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시간 있으면 나 좀 좋아해줘 - 제18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홍희정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10월
평점 :
20대의 고요한 외침
사랑하고 사랑받는 건 몇 살을 먹어도 좋은 법이야. (p26)
이레의 할머니가 한 말이다. 사랑은 전 세대에서 열광하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이다. 누구나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을 꿈꾼다.
순수하게 사랑할 수 있는 마지노선, 20대. 조건을 고려하지 않고 사람만 보고 사람만 좋아서 연애 할 수 있는 가장 자유로운 연애시대다. 고등학교 때, 대학교 가면 다 남자친구가 생긴다는 말은 그냥 나온 게 아니었다. 사랑하는 사람의 눈만 마주쳐도 좋은 시절, 그 시절이 20대이다. 스물여섯 소녀, 이레도 율의 목뼈를 어루만져줄 만큼 미련한 사랑을 하고 있다. 10대부터 이어져 온 사랑은 시작도 끝도 맺지 못한 채, 20대가 되어서도 짝사랑을 하고 있다. 이레는 짝사랑에 지친 나머지 오만한 생각을 했다. 사랑이란 감정은 새파랗게 젊을 때 다 소모해버리고 싶어 했다. 그녀가 생각하는 노년이란 내면의 피부가 아주 두꺼워서 무슨 일을 겪어도 흔들리지 않고 초연한 상태라고 생각했다. 흔들리고 싶지 않은 마음, 청춘들이 품고 있는 마음이었다.
젊은 시절에 부딪히고 싸워봐야 한다는 어른들의 말이 꼰대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기성세대와 젊은이의 세대가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성세대들은 안정된 사회에서 태어나 대학만 졸업해도 정년이 보장되는 기업에 들어가기 쉬웠다. 할 일이 없거나 성적이 좋지 않아서 학교 선생님을 했다는 시절을 보낸 기성세대가 조언을 한다고 해서 토익 점수, 각종 자격증과 매년 몇 천대 일을 뚫어야 하는 젊은 세대들에게는 배부른 소리였다. 그들의 권위적인 사고방식은 제도 속 깊숙이 침투되어 있고 젊은 세대들이 침묵을 할 수 밖에 없는 구조를 만들었다. 필자는 중간고사와 기말고사가 이러한 점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대학생들의 시선을 분산시키고 무한한 경쟁시대에 내몰고 있는 근본적인 시스템구조이다. 이러한 시스템 구조 속에서 이레는 취업준비생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율의 엄마가 꾸려나가던 ‘개미슈퍼’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핑계로 율을 만나러 갔다. 율은 엄마와 여행을 떠날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서 엄마가 투쟁하고 있는 대형마트에 취직을 했다. 젊은시절에는 착취를 당할 수밖에 없는 구조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는 기계처럼 무한히 ‘간장 사세요’를 반복한다. 이레는 속으로 ‘나 좀 봐 줘’를 반복한다. 두 사람은 근본적인 욕망을 추구하면서 그 욕망을 가지기 위한 적극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 이는 젊은 세대들이 기성세대에게 사회적 시스템이 개인의 삶 속 깊숙이 잘 길러져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사람은 원하는 것으로부터 자기를 지킬 줄 알아야 돼.’ 대형마트를 보며 율과 이레가 나눴던 대화 중 한 마디를 들고 왔다. 율의 대화를 보면 사람은 끊임없이 투쟁을 해야 하는 것처럼 보인다. 원하는 것이지만 원하는 것에 매도가 되지 않기 위해서 자신을 지켜야 하고, 그 속에서 원하지 않는 것이 자신의 삶에 침투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전형적인 젊은 세대의 겁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이레는 율보다 더 소극적이다. 항상 ‘준비’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다. 실패를 극도로 두려워하고 있다. 그녀의 성향은 들어주는 아르바이트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아무 말 없이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위안을 얻는 사람이 있다는 건 세상에 자신의 근본적인 욕망과 추구하는 무언가를 위해 행동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가 될 수 있다. 근본적인 욕망과 추구하는 무언가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음에도 사람들은 소통이 부족해 오랫동안 그것을 끌어안고 혼자 끙끙 앓고 있는 것이다. 고질적인 소통의 부재는 전 세대를 막론하고 만연하다. 일방적인 통보, 그 통보를 받아들이는 사람들. 그 속에서 젊은 세대는 최대한 상대방의 비위를 맞춰가며 실패를 두려워하게 되었다.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배고픔을 모르듯 대부분의 기성세대들이 젊은 날의 두려움을 모른다. 그들이 무심코 내뱉은 말들은 실패를 혹은 실패와 비슷한 그 무언가를 두려워하는 젊은이들에게 큰 상처가 될 수 있다. 젊은 세대는 시간이 갈수록 소극적이게 되었다. 스피치, 자기 PR의 시대라고 하지만 정해진 규정대로 정해진 단어만 내뱉는 사람이 되어 자신만의 색깔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칸트(이 책의 등장인물)는 이레와 함께 간 미술관에서 중요한 말을 했다. “결국, 우리는 넘어진 곳에서만 일어날 수 있으니까요.” 젊은이들은 일어날 기회를 얻기 위해 넘어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남들만큼만 가고 싶다는 생각은 획일적이고 따분한 일상들을 배열해놓게 만든다. 가장 빠르고 쉬운 소비로서 자신의 삶을 특별하게 만들어보고 싶어 하지만 소비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한정판이라고 하지만 전 세계에 일정한 개수가 있는 것이다. 그 어떤 것도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대상은 없다. 자신만이 자신을 위해 존재할 수 있을 뿐이다. 이러한 것을 간과하고 있는 이레와 율의 삶에서 전환점이 온 것은 율과 율의 어머니가 적과 적으로 만난 장면이다. 대형마트에서 일을 하고 있는 아들과 대형마트를 반대하기 위해 거리로 나선 어머니는 서로 마주보면서 어떠한 생각들을 무수히도 많이 했을까. 어쩌면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율은 우연하게도 넘어진 곳으로 돌아갈 기회를 얻었다. 어린 시절 뺨을 맞은 자신과 이를 외면한 어머니가 서 있던 장소. 그 장소로 돌아가 이레를 호출한다. 호출 받은 이레는 카프카 책을 가방에 넣고 아마도 긴 여행이 될지도 모르는 여행을 시작한다. 호출을 받은 이레도 넘어지려고 할까.
이 책은 젊은 세대(일부 기성세대도 포함)들이 갖고 있는 상황들을 무심하게 찌르고 있다. 무심하게 찔린 젊은이 한 명은 무분별하게 자신의 삶과 연관되어 있는 문제들을 종이에 일정한 규칙과 정리없이 마구잡이로 배열하고 있다. 종이 안에서의 흔들림조차도 겨우 용기를 내어 적는 젊은이는 학교에 붙어있는 ‘안녕들 하십니까?’를 보면서 다른 방식의 일방적 소통이 시작되고 있음을 느낀다. 젊은 세대도 일방적 소통을 시도하는 것일까.
『시간 있으면 나 좀 좋아해줘』. 제목만 놓고 보면 소심하지만 발칙한 요구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사랑, 근본적인 욕망 뒤에 무수히도 연결되어 있는 부수적인 욕망들 속에서 우리는 그리고 나는 무엇을 걸러내고 무엇을 생각해야하며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할 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 근본적인 욕망만을 추구하기에는 사회와 사람들이 바라는 무수한 것들을 외면해야 하고 부수적인 욕망을 추구하기에는 나라는 존재가 사라지는 것만 같다. 잔잔하지만 치열한 고민 속에서 내가 바라는 사회에 들어가기 위해 끊임없이 투쟁하고 있다.
*이 글은 2013년 12월 20일에 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