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만의 방 버지니아 울프 전집 3
버지니아 울프 지음, 오진숙 옮김 / 솔출판사 / 2004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자기만의 방’이라는 단어는, 굳이 울프의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한두 번쯤은 들어보고 말해봤음직한 단어다. 울프는 책의 서두에서 “저녁식사를 잘하지 못하면 사색을 잘할 수 없고, 사랑도 잘할 수 없으며, 잠도 잘 오지 않습니다”라고 털어놓는다. 여기서 잘하는 저녁식사란 ‘정성어린 손맛’보다는 식탁을 잘 차려낼 수 있는 능력, 즉 돈과 직접 결부되어있다.

울프는 중세 때 설립된 남자대학과 19세기 말에 세워진 여자대학의 설립기금 모금속도(또는 난이도)와 식탁을 비교하며 돈의 중요성을 언급한다. 남자대학은 대학설립기금을 여자대학보다 훨씬 빠르고 쉽게 모았으며, 남자대학의 오찬은 여자대학의 정찬보다 훨씬 다양하고 영양가있는 음식들로 구성되어있다. 이제 <자기만의 방>은 본격으로 이야기의 풀어나간다. 돈, 그리고 자기만의 방에 대해서.

울프는, 여성이 픽션을 쓰기 위해서는 돈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녀는 중산층 이상 출신 여성(에이프러 벤, 도로시 오스본 등)의 작품들과 조지 엘리어트, 에밀리 브론테, 제인 오스틴의 작품들을 언급(비평)한다. 그러면서 목소리를 높인다. 여성이 픽션을 쓴다는 것은 여성의 능력이 발휘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울프는, 글을 쓰는 사람이 자신의 성(性)을 염두에 두면 필연적으로 살아남지 못한다고 단언한다. 창조적 예술이 이루어지는 곳은 여성과 남성을 ‘넘어서는(내지는 결합하는)’ 지점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여성이 픽션을 쓴다는 것은, 여성이 여성(의 역할)으로 사는 게 아니라 인간답게 사는 것을 의미한다.

<자기만의 방>에서는 연간 500파운드와 자기만의 방이 줄곧 강조된다. 그런데, <자기만의 방>이 여성들에게 힘주어 말하는 것은 ‘인생목표 : 연간 500파운드, 자기만의 방’뿐인가? 그렇지 않다.

“나의 마음 속을 샅샅이 뒤져보아도 나는 남성의 동료라든가 남성과 대등한 사람이 되고자 하는 고귀한 감정을 찾을 수 없고 더 높은 목적을 위해 세상에 영향을 주고자 하는 생각도 없습니다. 나는 그저 다른 무엇이 아니라 자기자신이 되는 것이 훨씬 중요한 일이라고, 간결하게 그리고 평범하게 중얼거리고 있을 뿐입니다.”

울프는, 셰익스피어에게 ‘주디스’라는 누이가 있었더라면 어떠했을까를 상상한다. 울프의 상상 속에서 주디스는 젊어서 죽었고, 슬프게도 글 한 줄 쓰지 못했다. 그리고 마침내는 코끼리 동물원 맞은편 버스정류장에 묻혔다.

그러나 울프는, 그 교차로에 묻힌 주디스가 아직도 살아있다고 선언한다. 주디스는 여성들 속에, 울프 자신 속에, 오늘밤 그릇을 설거지하고 아이들을 잠재우느라 바쁜 여성들 속에 살아있다고 증언한다.

“그녀는 살아있지요. 위대한 시인들은 죽지 않으니까요. 그들은 계속 현존하는 존재들입니다. 그들은 우리들 속으로 걸어들어와 육체를 갖게 될 기회를 필요로 할 뿐입니다.”

그런데 주디스는 우리 여성들의 결단(여성이 자신의 시를 쓸 수 있는 세상을 만들겠다)이 없이는 출현하지 않는다. “주디스는 분명히 오지만, 거저 오지는 않는다.” 이것이 <자기만의 방>이 뿜어내고 있는 열정이자, 결론이다. 그리고 그 결론은 울프가 살았던 20세기의 것이기도 하고, 지금 21세기의 것이기도 하다. 우리도 여전히 주디스 출현을 기다리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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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5-12-20 0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버지니아 울프 전집 눈여겨 보고 있는데, 좋은 리뷰네요.
사실, 대학교때 읽었을때와 얼마나 다른 느낌일까 겁나서 못 읽고 있었어요.
땡스투 눌러드리고 갑니다.

균형 2005-12-22 0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