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만의 방 버지니아 울프 전집 3
버지니아 울프 지음, 오진숙 옮김 / 솔출판사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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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만의 방’이라는 단어는, 굳이 울프의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한두 번쯤은 들어보고 말해봤음직한 단어다. 울프는 책의 서두에서 “저녁식사를 잘하지 못하면 사색을 잘할 수 없고, 사랑도 잘할 수 없으며, 잠도 잘 오지 않습니다”라고 털어놓는다. 여기서 잘하는 저녁식사란 ‘정성어린 손맛’보다는 식탁을 잘 차려낼 수 있는 능력, 즉 돈과 직접 결부되어있다.

울프는 중세 때 설립된 남자대학과 19세기 말에 세워진 여자대학의 설립기금 모금속도(또는 난이도)와 식탁을 비교하며 돈의 중요성을 언급한다. 남자대학은 대학설립기금을 여자대학보다 훨씬 빠르고 쉽게 모았으며, 남자대학의 오찬은 여자대학의 정찬보다 훨씬 다양하고 영양가있는 음식들로 구성되어있다. 이제 <자기만의 방>은 본격으로 이야기의 풀어나간다. 돈, 그리고 자기만의 방에 대해서.

울프는, 여성이 픽션을 쓰기 위해서는 돈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녀는 중산층 이상 출신 여성(에이프러 벤, 도로시 오스본 등)의 작품들과 조지 엘리어트, 에밀리 브론테, 제인 오스틴의 작품들을 언급(비평)한다. 그러면서 목소리를 높인다. 여성이 픽션을 쓴다는 것은 여성의 능력이 발휘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울프는, 글을 쓰는 사람이 자신의 성(性)을 염두에 두면 필연적으로 살아남지 못한다고 단언한다. 창조적 예술이 이루어지는 곳은 여성과 남성을 ‘넘어서는(내지는 결합하는)’ 지점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여성이 픽션을 쓴다는 것은, 여성이 여성(의 역할)으로 사는 게 아니라 인간답게 사는 것을 의미한다.

<자기만의 방>에서는 연간 500파운드와 자기만의 방이 줄곧 강조된다. 그런데, <자기만의 방>이 여성들에게 힘주어 말하는 것은 ‘인생목표 : 연간 500파운드, 자기만의 방’뿐인가? 그렇지 않다.

“나의 마음 속을 샅샅이 뒤져보아도 나는 남성의 동료라든가 남성과 대등한 사람이 되고자 하는 고귀한 감정을 찾을 수 없고 더 높은 목적을 위해 세상에 영향을 주고자 하는 생각도 없습니다. 나는 그저 다른 무엇이 아니라 자기자신이 되는 것이 훨씬 중요한 일이라고, 간결하게 그리고 평범하게 중얼거리고 있을 뿐입니다.”

울프는, 셰익스피어에게 ‘주디스’라는 누이가 있었더라면 어떠했을까를 상상한다. 울프의 상상 속에서 주디스는 젊어서 죽었고, 슬프게도 글 한 줄 쓰지 못했다. 그리고 마침내는 코끼리 동물원 맞은편 버스정류장에 묻혔다.

그러나 울프는, 그 교차로에 묻힌 주디스가 아직도 살아있다고 선언한다. 주디스는 여성들 속에, 울프 자신 속에, 오늘밤 그릇을 설거지하고 아이들을 잠재우느라 바쁜 여성들 속에 살아있다고 증언한다.

“그녀는 살아있지요. 위대한 시인들은 죽지 않으니까요. 그들은 계속 현존하는 존재들입니다. 그들은 우리들 속으로 걸어들어와 육체를 갖게 될 기회를 필요로 할 뿐입니다.”

그런데 주디스는 우리 여성들의 결단(여성이 자신의 시를 쓸 수 있는 세상을 만들겠다)이 없이는 출현하지 않는다. “주디스는 분명히 오지만, 거저 오지는 않는다.” 이것이 <자기만의 방>이 뿜어내고 있는 열정이자, 결론이다. 그리고 그 결론은 울프가 살았던 20세기의 것이기도 하고, 지금 21세기의 것이기도 하다. 우리도 여전히 주디스 출현을 기다리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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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5-12-20 0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버지니아 울프 전집 눈여겨 보고 있는데, 좋은 리뷰네요.
사실, 대학교때 읽었을때와 얼마나 다른 느낌일까 겁나서 못 읽고 있었어요.
땡스투 눌러드리고 갑니다.

균형 2005-12-22 0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우리 속에 있는 여신들 - 심리여성학
진 시노다 볼린 지음, 조주현.조명덕 옮김 / 또하나의문화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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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속에 있는 여신들>은 독자들에게 묻는다. “당신 속에는 어떤 여신이 계십니까?”라고. 무슨 ‘신내림’사건에 대한 자각을 말하는 것일까? 아니다. ‘당신 속 여신 운운’은, 말하자면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다. 그럼 달은 무어냐고? 그건 제각각 독특한 ‘개별의 개인’이다.

그런데 <우리 속에 있는 여신들>을 읽다 보면, 자기자신의 성격과 특성을 구성하는 요인들 하나하나에다가 ‘이름을 붙이는(命名)’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모를 수 있다. 그런데 그 재미에 푹 빠져 거기 멈춰버리면 이 책은 ‘고만고만한’ 일반화의 오류와 한계를 지닌 성격유형이야기 중 한 편이 될 것이다.

실제로 몇십 억 여성인구를 단 일곱 여신들로 유형화하는 특징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여성들이, 조각조각 흩어져있는 자기자신의 경험들을 구분하고, 또 분류하여 이해하도록 이끄는 실마리가 되어준다. “난 왜 이 모양일까?”가 아니라 “아! 바로 그래서였구나!”하는 ‘자기이해’의 감동까지 덤으로 얻을 수 있다.

물론 볼린은 여성들에게 내재되어있는 여신들로, 희랍여신 일곱을 확정해서 거명한다. 아르테미스, 아테나, 헤스티아, 헤라, 데메테르, 페르세포네, 아프로디테. 희랍신화를 통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바 누구는 독립적이고 누구는 매우 수동적이며 또 누구는 상당히 질투가 많다. 그런데 이 일곱 여신들은 한 여성 안에 들어가 살면서 그녀를 짓누르거나, 또는 여‘신’의 의지로 그녀를 좌지우지하는 존재들이 아니다.

이 여신들은 한 여성 속에 모두 다 잠재적으로 존재하는데, 그 중 어떤 여신원형은 활성화되고 어떤 여신원형은 퇴화된다는 것이 볼린의 핵심주장이다. 볼린은 책 뒷부분에 가서 독자들에게 질문한다. 여신들의 활성화와 퇴화를, 자기 아닌 딴 사람에게 결정하도록 내어줄 것인가? 아니면, 자기자신이 결정할 것인가? ‘황금사과’는, (여신들의 손이 아닌) 자기결정권을 발휘하고자 하는 ‘한 여성’이 쥐고 있다.

볼린은 책의 맨마지막 문장을 이렇게 적는다. 그녀 자신의 책이 “여러분 자신의 여행에서 결정권자가 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었기를 바란다”고…. 즉, 이제까지 살펴본 일곱 여신들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여성이 ‘내가 내 인생에서 주인공이고 결정권자다’라는 것을 확인하도록 이끄는 ‘도움말’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하나의 장치였고, 상징이었다. 우리가 잘 아는 ‘원형상징.’ 우리는 상징 자체에 얽매이면 안되리라.

자신이 여성으로 태어난 것을 기뻐하는 여성운동가 글로리아 스타이넘은 이 책의 서문에서 일찌감치 약간의 우려를 표명한다. 그녀는 여성들이 원형 안으로 흡수되어버릴까 봐 걱정하였다. 이를테면, 상징 자체에만 주의를 기울일까 봐.

요컨대 <우리 속에 있는 여신들>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다. 우리는 (손가락 아닌) 달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이 책은, 특별히 맨마지막 문장까지 정독할 것을 요구한다. 가령 ‘내 속에는 아테나 여신이 들어있는걸!’하면서 아테나 관련부분만 ‘발췌독’한다면, 볼린의 의도로부터 (아마도) 멀어지는 일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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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의 선물
Irvin D. Yalom 지음, 최웅용 옮김 / 시그마프레스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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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위는 어둡다. 당신의 사무실에 왔는데 당신은 보이질 않는다. 사무실은 비어있고, 들어가서 둘러보니 있는 것이라곤 당신의 파나마모자뿐이다. 그 모자도 온통 거미줄로 덮여있다.”


  심리학자이자 소설가인 어빈 얄롬(Irvin D. Yalom)의 책, 『치료의 선물(The Gift of Therapy)』 서두이다. 심리학 서적인지 소설책인지 아리송할 만큼 친근한 문장이다. 환자(내담자)의 꿈 이야기로 책을 연 얄롬은 두 편의 소설을 펴낸 이야기꾼답게 자신의 심리치료 경험을 시종일관 편안한 말투로 이야기해준다. 얄롬은 실존주의 심리치료의 입장에서 ‘치료자와 내담자가 (치료라는) 여행의 동반자’라는 관점을 갖고 있다. 심리치료사는 실존적 문제를 안고 찾아오는 내담자(환자)를 치료해주기만 하는 게 아니라 (내담자와 상호작용하는 동안) 자신의 실존적 문제를 치유해간다는 것이다.

  인간은 수많은 인간관계 안에서 문제를 감지한다. 그 문제들이 심각해져서 삶을 지속해가는 것이 힘겨워지면 사람들은, 심리치료사를 찾게 된다. 얄롬은, 관계 안에서 일어난 문제는 관계 안에서 풀어야 한다고 말한다. 눈도 맞추지 않고, 충분히 이야기를 듣지도 않고, 그저 겉으로 드러난 증세만을 관찰한 뒤 약을 처방하는 식은 ‘관계’가 아니다.

  얄롬은 치료자와 내담자(환자) 사이에 관계가 형성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치료자가 내담자와 관계맺음에 머뭇거려서는 안된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좋은 관계가 형성되어야 두 사람은 명실공히 ‘동반자’로서 각자의 삶을 함께(나름대로) 치유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치료자는 치료의 과정에서 내담자를 치료해준 것이지만, 그것은 또한 내담자 스스로 치료한 것이기도 하다는 게 얄롬의 주장이다. 한없이 겸허한 심리치료사 얄롬의 이 책은, 앉은 자리에서 쭉 일독하고도(그만큼 쉽게 읽힌다), 두고두고 옆에 두어 곱씹어가며 읽고 싶은 책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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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만의 나라
샬롯 퍼킨스 길먼 지음, 손영미 옮김 / 한국문화사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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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만의 나라>는 페미니즘 유토피아 소설의 고전이다. 토마스 모어 경이 자신의 소설 <유토피아(1516)>에서 쓴 ‘유토피아’라는 말은 그리스어의 아니다(οu')와 장소(τóπos―topos)를 합성해 만든 것으로 ‘아무 데도 없는(nowhere)’이라는 의미였다. 따라서, 어쩌면 여자만 사는 나라, 그런 곳은 아직은 ‘아무 데도 없는’지도 모르겠다.


전쟁과 지진, 화산폭발로 남자들이 다 죽고, 여자들만 살아가던 한 나라에서 한 여자가 아기를 낳았다. 나라 전체를 다 뒤졌지만 (생식‘사건’에 참여한) 남자는 한 사람도 없었다. 결국 여자들은, 그 아기를 신이 보낸 선물이라 결론내리고, 그 축복받은 엄마를 신전에 모셨다. 그 엄마는 이 신전에서 딸을 내리, 다섯 낳았다. 그 다섯 딸들은 스물다섯 살이 되자 또 아기를 낳았다. 각각 다섯씩 낳았다. 이렇게 하여 그 나라에 스물다섯 명의 새로운 여성들이 생겨났다. ‘처녀생식’은 여자만의 나라에서 계속 이어졌다.


여자만의 나라 백성들은 온 나라가 일사불란하게 ‘최고의 환경’을 추구한다. 고양이는 쥐나 두더지 등 해로운 동물만 잡을 뿐, 새를 잡지 않는다. 여자만의 나라에 사는 고양이는 품종개량된 고양이이며 다들 건강하다. 우유(소젖)는 송아지에게만 먹이고, 어머니의 젖은 아기들에게 먹인다. 인구가 점점 늘어나자 여자만의 나라에 사는 초식동물들은 모두 제거되었고, 숲의 나무들은 모두 과일나무로 대체되었다. 처녀생식의 결과 30년마다 인구가 다섯 배로 늘어나자 여자들은 출산제한을 위한 회의를 열었다. 그 회의의 결정사항은 이런 것이었다. “우리는 이만큼의 국민만 만.들.어.내.겠.다.” 이후 어떤 여자들은 나라를 위해 아이 낳는 걸 포기하였다.   


여자만의 나라에서는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게 사람됨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데, 이들에게는 소위 ‘여자다운’ 구석이 없다. 남자들의 선호를 반영하는 ‘여자다움’ 말이다.


이러한 여자만의 나라는 이방인 남자들 세 명(밴, 테리, 제프)에 의해 관찰된다. 세 명의 남자들과 여자만의 나라 사람들의 토론은 참으로 흥미롭다. 개, 임신중절, 종교 등, 그들은 사회 모든 분야를 토론주제로 삼는다. 종교에 관하여 토론하는 중에 영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대목을 인용해보겠다.


  “그건, 영원히 끝나지 않는 거에요.”

  그러자 그녀(엘라도어)가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영원히 안 끝나는 거라구요?”

  “네, 영원한 생명이죠.”

  “아, 그건 우리도 물론 알아요. 어디를 둘러봐도 삶은 계속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기독교의 영생은 죽지 않고 계속 산다는 뜻이죠.:

  “한 사람이요?”

  “그래요. 같은 사람이 죽지 않고 계속 사는 겁니다. (중략) 당신은 영원히 행복하게 살고 싶지 않아요?”

  “난 후손들이 영원히 대를 이어가기를 바라지만 내가 계속 살기를 바라진 않아요.”(182-184쪽)


샬롯 퍼킨스 길먼(Charotte Perkins Gilman, 1860~1935)은 미국 코네티컷 주의 하트포드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아버지는 보스턴 공립도서관장을 역임한 학자요 유명한 신학자였으나 샬롯의 출생 직후 가출하였다. 샬롯은 성장하여 미술교사와 보모로 일하며 집안을 이끌었는데, 스물다섯 살에 동료화가인 월터 스텟슨과 결혼해서 딸 캐더린을 낳았다. 그러나 산후우울증을 심하게 겪으며, 자신이 전통적 의미의 혼인생활이나 육아에 걸맞지 않음을 깨닫고는 이혼했다. 그녀의, 이러한 특별한 인생역사가 <여자만의 나라>를 구상하게 하였을지도 모르겠다.   


<여자만의 나라>는, 지금 여자들로 하여금 ‘여자 남자 같이 사는 우리들의 나라’가 혹시 ‘남자만의 나라’는 아닌가 하는 의문을 떠올리게 할 것이다. 여자만의 나라, 여자 중심의 나라는 ‘아무 데도 없는’ 나라인 데 반해서 ‘남자만의 나라, 남자중심의 나라’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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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는말


  『신의 네 여자』는 교회와 여성의 관계를 ‘흥분하지 않고’ 써내려간다. 이 책은 페미니즘을 전면에 내세우기보다는 서구의 지배문화였던 가톨릭의 안티페미니즘 양상을 보여줌으로써 결국 여자가 무엇이며, 여자의 여성성과 성욕이 여자 스스로에게 어떻게 새롭게 정의될 수 있는지를 성찰하게 하는 미덕을 갖고 있다.1) 이는, 무너뜨려야 할 교조가 스스로 무너지도록 그 본색을 드러내는 방식2)이라고 생각된다. 이 책은 안티페미니즘의 주제를 정면공격하지 않고, 그것의 역사적 전개를 그대로 읽어줌으로써 여성의 잔혹사와 그것을 가능케 했던 주장들의 다양한 (심지어는 그 주장들 사이에 서로 반대되거나 모순되기까지 한) 본색을 드러내준다. 이제부터 가톨릭교회 여성 잔혹사(혐오사)의 내막을, 『신의 네 여자』의 서술을 따라가며 차근차근 살펴보도록 하겠다.


2. 그리스도교 기원 이래 가톨릭교회의 여성 잔혹사(pp.15~102)


2-1. 강요된 어머니상과의 결별을 위해


  ‘여자는 약하나 어머니는 강하다’는 말을, 듣는 즉시 뭔가 이상하다 느끼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열등한 여성, 위대한 모성,’ 이것에 대해서는 또 어떠한가? 과연 이 말들은 모성을 높이고 존경하는 발언일까? 과연 ‘여성만이 이룩할 수 있고, 때로는 이룩해야만 하는 것으로 강요되는 모성’을 존중, 찬미하는 말일까?『신의 네 여자』는 (찬미받는 듯한) ‘강요된 모성’과의 결별부터 선언하며 시작한다. 

  교회는 ‘모성’에 대하여 어떠했을까? 가톨릭교인이자 작가인 조제프 드 메스트르(1753~1821)는 비우호적(“여성은 일찍이 그 어떤 것도 창조해내지 못했기에 그나마 모성이라도 행사해야 했던 열등한 존재”)이었다.3) 레위기는 성소에 산모(産母)를 접근금지시켰다.4) 임신과 출산은 추악한 것으로 간주되었고, 4세기에 인구증가를 걱정한 교부들은 결혼과 출산장려를 골자로 하는 이우리아법과 파피아법을 폐기해달라고 줄기차게 요구했다.5) 대략 1~14세기 동안 ‘육체관계 없는 결혼’에 대한 환상이 관습으로 존재했다.6) 성 알버트(1225~1274)는 “동정이야말로 신에 대한 절대적이며 순수한 사랑의 표적(表迹)이다”라고 말하였다.7)

  그러다가 저출산으로 인구문제가 생겨나자 어머니를 지나치게 추켜세우지 않으면서 성 아우구스티누스(“모든 남자들이 결혼을 하지 않는다면,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날까? 모든 남자들이 결혼을 하지 않기를!”)8)의 주장을 합리적으로 따르면서, 또 여성으로 하여금 지나친 죄의식을 갖지 않게 하면서 아이를 생산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과제에 봉착했다.9) 1450년 이후에는 독신금지규정이 생겨나더니10) 16세기 말 리옹의 신학자 베네딕트는 “신께서는 작은 새들에게 그러하시듯 아이들에게도 먹을 것과 생계를 보장할 것이니 자녀는 가질 수 있는 만큼 가지라”고 조언했다. 피임과 낙태반대운동이 활발했던 19~20세기에 이르기까지까지, 교회의 무제한출산 장려는 이어졌다.11) 그러는 한편 암브로시우스(340~397)가 남긴 “석녀(石女)들이여 행복할지어다!”12)의 관점도 계속 살아있어, 1902년 가톨릭의 한 사제의 찬양(“진짜 노처녀는 명랑하고 활기차다. 밝은 웃음이 그녀의 입가에서 잘 날이 없으며 여든이 되어도 노래를 한다”)으로 이어지고 있다.13)

  그렇다면, 모성에 대하여 정작 예수와 성서는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복음서 기자들은, 생전에 예수는 어머니 마리아에게 그 무엇도 요구한 적이 없으며, 어머니 마리아에게 아무런 종교적 역할을 부여하지 않았다14)고 기록했다. 누가복음에는 “죽었다가 살아나 저 세상에서 살 자격을 얻는 사람들은 장가드는 일도 없고 시집가는 일도 없다”는 예수의 말이 적혀있다.15) 도마복음은 “한 번도 수태를 겪지 않은 복부는 복될지어다. 한 번도 젖을 물리지 않은 가슴은 복될지어다”라고 적고 있으며,16) 디모데전서에서 바울은, 무거운 원죄 때문에 여성은 어머니가 되어 단정한 생활을 계속해야 구원을 받으리라고 설교한다.17) 창세기는, 여자가 어머니되는 것은 여자에게 명예가 아니라 원죄(여자 자신의 죄)의 결과라고 명시한다.18)   

  신학자들에게 여성은 언제나 남성보다 구원가능성이 희박한 절망적인 존재였다. 아무리 어머니라도 ‘여자는’ 어떤 이상을 구현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졌다.19) 성모 마리아라는 예외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기이한 말이 되겠지만, 교회는 성모를 ‘모성’으로부터 분리해냈다. 엄밀히 말해 성‘모(母)’숭배는 ‘모성’숭배가 아니었고, 마리아의 ‘처녀성’숭배였음을 기억해야 한다. 7세기 그레고리우스 대제는 ‘출산의 순간에도 마리아는 처녀였다’고 주장했던 것이다.20) 두 말할 것도 없이 여성 그 누구도 성모 마리아처럼 할 수 없다.21) 1854년에는, 마리아가 하와의 후예들에게 내려진 저주에서 벗어나 ‘원죄 없이 태어났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12~20세기 동안 로마교회는 줄기차게 마리아의 처녀성을 다듬고 추어올리며 옹호하는데, 그럴 때마다 보통여자들은 점점 더 완벽에서 멀어져갔다. 급기야 1950년, 교황 피우스 12세는 성모승천(최후심판도 받지 않고 곧장 천국으로 거양됨)의 교리를 종교적 진리로 선고하였다.22) 

  기독교는 아주 오랫동안, 오늘날까지도 여자를 별 것 아닌 존재, 부차적이며 열등하고 천한 존재로 여겨왔다. 이는 다른 종교도 마찬가지였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23) 교회는, 역사적으로 볼 때 ‘어머니든 뭐든’ 여성은 무가치하다는 것,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분투해왔다고 생각된다. 성모 마리아는, 더는 여성(〓사람)일 수 없어서, 신이어야 했다. 마리아의 신격화작업을 통해 마리아는 삼위일체의 네 번째 인물이 되어버렸다.24)    


2-2. 열등한 존재, 여자


  예수는 하와에게 씌워진 오명을 벗겨주지는 않으나 그렇다고 하와를 단죄하고자 그녀의 이름을 거론하지도 않았다. 예수는 여자와 남자의 동등성에 대해서는 직접 언급하지 않았다. 예수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으로, 여성과 함께 다니고 여성을 ‘인간으로 간주’했으나 그의 주된 관심사는 남녀관계가 아닌 다른 것(이웃사랑, 하나님나라의 긴급성)이었기에 성문제에 별다른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25)

  예수가 세상에 왔을 당시 유대사회에서의 여자의 지위는 그 틀이 이미 짜여져있었다. 창세기의 기록부터 살펴보도록 하겠다. 

1:27

하느님의 모습대로 사람을 지어내시되 남자와 여자로 지어내시고

2:21~23

야훼 하느님께서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신 다음, 아담의 갈빗대를 하나 뽑고 그 자리를 살로 메우시고는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신 다음, 아담에게 데려오시자 아담은 이렇게 외쳤다. “드디어 나타났구나! 내 뼈에서 나온 뼈요, 내 살에서 나온 살이로구나. 지아비에게서 나왔으니 지어미라고 부르리라!”

  가톨릭교회의 신판 교리문답(1992년)에는 창세기 1장이 실려있다. 그러나 신학자들이 집중적으로 연구했던 것은 ‘여자를 남자의 갈비뼈에서 생겨나게 한’ 창세기 2장이었다. 보쉬에는 여자를 ‘여분(남아도는)의 뼈의 부산물’로 취급하기까지 하였다(17세기). 여자는 하느님의 형상을 본따 만들어진 게 아니라 남자의 형상을 본따, 그것도 남자의 파편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26) 이렇게 부차적 존재로 창조된 여자는 곧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는 대목을 상세하게 풀어쓴 창세기 기자의 노력으로) 죄인이 된다.27)

  “모든 사람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아내의 머리는 남편이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알아두기 바랍니다”28)라고 말한 바울은, 실제로는 반여성주의자가 아니었다. 그는 남자가 그리스도의 영광이듯이 여자가 남자의 영광일 수 있다고까지 말했다. 하지만 그는 모든 것에 합당한 자리가 있기를 원했다. 바울의 사상은 구약성서의 유대전통에서 비롯되었고, 그리스-로마의 세계관을 직접 계승하였다고 할 수 있다.29) 그리스도교가 여자를 폄훼하고 여자를 종교적 신성의 변두리에 두게 된 것은 자연과학의 영향이라기보다는 스토아학파를 비롯한 초기 철학사상의 영향 때문이다.30) 최초의 기독교 철학자 성 아우구스티누스(354~430)의 말을 인용해보겠다.


“남자여! 너는 주인이고, 여자는 너의 노예이다. 신께서 그렇게 원하셨으니, 사라는 아브라함에게 복종하여 그를 주인님이라고 불렀다고 성서에 적혀있다. 그렇다. 너희의 아내는 너희의 종이고, 너희는 아내의 주인이다.”(『강론』, 322)

“여자는 그 성적 역할로 인해, 남자의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다.”(『고백록』, 400)31)


  무지몽매한 교회지도자들은 남성의 동반자를 깎아내리면서 여성의 약점과 어리석음을 멋대로 까발려도 된다고 믿었다. 그 믿음 위에서 여성의 결함목록이 작성되었다.32)

  여성은 육체와 너무나 동일시된 나머지, 영혼도 정신도 없는 동물과 비슷하게 생각되었는데 ‘암호랑이’나 ‘독사,’ ‘탐욕스런 암늑대,’ ‘암말,’ ‘덧없는 파리들’로 불리웠다.33) 심지어는 “남자들이 생식한 새끼들이나 배는 여자들, 남편의 완벽하고 순수한 정액을 담는 봉지 같은 여자들”이라는 표현이 1433년 피렌체의 출산장려법률에 사용되었을 정도다.34) 여성은 천성이 수다스럽고 끊임없이 거짓말을 한다고 인식되었으며, 모든 여자들을 하와로 간주하여 경솔하고 신의가 없다는 식으로 파악되었다.35) 활동적이고 성공한 수녀들조차 자주적 행동을 할 때마다 제지당했다.36)

  성 히에로니무스(345?~419?)는 월경혈을 불결한 피로 보았고, 이시도루스(560?~636?)는 어원연구에서, 월경을 ‘달(月)’에서 유래한 것으로 설명하며, 여자가 달의 여신과 관계있을지 모른다고 보면서 다신교(이단)과 관계있다는 설(設)을 세웠다.37) 박물학자 플린느는 독이 든 월경이 있다는 풍문을 퍼뜨렸고(1세기), 17세기의 시인이자 아카데미 프랑세즈의 회원이었던 프랑스와 메나르는, 여자의 호흡에는 고약한 악취와 독이 있어 고양이에게 재채기를 유발시킨다고 했다.38) 플로렌스의 대주교였던 안토니우스(성 도미니크회 수도사)는 1446~1459년, 알파벳 하나에다가 여성에 대한 정의 하나씩을 붙여 기소장을 만들었다. A: avidum animal(탐욕의 동물), B: bestiale baratrum(야만의 구렁텅이), C: concupiscentia carnis(정욕에 사로잡힌 육체) 등….39)

  또, 교회는 결혼관계의 불평등을 방조하였다. 여성에게 호의적이었던 디온 크리소스토모스는 “신께서 한 사람에게 권위를 주고 다른 사람에게 복종을 주신 것은 평화를 위해서다. 평등이 있는 곳에서 평화를 찾아봤자 헛일이다(4세기)”라고 말하였다.40) 교회는 아내에 대한 남편의 폭력을 허용하고(1847년),41) 12세기 무렵 추기경 호스티엔시스의 주장(“법이 뭐라고 하든 아버지가 원하는 것을 딸이 동의하지 않으면 딸은 배은망덕하다는 비난을 면할 수 없다.”)을 이어받아, 19세기까지 교회는 수많은 강제결혼에 눈감아버렸다.42) 

  그러나 어느 시대에서고, 최악의 반여권주의 시대에서조차, 성직자들의 견해와 세론(世論)은 구별할 필요가 있다. 성직자들이 행사한 이데올로기의 힘이 막강했던 것이 사실이지만, 그들의 명제가 항상 신뢰받았다고 해서, 그들의 가르침이 반드시 준수되었다고 할 만한 근거는 전혀 없다. 여자를 부정하는 사람들 앞에 장애물이 있었으니, 그것은 여자의 아름다움이었고 시인들은 이 미적 가치를 수세기에 걸쳐 노래해왔던 것이다.43) 그래서 대중들이, 여자에 대한 서로 상반되는 여러 가지 이미지들로 인해 혼란과 분열을 겪고 있었다고 할 만한 측면들이 대단히 많다.44) 그러나, 성직자들이 만들어낸 부정적인 이미지, 여성혐오주의는 사방에 침투해있어서, 16세기의 시인들 특히 프랑스의 칠성시파 시인들45)의 작품에 나오는 여성들은 아름답고 긍정적이면서도, 어딘가 부정적인 메시지를 같이 갖고 있었다.46)

              

3. 여자, 교회를 버리다(pp.413~468)


3-1. 여자에 대해 기독교는 다른 종교와 마찬가지였다


  유대교는 여성에게 극도로 냉담하다. 그러나 현재 유대인 여성들은 여러 나라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일률의 모델을 말하기 어렵다. 금지의 내용도 다르다. 유대교 교리와 실제적인 삶에서 준수되는 관행 사이에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데, 이는 가톨릭도 마찬가지다.47) 또 다른 유일신교인 이슬람에서 여성은 열등한 존재라기보다는 연약한 존재로서, 보호의 대상이 된다.48) 불교는, 싯다르타(B.C.563~483) 즉 부처님 자신도 여자가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까지 오랜 세월을 망설였는데, 그나마도 그 결정을 후회했던 것으로 보인다.49) 힌두교는 다른 종교와 마찬가지로 여성을 근본적으로 사악한 존재라고 믿었는데 마누법전은 ‘여성의 허리띠 위쪽에 있는 구멍들은 깨끗하고 그 아래쪽에 있는 구멍들은 더럽다는 것’을 강조한다. 유교는 여성을 하찮고 쓸모없는 존재로 취급했고 언제나 어버지와 남편의 예속 하에 두었으며 일부다처제를 용인했다. 공자가 태어날 무렵에 씌어진 짧은 중국 시 한 편(“사내아이 태어났네, 금과 옥으로 치장하세 계집아이 태어났네, 돌멩이나 갖고 놀게 하세.”)은 그 증거물의 하나다.50)

  이렇듯, “여자는 열등하다”라는 보편적으로 공유되는 생각의 진원지는 도대체 어디일까? 남자와 여자의 차이, 상대적인 위계의 기원은 우선 성적이형(性的二形)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시몬느 드 보봐르도 차별이어서는 안되나, 생물학적 차이(여성이 더 적고, 불안정하고 등등)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였다.51) 그러다가 설득력있는 생물학적 결정인자52)가, 대부분의 문명에서 확인된 여성의 소외현상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게 되자 사람들은 역사학자에게 새로운 설명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허나 남녀종속의 문제는 까마득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자료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여성종속의 역사를 꾸며내었는지도 모른다.53)  

  여성이 겪는 법률적 차별은 부분적으로 여성의 육체적 불리함에 기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여성에 대한 증오, 남성이 항상 여성에 대해 느끼는 두려움은 꼭 그것에만 기인하지 않는다. 여성에 대한 남성의 공포심은 거세공포만을 강조했던 프로이트가 본 것보다 훨씬 다양한 근원을 가지고 있다. 월경 때의 출혈, 임신의 신비, 비록 남자에게 종속되어있을망정 집안의 음식을 조리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독살할 수 있다는 사실 등등은, 여성을 마술적 존재로 부각시키면서 생명을 좌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무서운 힘을 지닌 존재로 느껴지게 했다. 여성에 대한 남성의 무한한 공포심이, 이 지구상의 모든 곳에서 여성의 자유와 성, 그리고 여성의 인격과 여성의 유해성을 억누르고 유폐하려 애썼다는 역사적 사실을 보다 잘 설명해준다.54) 


3-2. 기독교여성들의 소외상태는 점차 개선되어간다 


  모든 철학 그리고 실제적으로 모든 종교와 옛윤리들은 여성이 열등한 존재라고 주장해왔다. 가톨릭교회도 마찬가지다. 교회는 기독교여성들의 평가절하를 극단으로 끌고 갔다. 육체적인 측면에서 기독교는 여성에게 관대했고 보호자적 태도를 취했다. 베일착용, 전족, 음핵절제 등을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러나, 교회는 정신적으로 여성에 대해서 더 가혹했다.55) 교회는 여성을 감시하고, 교양과 오락을 멀리하게 하고, 성생활을 정기적으로 심문(고해성사)하고, 생식능력을 감독하고, 모든 독립성을 부인하고, 심지어는 신의 영감을 받은 경우에도 (여성의 능력 밖에 있는 것으로 간주하여) 금지하려 했다. 그리하여 교회는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여성이 교회의 속박과 거만한 태도(피임을 방해하고 낙태를 반대하며, 여성사제임명을 거부하는 태도 등)를 참아내지 않기 때문이다.56) 이제 유럽 전체가 배교(背敎)의 상황, 다시 말해 신앙포기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57)

  그러나, 점차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1965년) 이후 변화의 움직임은 뚜렷하게 감지될 정도(전례의식과 미사 때 쓰이는 언어의 변화, 더 빈번하고 직접적인 예수의 말씀 인용, 고해성사의 단순화, 남녀평신도 모두 제단에서 성서를 읽을 수 있도록 허용함 등)다. 여성이 부제(副祭)에 임명되거나, 바티칸공의회 방청관으로 임명되었다(1964년).58)

  교회는 이 지상에 나타나, 지배했으며, 무수한 잘못을 저질렀고, 그리고 이제는 쇠약해져가고 있다. 교회는 사멸할 것인가? 그것은 신자들 혹은 여기 남아있는 사람들이 결정할 문제이다.59)


4. 닫는말


  “예수는 왕국(하느님나라)을 예언했지만 기실 모습을 드러낸 것은 교회였다.” 1902년 뛰어난 성서학자였던 파리 가톨릭신학원 교수 알프레드 르와지의 말이다. 1908년 그는 파문당했다.60) 기 베슈텔은 교회가 여성들에 의해 버림받으리라고, ‘무엇인가’가 막을 내릴 것이라고 예견한다. 이 ‘무엇인가’는 정작 ‘무엇이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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