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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 문구에 '혹' 했다. 스티그 라르손을 능가할 작가라고? 작가 부재의 아쉬움을 달랠길 없어 밀레니엄 후유증을 한동안 앓았던지라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스티그 라르손의 빈 자리를 채워줄 수 있을 것 같은 기대도 한 몫 했다. 살인의 사계절 시리즈중 겨울편인 한겨울의 제물. 앞으로 봄, 여름, 가을편도 나온다고 하는데 어찌 기대를 안할 수 있을까!
혹독한 겨울 어느 날, 나무에 매달린 거구의 시체가 발견 된다. 고문으로 온 몸의 피부가 벗겨져 끔찍하게 살해된 피해자. 피해자의 영혼이 여형사 말린의 곁을 맴돈다. 고대 신화를 바탕으로 한 인신제물인 것 같다는 제보 전화가 걸려오고 살인 사건은 소문만 무성하다. 말린은 피해자의 과거를 추적하던 중 피해자를 담당했던 사회 복지국 직원 마리아 무르발이라는 여성을 알게 된다.
소설에서 가장 독특하다 할 수 있는 점은 주인공인 말린 곁에 맴도는 살인 사건의 피해자 벵트의 영혼이다. 말린은 들을 수 없지만 벵트는 독백을 통해 사건의 작은 실마리를 제공 한다. 말린은 꼭 벵트의 독백을 들은 것처럼 벵트가 안내하는 단서를 찾아내고 점점 범인의 실체와 가까워진다. 영하 몇 십도를 넘나드는 추운 겨울이 배경이라 안그래도 오싹한데 주인공의 곁에 맴도는 영혼의 등장으로 더 으스스한 분위기를 제공한다.
누구를 진짜 악인이라고 불러야 될지 모르겠다. 악한 근성을 가지고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 사람이 악한 마음을 가지게 되는건 주위 환경 때문이던지, 성장 배경 때문이던지 꼭 무슨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소설 속 최초의 악인이라 불리울 수 있는 사람은 분명히 있다. 한 가족 앞에 드리워진 악의 그늘은 누가 그렇게 만들었는지 알면서도 선뜻 화를 낼 수 없는건 처음부터 악인이 아니었기 때문일거다. 단순한 관심과 욕망으로 시작했지만 그로 인해 자신이 어떻게 변할지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단순한 살인 사건이 아닌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다. 혼자 스스로 세상과 단절하거나, 주위 사람들에 의해 혼자가 되었거나, 어쨌든 홀로 남겨진 사람들은 고독하다. 고독은 그들에게 재앙이나 마찬가지였다. 그 고독으로 만들어진 감옥 안에 갇혀 살아온 그들이 감정을 표출할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았다. 그 방법이 자신 스스로를 악의 구렁텅이로 내모는 길이라 하더라도 그들에게는 선택권이 없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바로 전에 존 하트의 <아이언 하우스>를 읽었다. 물론 줄거리는 틀리지만 느끼는 감정들이 너무 비슷해서 깜짝 놀랐다. 개인적으로 <아이언 하우스>와 비슷하게 느껴지는 감정들만 아니었다면 재미있었을텐데 그게 좀 아쉽다. 스티그 라르손의 빈 자리를 채울 정도는 아니더라도 새로운 북유럽 스릴러의 강자가 나타났으니 반가운 마음이 크다. 솔직히 수다스러운 아줌마같은 여형사 말린은 마음에 안들지만 작가가 작정하고 쓴듯한 묵직한 설정들은 다음편을 기대하게 만들기에는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