캣캣캣 - 젊은 작가 11인의 테마 소설집 현대문학 테마 소설집 2
태기수 외 지음 / 현대문학 / 2010년 4월
품절


"연애는 원래 피곤한 거야! 몸과 마음이 다 상대방에게로 기울어지는 게 연애니까! 온종일 기울어져 있는데, 까딱하면 중심을 잃고 흔들리는데, 피곤하지 않고 배겨? 피곤한 게 연애야. 편해지는 그 순간 연인 관계는 끝이라고! 그러니까 제발 좀 피곤해줘. 피곤하지 않으려면 평생 벽 보고 혼자 살란 말이야!"
"아니 내 말은."
"내 말은 뭐! 그렇게 정 편하고 싶으면 저기 저 담벼락을 걸어가는 길고양이한테나 가서 우리 이제 좀 편하게 지내요, 하고 말하라고!"-191쪽

세상 어디에도, 함께 살던 고양이가 싫어졌다고 해서 고양이에게 "헤어지자"고 말하는 여자는 없다. 그리고 함께 살던 여자가 등을 돌리고 누운 채로 "어디로 갈 거야?"라고 물었대서, "응, 일단 음식물 쓰레기통을 좀 찾아봐야겠지. 앞으론 내 입맛에 맞는 사료 따위, 쉽게 맛볼 수 없을 테니까" 하고 대꾸할 고양이도 없을 것이다.-192쪽

"돌고래는 인간보다 적어도 열여섯 배나 더 빨리, 자신의 메시지를 상대에게 전달할 수 있다는 거야."
"물속에서도?"
"응, 물속에서도."
"그럼, 나중에 내가 SOS를 치면 적어도 다른 사람보다 열여섯 배는 빨리, 구하러 와야 돼. 응?"
"어, 지금 날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돌고래."
"……."
수다의 끝에서는, 돌고래가 되기도 했던 것이다. 연애란 그런 것. 돌고래보다 적어도 열여섯 배는 더 느리게, 메시지를 상대에게 전달할 수밖에 없는 현실일지언정 결국 돌고래가 될 수밖에는 없는 것이다.-199쪽

한 여자와 오랜 연애를 한 남자라면, 아마도 공감하리라고 보는데, 자신이 지녀왔던 원래의 ‘것’들이 아주 천천히, 흐무러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것’이라는 건 일종의 ‘무엇’과 같은 의미로, 가령, 내가 무언가 ‘이것만은’이라고 여기거나 행동해왔던 것들이 ‘이것쯤이야’ 정도는 아니더라고, 적어도 ‘아무려면 어때’ 싶은 정도까진 내려가게 되는 것이다. 여자가 내게 "하여튼 많이 수다스러워졌어"라고 말을 해도 그것이 불쾌하다기보다는, ‘아무려면 어때’ 하고 생각해버리고 마는 것. 열패감이 아닌 안도감이 느껴지는 순간, 오랜 연인에게 길들여져 너무도 유연하고 온유해진 자신을 발견한다.-200쪽

그러나 이별하는 삶도, 이별하지 않는 삶도 불행하긴 매한가지일 것이다. 사랑하는 삶과 사랑하지 않는 삶이 똑같이 외로운 것처럼.-208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