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나무들>
다 흘러가지 않은 저녁 속에
둥지에 내려앉은 새처럼
그저 일순의 숨결이라도
행복 속에 가두고 싶다는 듯
잎들의 날개를 접는 나무들,
이젠 쓰고 남은 시간도 접어
뒷주머니에 꾸깃꾸깃 집어넣고
다 흘러가지 않은 저녁 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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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딴생각>>은 그 첫 시로 <저녁, 나무들> 마지막 시를 <가을>로 두었는데, 이는 인생의 저녁을 앞두고 지나온 삶을 이 한 권의 시집 속에 정리해 두겠다는 시인의 의도가 반영되었다고 본다. 그 첫 시 <저녁 , 나무들>로 시작해 보자. 이 시는 표면으론 짧은 시이지만 읽기의 측면에선 오래 읽히는 굉장히 길고 무거운, 시공간이 큰, 한마디로 좋은 시다. 좋은 시란, <<독서의 기술>>에서 헤럴드 블룸이 한 대답을 놓으면, “훌륭한 시의 진정한 기준은 매우 꼼꼼한 읽기를 가능케” 하는 시이다.
이 한편에도 김재혁 시의 특성이 다 살아 있다. 고즈넉하고 사색적인 릴케의 사물시를 한 편 보는 것 같으면서도, 기법에는 은유의 성찬과 의인화, 알레고리가 다 담긴 시이다. 새와 날개, 나무와 잎은 제유의 관계이자 이중의 은유이다. 또 새는 나무이고 날개는 잎이 되어 환유의 상태가 되었다. 거기다 이 새와 나무는 바로 시인 자신을 상징하기도 한다.
새처럼 , 나무처럼, 삶의 둥지에 행복한 순간을 가두고,
인생의 낮동안 살아온 날들 혹은 기억들-날개와 잎들-을 정리하는
인생의 저녁에 서 있는 시인이 보인다.
여기서 ‘저녁’은 시간의 하루의 저녁에서 인생의 저녁으로 부피가 확산되어,
삶의 둥지-혹은 집-와 나무들-인간, 자연 등 만물-을 담는 하나의 세계, 공간이기도 하다.
시간이 공간으로 확대되면서 시의 시공간이 우주적 공간-세계-까지 확장된다.
또 시 형식의 간결함 역시 독자의 내면에 자리한 해석공간을 넓혀 깊이와 울림을 확대시킨다.
중년을 맞아 살아온 삶의 기억들을 정리하고 못다 정리한 기억들을 주섬 주섬 집어넣고 있는
시인의 내면을 우리는 이 시에서 엿듣는다. 우리 자신의 생을 함께 돌아 보며!
가만히 마음의 둥지에 내려앉는 시
* 제가 쓴 시평의 일부를 발췌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