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만의 나라
샬롯 퍼킨스 길먼 지음, 손영미 옮김 / 한국문화사 / 2002년 9월
평점 :
절판


<여자만의 나라>는 페미니즘 유토피아 소설의 고전이다. 토마스 모어 경이 자신의 소설 <유토피아(1516)>에서 쓴 ‘유토피아’라는 말은 그리스어의 아니다(οu')와 장소(τóπos―topos)를 합성해 만든 것으로 ‘아무 데도 없는(nowhere)’이라는 의미였다. 따라서, 어쩌면 여자만 사는 나라, 그런 곳은 아직은 ‘아무 데도 없는’지도 모르겠다.


전쟁과 지진, 화산폭발로 남자들이 다 죽고, 여자들만 살아가던 한 나라에서 한 여자가 아기를 낳았다. 나라 전체를 다 뒤졌지만 (생식‘사건’에 참여한) 남자는 한 사람도 없었다. 결국 여자들은, 그 아기를 신이 보낸 선물이라 결론내리고, 그 축복받은 엄마를 신전에 모셨다. 그 엄마는 이 신전에서 딸을 내리, 다섯 낳았다. 그 다섯 딸들은 스물다섯 살이 되자 또 아기를 낳았다. 각각 다섯씩 낳았다. 이렇게 하여 그 나라에 스물다섯 명의 새로운 여성들이 생겨났다. ‘처녀생식’은 여자만의 나라에서 계속 이어졌다.


여자만의 나라 백성들은 온 나라가 일사불란하게 ‘최고의 환경’을 추구한다. 고양이는 쥐나 두더지 등 해로운 동물만 잡을 뿐, 새를 잡지 않는다. 여자만의 나라에 사는 고양이는 품종개량된 고양이이며 다들 건강하다. 우유(소젖)는 송아지에게만 먹이고, 어머니의 젖은 아기들에게 먹인다. 인구가 점점 늘어나자 여자만의 나라에 사는 초식동물들은 모두 제거되었고, 숲의 나무들은 모두 과일나무로 대체되었다. 처녀생식의 결과 30년마다 인구가 다섯 배로 늘어나자 여자들은 출산제한을 위한 회의를 열었다. 그 회의의 결정사항은 이런 것이었다. “우리는 이만큼의 국민만 만.들.어.내.겠.다.” 이후 어떤 여자들은 나라를 위해 아이 낳는 걸 포기하였다.   


여자만의 나라에서는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게 사람됨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데, 이들에게는 소위 ‘여자다운’ 구석이 없다. 남자들의 선호를 반영하는 ‘여자다움’ 말이다.


이러한 여자만의 나라는 이방인 남자들 세 명(밴, 테리, 제프)에 의해 관찰된다. 세 명의 남자들과 여자만의 나라 사람들의 토론은 참으로 흥미롭다. 개, 임신중절, 종교 등, 그들은 사회 모든 분야를 토론주제로 삼는다. 종교에 관하여 토론하는 중에 영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대목을 인용해보겠다.


  “그건, 영원히 끝나지 않는 거에요.”

  그러자 그녀(엘라도어)가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영원히 안 끝나는 거라구요?”

  “네, 영원한 생명이죠.”

  “아, 그건 우리도 물론 알아요. 어디를 둘러봐도 삶은 계속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기독교의 영생은 죽지 않고 계속 산다는 뜻이죠.:

  “한 사람이요?”

  “그래요. 같은 사람이 죽지 않고 계속 사는 겁니다. (중략) 당신은 영원히 행복하게 살고 싶지 않아요?”

  “난 후손들이 영원히 대를 이어가기를 바라지만 내가 계속 살기를 바라진 않아요.”(182-184쪽)


샬롯 퍼킨스 길먼(Charotte Perkins Gilman, 1860~1935)은 미국 코네티컷 주의 하트포드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아버지는 보스턴 공립도서관장을 역임한 학자요 유명한 신학자였으나 샬롯의 출생 직후 가출하였다. 샬롯은 성장하여 미술교사와 보모로 일하며 집안을 이끌었는데, 스물다섯 살에 동료화가인 월터 스텟슨과 결혼해서 딸 캐더린을 낳았다. 그러나 산후우울증을 심하게 겪으며, 자신이 전통적 의미의 혼인생활이나 육아에 걸맞지 않음을 깨닫고는 이혼했다. 그녀의, 이러한 특별한 인생역사가 <여자만의 나라>를 구상하게 하였을지도 모르겠다.   


<여자만의 나라>는, 지금 여자들로 하여금 ‘여자 남자 같이 사는 우리들의 나라’가 혹시 ‘남자만의 나라’는 아닌가 하는 의문을 떠올리게 할 것이다. 여자만의 나라, 여자 중심의 나라는 ‘아무 데도 없는’ 나라인 데 반해서 ‘남자만의 나라, 남자중심의 나라’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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