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엘리엇은 19세기 농촌마을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작가입니다.

특히 그녀의 소설 <<미들 마치>>는 미시사 연구에 중요한 사료를 제공하고, 그 자체 미시사나 다름없지요. 흔히들 미시사를 일상의 자잘구례한 역사를 탐구하는 것이라고 오인하는데, 미시사는 그 자잘구레한 표본 연구를 통해 거시사적 해석에 어떤 기여를 해야 합니다. 즉 미시사는 거시사와 유기적으로 연관이 될 때, 그 연구의 의미가 있는 것이죠.

 

조지 앨리엇의 <<싸일러스 마아너>>를 읽다가, 저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예전의 소박한 농촌공동체에서는 사람들이 은연 중에 이웃을 배려하는 마음을 갖고 있으며, 스스로 삼가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이웃보다 잘난 사람도 없으며 그렇다 하더라도 드러내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삼았죠.

 

글 두 꼭지를 놓습니다.

 

 

1.

래블로의 주민들은 그다지 규칙적으로 교회에 나가지 않았다.

그리고 달력에 나와있는 매주 일요일마다 교회에 나간다는 것은 하느님한테 잘 보여서,

부당하게도 자기 이웃들보다 유리한 위치에 서려는 탐욕스러운 속셈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생각지 않은 사람은 아마 한 명도 없을 것이다. 그것은 '보통사람들'보다 나아지겠다는 욕심이고,

그래서 자기네와 마찬가지로 대부와 대모가 있고 장례미사를 받을 권리가 있는 사람들을 은근히

비난하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동시에 하인이거나 젊은이가 아닌 사람이라면 누구나 대축일 중

어느 한 번은 성체를 모시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도 누구나 인정하는 일이었다. 캐쓰 나리 자신도

크리스마스에 성체를 배령했다. 반면에 '착한 사람들'이라고 간주되는 사람들은 더 자주, 그러나

과하지 않게 교회에 갔다. 윈스롭부인은 바로 이런 착한 사람들 중 하나였다.

 

조지 앨리엇, <<싸일러스 마아너>>, 김승순 옮김, 창비, 2003, 127-8쪽

 

 

2.

 

 

 

 

 

 

 

 

 

 

 

 

 

 

<나무 1>.....신경림

 

나무를 길러본 사람만이 안다

반듯하게 잘 자란 나무

제대로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것을

너무 잘나고 큰 나무

제 치레하느라 오히려

좋은 열매를 갖지 못한다는 것을

한 군데쯤 부러졌거나 가지를 친 나무

또는 못나고 볼품없이 자란 나무

보다 실하고

단단한 열매가 맺힌다는 것을

 

나무를 길러본 사람만이 안다

우쭐대며 웃자란 나무

이웃 나무가 자라는 것을 가로막는다는 것을

햇빛과 바람을 독차지해서

동무 나무가 꽃 피고 열매 맺는 것을

훼방한다는 것을

그래서 뽑거나

베어버릴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사람이 사는 일이 어찌 꼭 이와 같을까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