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이병주의 소설 <마술사>에 나오는 송인규와 인도독립운동가 크란파니의 대화다.
앞의 값비싼 죽음에 관한 이야기도 귀담아 들을만 하지만
뒤의 "마음이 통하면 같이 있는 것이다"란 구절도 좋아서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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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독립운동을 시작할 때 벌써 목숨을 던져 놓고 있었소."
"세상에 어찌 무상의 행동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어째서 무상의 행동인가요? 당신도 릴레이 경주를 아실 것입니다. 누군가 결승점에들어가면 되는 겁니다. 꼭 나라야 된다는 법이 그 경주에 있습니까? 자기가 제일 주자가 되었다고해서 영광이 돌아오지 않습니까. 나는 민족 독립의 횃불을 전하는 선수의 한사람이오. 내 뒤에 무수한 선수가 있습니다. 내 앞에 무수한 선수가 있었던 것처럼.이러한 선수라는 의식보다 더한 보상이 어디 있겠소. 나 하나가 죽어서 수만의 행복을 마련할 수 있다고 생각할 때 이 자신 이상의 보상이 어디에 있겠으며 이죽음 이상의 값비싼 죽음이 어디 있겠소. 값없이 죽어가는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값비싸게 죽을 수있다는 건 영광된 일이며 행복된 일입니다. 사람은 값없이 죽어서는 안됩니다."
"하지만 쓸쓸하지 않습니까?"
" 쓸쓸하긴. 나는 언제나 마하트마 간디와 함께 있습니다. 네루와도 같이 있구요.마음이 통하면 같이 있는 겁니다. 생자와 사자와의 구별도 없습니다. 어디 있어도,비록 난 혼자 있는 것 같아도 나는 여러 선생님과 선배와 동지들과 같이 있는 것입니다."
출처: 이병주, "마술사", <<마술사/겨울밤>>, 김윤식 등 엮음, 바이북스, 2011, 41-4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