는 무엇으로 쓰는가
최재봉 지음 / 비채 / 2024년 3월
평점 :
'모든 독자는 잠재적 작가이다'라는 말이 있다. 쓰는 일을 하기 위해 먼저 읽는 일을 잘해야 한다.
'작가들의 작가'로 꼽히는 아르헨티나의 문호 보르헤스는 "내가 읽었던 것이 내가 썼던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누구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읽지만, 누구든 자신이 쓰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쓸 수 있는 것을 쓰기 때문"이라고 했다(책 247page, 《보르헤스, 문학을 말하다》 인용).
글쓰기 스펙트럼을 넓히기 위한 방법의 일환으로 다양한 글 읽기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작가와 편집자를 거쳐 세상에 나온 정제된 작품을 일차적으로 맛보는 일 외에 평론가에 의해 2차 가공된 작품의 세계는 어떨까? 과연 문학 평론가가 쓴 글은 어떨까라는 궁금증에서 읽기 시작한 글이었다.
이 책은 30년간 문학 담당 기자로 살아온 저자가 한겨레신문 칼럼 '최재봉의 탐문'을 보완하며 묶은 것이다. 특정 주제에 대한 글을 쓰기 위해 많은 작품들을 인용하였음에 감탄했다. 그동안 작품에 묻혀 얼마나 취재하고, 기록하고, 수집하고, 분류하였는지 세월의 고뇌가 느껴졌다. 오히려 모아둔 글감을 분류하여 글을 만들고, 주제를 파생시켰을 수도 있다. 쌓아놓은 자료들로 글을 쓰는 것에 대한 신선함을 느꼈다.
part 1에서 4까지 대주제와 하위 목차로 분류하여 소제목을 붙였다. 예를 들면,
Part 4. 우리는 모두 절대자의 피조물 혹은 연극 무대의 배우가 아닌가
작중인물 | 피조물의 독립선언
우정 | 가까운 이의 재능은 왜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가
부캐 | 문학이라는 '부캐 놀이'
….이런 식이다. 각 소제목 하 여러 작품의 배경, 작가, 사건 등등의 이야기가 녹아있어 위의 한 꼭지인 '작중인물 | 피조물의 독립선언'의 내러티브를 만든다. 물론 평론가의 사견은 최대한 지양하고, 객관적인 사실과 중립적인 내용으로 서사를 이룬다. 나에게는 '글을 이렇게 엮어갈 수도 있구나. 재미있다.'라고 느낀 부분이었다. 작품 자체에서 벗어난 '작품 밖의 이야기'와 작가의 마음이 담긴 '숨은 마음 이야기'의 조화라고나 할까.
작품 전체를 통틀어 가장 마음에 와닿았던 것은 '저항적 독서(resistant reading)'에 대한 부분이었다. 주체적이며 비판적인 독서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저자의 의도를 비롯해 특정 텍스트에 대한 기존의 지배적인 해석에 반기를 드는 것이다. 즉, '행간을 읽는 지혜'라고 표현하고 있다.
또, '같은 소설과 같은 인물의 이야기라고 해도 읽는 이에 따라 다채롭고 때로는 상반되기까지 한 독해가 가능한 것이 문학의 세계다.'라고 저자는 역설한다.
나는 이 말에 적극 동의한다. 근거 없는 해석이 아닌 독자의 자유로운 해석을 존중하자는 의미이고, 나아가 타인의 의견을 무조건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 적극적인 자세로 독서를 즐겨보자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왜냐하면 독자 또한 작품과 관련된 '제2의 창조자'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시선으로 글을 보고, 글감을 어떻게 꿰어갈지 궁금한 사람들이 보면 좋아할 책이다. 다만 스토리 위주의 글이 아닌 평론이라는 점에서 비슷한 골격의 글들로 지루함을 느낄 수 있으니 흥미로운 문학작품과 병렬 독서를 하면 글을 보는 눈이 확대될 것이다. 평론가의 글쓰기가 궁금한 사람들도 환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