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으로 드나드는 남자
마르셀 에메 지음, 이세욱 옮김 / 문학동네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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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셀, 20세기 유쾌한 이야기꾼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는 5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소설집이다. 이야기는 전체적으로 유쾌하면서도 일상의 삶을 파고들고 있다. 일상에서 일어날만한 판타지는 마치 소설이 아니라 즐거운 동화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여러 개의 단편 중,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와 <칠십 리의 장화>를 말해볼까 한다. 마르셀이 얼마나 재치있는 이야기꾼인지 책을 통해 만나봤으면 좋겠다. 두 편의 이야기 외에 나머지 이야기도 재미 있기 때문이다. 특히 <생존 시간 카드>는 감탄하면서 읽었다. 이야기 자체가 기발했기 때문이다. 20세기에 이러한 상상을 한 마르셀이 신기하다.

  까탈스러운 상사를 두고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골탕을 먹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가 된 뒤티유욀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가 자신에게 벽으로 드나드는 능력이 있다는 사실은 43세 때 알았다. 그는 이 병을 고치고 싶었기 때문에 의사에게 쌀가루와 켄타우루스 호르몬의 혼합물인 혼합물인 4가(四價) 피렌트 분(粉) 정제를 일년에 두 알씩 먹으라고 처방 (p16) 받았다. 하지만 한 알을 먹고 새까맣게 잊었다. 몸을 혹사시키라는 처방도 공무원인 직업 특성상 할 수 없었다. 뒤티유욀에게 고약한 상사가 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는 우연히 상사를 골탕먹이게 되었고, 상사는 정신병원에 실려가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능력을 도둑질, 교도소 탈출 등에 쓰더니 급기야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는 데까지 쓴다. 평범하기 그지 없던 뒤티유욀의 삶에 특별한 행복이 찾아오는 듯 했다. 그 이튿날 뒤티유욀은 격심한 두통에 시달렸다. 그는 그것을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고 그깟 일로 그녀와의 약속을 저버리지는 않을 생각이었다. 그러다가 그는 우연히 서랍 속에 흩어져 있는 알약들을 발견했다. 그는 그 알약들을 아스피린으로 생각하고 아침에 한 알 오후에 한 알을 먹었다. 저녁이 되자 두통은 그럭저럭 견딜 만했다. 게다가 마음이 들떠서 그는 아픈 것도 잊어버렸다. 젊은 여인은 어서 밤이 오기를 바라면서 초조하게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간밤의 추억이 그녀의 마음에 사무치는 그리움을 심어준 거였다. 그들은 그날 밤 새벽 세시까지 사랑을 나누었다. (p33) ​행복은 달아났다. 그러나 뒤티유욀은 특별해졌다. 그 특별함이 무조건 좋은 것만은 아니다. 어떻게 특별해졌는지 이야기를 한다면, 이 이야기의 재미가 떨어지기 때문에 말을 아끼도록 하겠다.

  <칠십 리 장화>에서는 마음을 파고드는 문장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가 재미에 비중을 둔 이야기라면 <칠십 리 장화>는 삶을 보다 파고드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가난한 앙투안은 가난함에 대해서 크게 자각하지 못하고 살았다. 하지만 칠십 리나 갈 수 있는 장화를 만나고 그 장화 때문에 다치게 되면서 앙투안은 자신의 처지에 대해 알기 시작했다. 절망의 순간에서도 앙투앙은 나름대로 이겨내려고 노력했지만, 생각보다 잘 되지는 않았다.

  침대가 이웃해 있는 앙투안과 위슈맹은 노댕이 나간 뒤에도 일 주일이나 더 병원에 머물렀다. 새로 입원한 환자들과 따로 놀게 되면서 두 아이는 더욱 친해졌다. 하지만 그 친밀함이 앙투안에게는 종종 매우 고통스러운 시련을 안겨주었다.

  그 한 주일 동안에도 앙투안은 가난 때문에 괴로움을 겪을 일이 많았다. 자기 자신의 삶에서는 털어놓고 이야기할 만한 것을 찾을 수가 없었기에 위슈맹의 비밀 이야기를 들어도 한두 마디 토를 달 뿐 그에 상응하는 이야기를 해줄 수가 없었다. 고백할 만한 속내 이야기가 없어서 그저 남의 얘기를 듣기만 해야 하는 신세만큼 처량한 것도 없다. (p141~2) ​​또한 여기서 앙투안의 시련은 멈추지 않는다. 앙투안은 자신의 가난을 감추기 위해서 또 자신을 위해서 미국에 있다는 삼촌, 가상인물 '빅토르'를 만들어냈다. 빅토르 삼촌은 앙투안에게 힘을 주기도 하고, 위축시키기도 했다. 양심을 찌르는 바늘은 점점 닳아 무뎌지고 앙투안은 스스로도 빅토르 삼촌이 있다고 믿기 시작했다. 앙투안에게 빅토르 삼촌은 빛이기도 하고 어둠이기도 했다. 순수하고 엄마에게 감추는 것이 없던 앙투안은 빅토르 삼촌때문에 '처음'을 여러 개 경험했다. 앙투안의 심리변화는 사람이 어린아이에서 어른이 되는 과정이 어떠한지를 보여주고 있다. 

  옮긴이의 말도 간단명료하고 흥미롭다. 번역도 좋았다. 각주나 가독성 등에 세심하게 신경 쓴 게 느껴졌다고 할까. 마르셀의 일생과 작품세계를 간략하게 파악할 수도 있었다. 뭐하나 빼먹을 게 없는 작품이었다 . 유쾌하면서도 삶을 파고드는 이야기 꾼, 마르셀. 그의 작품을 탐구하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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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기초 : 한 남자 사랑의 기초
알랭 드 보통 지음, 우달임 옮김 / 톨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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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결혼을 꿈꾸는 당신에게

 

  결혼은 사랑의 결실이다. 하지만 다른 말로 인생의 새로운 출발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여태껏 살아왔던 방식에서 벗어나 상대방의 삶의 방식과 발맞춰 살아가야 한다. 여기 결혼으로 수많은 고민에 휩싸여 있는 남자가 있다. 그의 이름은 벤이다. 벤은 두 번의 사랑을 거쳐서 지금의 아내인 엘로이즈를 만났다.

  그와 그녀는 남들처럼 아름다운 사랑을 했다. 그 결실로 결혼했고 런던 북부 근교에서 두 아이와 보금자리를 꾸렸다. 세월은 흘렀고 두 사람의 관계는 애매해졌다. 소원하다고 하기엔 벤이 엘로이즈에게 사랑이 있었고 좋다고 하기엔 두 사람만의 교감이 줄어들었다. 이 사이에서 벤의 고민이 시작된다.

  사회적 관계의 모순 중 하나는, 우리가 사랑한다고 주장하는 이들보다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들에게 결국은 훨씬 더 잘해주게 된다는 사실이다.(<사랑의 기초> p42~43)

  결혼 생활을 하면서 두 사람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맞춰야 했다. 여름휴가를 보내는 방법에서부터 집을 관리하는 일, 길거리에서 길을 묻는 일…. 그들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사소한 일들이 결혼이라는 이름 아래에 자신들을 이토록 힘들게 할지 몰랐을 것이다. 두 사람은 결혼이라는 단어 아래에서 교육자가 되어야 했고, 모든 것을 이해하는 부모가 되어야 했고, 마음대로 사랑을 할 수도 없었다.

   벤은 결혼의 제도 아래서 자신이 불행하다고 느꼈다. 하지만 결혼이라는 끈은 놓지 않았다. 그가 자신이 꿈꿔왔던 이상적인 결혼 생활을 위해서 인생 대부분을 참고 있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인생보다는 아이, 가정을 먼저 생각한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그의 이러한 생각은 훗날 베키라는 25살의 젊은 여자와 아침을 맞이한 날까지 이어졌다.

   이런 벤의 모습을 보며 그가 결혼이라는 단어에서 자유로워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단순히 그가 바람을 피웠다고 그만두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다. 작은 행복을 느끼고 있지만, 그것마저 벤의 최면을 걸고 있는 듯했다.

   벤은 자신이 이러한 소소한 행복을 느껴야만 가정이 지켜진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라는 존재를 희생하면서 가정을 지키고 있었다. 그 모습이 힘겨워 보였고 연민이 느껴졌다. 한편으로는 한심했다. 자신의 인생을 제대로 찾을 시도조차 하지 않은 채 가정에 매달린 그의 모습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나의 '제도'였던 결혼이 '느낌에 헌신하는 것'으로 바뀌었다.(p143)

   책에서 결혼은 제도를 넘어서 정서적 교감과도 얽혀 있다고 말했다. 그제야 결혼 제도에 대한 생각이 치기라고 느껴졌다. 결혼이라는 단어는 삶에서 많이 접했지만, 결혼을 직접 겪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벤의 이중적인 모습을 이해하지도 공감하지도 못했다. 하지만 그의 삶을 통해 결혼과 간접적인 만남을 하고 그의 몸부림에 응원을 보내주고 싶었다.

   누구나 자신만의 이상적인 결혼관을 가지고 있다. 두루뭉술하게 세운 사람부터 촘촘하게 계획을 짠 사람들까지. 각자의 결혼관이 완벽히 일치한 상대방을 찾기란 하늘에 별 따기보다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상대방의 생각을 존중하고 맞추려고 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러한 의미에서 결혼에 대한 환상을 품은 사람들, 혹은 그 환상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알랭 드 보통이 '사랑의 기초, 한 남자'라는 이야기를 해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2012년 6월 4일자, 오마이뉴스-책동네에 실렸던 글입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39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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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있으면 나 좀 좋아해줘 - 제18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홍희정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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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의 고요한 외침

 

 

  사랑하고 사랑받는 건 몇 살을 먹어도 좋은 법이야. (p26)

  이레의 할머니가 한 말이다. 사랑은 전 세대에서 열광하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이다. 누구나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을 꿈꾼다.

  순수하게 사랑할 수 있는 마지노선, 20대. 조건을 고려하지 않고 사람만 보고 사람만 좋아서 연애 할 수 있는 가장 자유로운 연애시대다. 고등학교 때, 대학교 가면 다 남자친구가 생긴다는 말은 그냥 나온 게 아니었다. 사랑하는 사람의 눈만 마주쳐도 좋은 시절, 그 시절이 20대이다. 스물여섯 소녀, 이레도 율의 목뼈를 어루만져줄 만큼 미련한 사랑을 하고 있다. 10대부터 이어져 온 사랑은 시작도 끝도 맺지 못한 채, 20대가 되어서도 짝사랑을 하고 있다. 이레는 짝사랑에 지친 나머지 오만한 생각을 했다. 사랑이란 감정은 새파랗게 젊을 때 다 소모해버리고 싶어 했다. 그녀가 생각하는 노년이란 내면의 피부가 아주 두꺼워서 무슨 일을 겪어도 흔들리지 않고 초연한 상태라고 생각했다. 흔들리고 싶지 않은 마음, 청춘들이 품고 있는 마음이었다.

  젊은 시절에 부딪히고 싸워봐야 한다는 어른들의 말이 꼰대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기성세대와 젊은이의 세대가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성세대들은 안정된 사회에서 태어나 대학만 졸업해도 정년이 보장되는 기업에 들어가기 쉬웠다. 할 일이 없거나 성적이 좋지 않아서 학교 선생님을 했다는 시절을 보낸 기성세대가 조언을 한다고 해서 토익 점수, 각종 자격증과 매년 몇 천대 일을 뚫어야 하는 젊은 세대들에게는 배부른 소리였다. 그들의 권위적인 사고방식은 제도 속 깊숙이 침투되어 있고 젊은 세대들이 침묵을 할 수 밖에 없는 구조를 만들었다. 필자는 중간고사와 기말고사가 이러한 점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대학생들의 시선을 분산시키고 무한한 경쟁시대에 내몰고 있는 근본적인 시스템구조이다. 이러한 시스템 구조 속에서 이레는 취업준비생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율의 엄마가 꾸려나가던 ‘개미슈퍼’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핑계로 율을 만나러 갔다. 율은 엄마와 여행을 떠날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서 엄마가 투쟁하고 있는 대형마트에 취직을 했다. 젊은시절에는 착취를 당할 수밖에 없는 구조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는 기계처럼 무한히 ‘간장 사세요’를 반복한다. 이레는 속으로 ‘나 좀 봐 줘’를 반복한다. 두 사람은 근본적인 욕망을 추구하면서 그 욕망을 가지기 위한 적극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 이는 젊은 세대들이 기성세대에게 사회적 시스템이 개인의 삶 속 깊숙이 잘 길러져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사람은 원하는 것으로부터 자기를 지킬 줄 알아야 돼.’ 대형마트를 보며 율과 이레가 나눴던 대화 중 한 마디를 들고 왔다. 율의 대화를 보면 사람은 끊임없이 투쟁을 해야 하는 것처럼 보인다. 원하는 것이지만 원하는 것에 매도가 되지 않기 위해서 자신을 지켜야 하고, 그 속에서 원하지 않는 것이 자신의 삶에 침투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전형적인 젊은 세대의 겁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이레는 율보다 더 소극적이다. 항상 ‘준비’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다. 실패를 극도로 두려워하고 있다. 그녀의 성향은 들어주는 아르바이트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아무 말 없이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위안을 얻는 사람이 있다는 건 세상에 자신의 근본적인 욕망과 추구하는 무언가를 위해 행동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가 될 수 있다. 근본적인 욕망과 추구하는 무언가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음에도 사람들은 소통이 부족해 오랫동안 그것을 끌어안고 혼자 끙끙 앓고 있는 것이다. 고질적인 소통의 부재는 전 세대를 막론하고 만연하다. 일방적인 통보, 그 통보를 받아들이는 사람들. 그 속에서 젊은 세대는 최대한 상대방의 비위를 맞춰가며 실패를 두려워하게 되었다.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배고픔을 모르듯 대부분의 기성세대들이 젊은 날의 두려움을 모른다. 그들이 무심코 내뱉은 말들은 실패를 혹은 실패와 비슷한 그 무언가를 두려워하는 젊은이들에게 큰 상처가 될 수 있다. 젊은 세대는 시간이 갈수록 소극적이게 되었다. 스피치, 자기 PR의 시대라고 하지만 정해진 규정대로 정해진 단어만 내뱉는 사람이 되어 자신만의 색깔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칸트(이 책의 등장인물)는 이레와 함께 간 미술관에서 중요한 말을 했다. “결국, 우리는 넘어진 곳에서만 일어날 수 있으니까요.” 젊은이들은 일어날 기회를 얻기 위해 넘어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남들만큼만 가고 싶다는 생각은 획일적이고 따분한 일상들을 배열해놓게 만든다. 가장 빠르고 쉬운 소비로서 자신의 삶을 특별하게 만들어보고 싶어 하지만 소비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한정판이라고 하지만 전 세계에 일정한 개수가 있는 것이다. 그 어떤 것도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대상은 없다. 자신만이 자신을 위해 존재할 수 있을 뿐이다. 이러한 것을 간과하고 있는 이레와 율의 삶에서 전환점이 온 것은 율과 율의 어머니가 적과 적으로 만난 장면이다. 대형마트에서 일을 하고 있는 아들과 대형마트를 반대하기 위해 거리로 나선 어머니는 서로 마주보면서 어떠한 생각들을 무수히도 많이 했을까. 어쩌면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율은 우연하게도 넘어진 곳으로 돌아갈 기회를 얻었다. 어린 시절 뺨을 맞은 자신과 이를 외면한 어머니가 서 있던 장소. 그 장소로 돌아가 이레를 호출한다. 호출 받은 이레는 카프카 책을 가방에 넣고 아마도 긴 여행이 될지도 모르는 여행을 시작한다. 호출을 받은 이레도 넘어지려고 할까.

  이 책은 젊은 세대(일부 기성세대도 포함)들이 갖고 있는 상황들을 무심하게 찌르고 있다. 무심하게 찔린 젊은이 한 명은 무분별하게 자신의 삶과 연관되어 있는 문제들을 종이에 일정한 규칙과 정리없이 마구잡이로 배열하고 있다. 종이 안에서의 흔들림조차도 겨우 용기를 내어 적는 젊은이는 학교에 붙어있는 ‘안녕들 하십니까?’를 보면서 다른 방식의 일방적 소통이 시작되고 있음을 느낀다. 젊은 세대도 일방적 소통을 시도하는 것일까.

  『시간 있으면 나 좀 좋아해줘』. 제목만 놓고 보면 소심하지만 발칙한 요구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사랑, 근본적인 욕망 뒤에 무수히도 연결되어 있는 부수적인 욕망들 속에서 우리는 그리고 나는 무엇을 걸러내고 무엇을 생각해야하며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할 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 근본적인 욕망만을 추구하기에는 사회와 사람들이 바라는 무수한 것들을 외면해야 하고 부수적인 욕망을 추구하기에는 나라는 존재가 사라지는 것만 같다. 잔잔하지만 치열한 고민 속에서 내가 바라는 사회에 들어가기 위해 끊임없이 투쟁하고 있다.

 

 

 

*이 글은 2013년 12월 20일에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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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더 케빈 - 제2회 문학동네 대학소설상 수상작
김수연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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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브라더 케빈

 

  '최근 청소년들이 즐기거나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여기저기서 열리고 있다. 오는 11월 9일에 열리는 청소년 비전 박람회도 그 중 하나다. (중략) 청소년 비전 박람회는 자신의 적성 검사를 하고 자신이 원하는 직업체험부스를 즐기면서 꿈을 넓힐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이하 생략)'

(2013년 10월 24일 목요일자 울산매일신문 기사, <10대의 꿈을 위한 축제 '청소년 비전 박람회'> 중 일부)     

  학교, 학원, 집, 학교, 학원, 집, 학교, 학원, 집. 꽤나 오래전부터 이어진 10대들의 삶이다. 그들은 꿈을 꿀 수 있는 시간조차 박탈당했지만, 꿈을 꾸라는 어른들의 강압에 이기지 못해 그럴싸한 꿈을 가지려 노력하고 있다. 성준 역시 마찬가지다. 성준은 브라던 케빈의 주인공이다. '나는 납치당했다. 차창을 열고 살려달라고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아무도 내 말을 믿어줄 것 같지는 않았다. 왜냐면 납치범이 바로 엄마이기 때문이다.'(p9)로 시작되는 책은 이러한 10대들의 삶을 대변해주고 있다. 사회적 위치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10대를 대표하는 성준은 브라더 케빈에게 의지를 많이 했다. 케빈은 마치 꿈같은 사람이었다. 성준이 힙합을 온 몸으로 즐기는 순간에 케빈의 실체가 드러났다. 성준의 케빈은 부서지고 현실의 케빈은 도망갔다. 10대들의 꿈처럼.

  사람들이 말하는 꿈은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직업으로서의 꿈이 될 수 있고, 미래로서의 꿈이 될 수도 있다. 욕망으로서의 꿈이 될 수도 있고, 헛된 기대와 망상으로 가득한 꿈일 수도 있다. 꿈은 정할 수 없다. 그러나 사회는 꿈이라는 개인적인 생활까지도 간섭하려고 든다. 자기계발서를 통해 끊임없이 쏟아지는 획일적인 물음은 성준의 엄마와 같은 사람에게 생각할 시간조차 주지 않고 개성과 상황을 무시한 획일적인 답변을 한다. 케빈이 사라지고 성준은 엄마의 대변자로서의 역할을 다시 시작했다. 진정한 욕망의 대상, 힙합의 꿈이 자신의 속에서 살아있었지만 ‘세상을 이끌어나가는 사람이 되고 싶어.’(p173)라는 말을 엄마에게 말함으로써 성준은 진정한 ‘나’를 이상한 형태로 바꿔버렸다.

  성준은 케빈을 통해 천재 래퍼 투팍을 알았다. 성준은 투팍을 동경했다. 그 동경은 1996년에 죽은 투팍을 만나는 희망을 만들어냈다. 엄마의 바람, 특목고에 진학하고 졸업하여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거리에서 투팍을 마주치는 희망 말이다. 이 과정은 성준이 자신의 욕망을 버리는 것을 합리화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대부분의 10대들이 겪는 과정이기도 하다. 10대들은 착각을 하고 있다. 말도 안 되는 것들로 자신의 꿈과 자신이 대변하는 꿈을 엮어서 생각한다. 자신의 ‘꿈’ 그 자체를 못 보고 있다.

  제 2회 문학동네 대학소설상 수상작 『브라더 케빈』은 이렇게 해서 끝이 났다. 성준은 기이한 꿈으로 자신의 삶을 영위해 나갈 것이다.

필사를 하며 인생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할 것

글은 머리가 아니라 엉덩이와 팔뚝의 근육으로 쓰는 것

새로운 주제나 형식에 매달리지 말 것

절실한 것을 절실하게 표현하면 그것은 비명이다,

이 비명을 이야기로 만드는 것이 바로 예술이다

(브라더 케빈, 김수연 저, 문학동네, 2013, 수상 소감 中)

언젠가 자신의 기이한 꿈을 그 자체로 마주했을 때 성준은 절망을 할까? 아니면 꿈을 다시 변형시킬까? 서 들은 말을 바탕으로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작가는 수상 인터뷰에서 하늘 아래에 새로운 것은 없다라고 했다. 차곡차곡 쌓인 필사노트에서 『브라더 케빈』이 나왔다. 그는 이기호와 김영하, 김훈, 황석영,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을 모방했다고 했다. 이는 작품 곳곳에서 드러난다. 유명 노래와 작품들을 인용하고 있다. 소설이지만 그는 많은 것을 긁어왔고 자신의 작품에 녹여서 쓰고 있었다. ‘절실한 것을 절실하게 표현하면 그것은 비명이다.’ 말처럼 그는 10대의 꿈, 더 나아가서는 10대였던 어른들의 꿈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 책을 읽고 난 뒤에 사람들이 자신의 ‘꿈’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했으면 좋겠다. 끊임없는 사유를 통해 진정한 ‘꿈’과 마주했으면 좋겠다.

 

 

 

* 이 글은 2013년 11월 6일에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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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8
라우라 에스키벨 지음, 권미선 옮김 / 민음사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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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소설 속에 들어가는 초콜릿

 

  제목부터 맛있는 이 소설은 소설까지 먹음직스러웠고 맛있었다. 부엌이라는 공간을 끌고와 티타의 사랑과 상황을 절묘하게 결합시켜 놓았다. 역시 소설에는 금기라는 것이 있어야 한다. 막내 딸은 어머니가 죽을 때까지 보살펴야 한다는 집안 전통에 따라 티타는 사랑하는 남자 페드로를 첫째 언니에게 빼앗겨야만했다. 이 소설이 아주 흥미로운 점은 어머니도 자신만의 금기가 있다는 것이었다. 자신이 만든 틀 아래에서 구축해놓은 안전을 위해서 어머니는 얼마나 노력했을까. 이 소설에서 불쌍한 사람은 죽어서도 집안에 매여 있어야만 했던 마마 엘레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마마 엘레나는 금기를 깸으로써 남편을 죽게 했지만 또다른 금기가 생겨버렸다. 막내딸에게 금기를 만들기도 했다. 금기. 이 소설의 힘은 처음부터 끝까지 금기였고, 금기는 이 소설 뿐만 아니라 다양한 소설에 존재한다. 금기의 기원을 따라 올라가면 그리스로마신화가 있다. 그때부터 인간은 금기를 자신의 의지에 따라 깨려고도 노력했고 혹은 자신도 모르게 금기를 깨기도 했다. 금기는 인간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하지만 용기가 없다면 한없이 목을 죄어 온다. 티타는 행동할 용기가 없었고 페드로는 용기를 내기는 커녕 상황을 외면하고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자신을 합리화시킨다. 그리고 그 속에서 두 사람은 불행했다. 그렇다면 금기를 깨고 두 사람은 행복했을까?

  글쎄, 선뜻 답을 하기 어렵다. 두 사람의 사랑은 이루어졌지만 행복해보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 상황마저 불행해보였다. 존이라는 인물을 잊기 어려워서 그랬던 건 아닐까. 존은 매우 멋진 남자였다. 현실에서 이런 남자가 있다면 가로채가고 싶을만큼. 성냥을 만드는 방법을 알게 되면서 존과 티타는 가까워졌다. 이제와서보니 존은 티타를 가질 수 없는 남자였다. 존은 금기를 깨기 위해 노력했고 그 금기를 깬 티타가 괴로워할 때, 옆에서 도와주었다. 성냥을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면서 인디언 출신이었던 자신의 할머니 이야기를 곁들였다(이 소설 독후감엔 이렇게 써야 할 것 같다). 이때, 티타는 조금씩 더 큰 금기(언니의 남편, 페드로와의 사랑 결실)를 깰 수 있는 작은 불씨를 얻었던 것이 아닐까. 그 불씨가 타오르고 타오르면서 끝내는 페드로를 먼저 보내는 상황까지 이르렀던 것은 아닐까. 페드로가 탈 때 티타가 같이 타지 않고 자신을 제어할 수 있었던 것은 존 때문은 아니었을까. 의문이 계속해서 생긴다. 그만큼 티타의 이야기는 매력적이었다.

  멕시코 음식을 먹어보지는 못했지만 이 소설을 읽는 순간만큼은 장미 꽃잎을 곁들인 메추리 요리, 아몬드와 참깨를 넣은 칠면조 몰레, 크림튀김, 호두 소스를 끼얹은 칠레고추 요리를 먹은 것 같았다. 그만큼 음식을 만드는 과정이 매우 자세하게 쓰여있다. 처음에는 이 과정이 왜 쓰였나 싶지만 읽다보면 먹는 그 찰나의 순간을 위해서 적게는 몇 시간 많게는 며칠씩 준비해야 하는 요리를 읽으면서 경건해지기도 하고 티타의 마음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소설 속 음식을 먹은 사람처럼 무언가를 느낄 수 있었다. 무언가는 매 월 매 요리마다 달랐다. 요리는 금기를 깰 수 없는 티타가 마녀처럼 사람들에게 마법을 부릴 수 있는 도구였다. 도구는 많은 사람, 심지어 눈으로 음식을 먹는 사람까지 매혹시켰다.

  6월의 이야기가 제일 기억에 남는다. 6월 파트에서 존이 티타에게 해주는 말이 있다. '우리 할머니는 아주 재미있는 이론을 가지고 계셨어요. 우리 모두 몸 안에 성냥갑 하나씩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혼자서는 그 성냥에 불을 당길 수 없다고 하셨죠. 방금 한 실험에서처럼 산소와 촛불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 산소는 사랑하는 사람의 입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촛불은 펑 하고 성냥불을 일으켜줄 수 있는 음악이나, 애무, 언어, 소리가 되겠지요. (중략) 다시 말해 불꽃은 영혼의 양식인 것입니다. 자신의 불씨를 지펴줄 뭔가를 제때 찾아내지 못하면 성냥갑이 축축해져서 한 개비의 불도 지필 수 없게 됩니다.(p124~125)' 다행히도 축축해지기 전 나의 불씨를 지펴줄 뭔가를 찾아냈다. 다른 사람의 불씨는 어떤 형태로 존재할까.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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