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6.10.21
오늘은 히로쓰 고지란 청년을 소개합니다.
저는 그 이름을 일본인을 구하고 대신 죽은 이수현씨의 의로움을 다룬 어느 신문의 사설 모두에서 처음 봤어요. 이수현에 대한 이야기의 실마리로 조선인(비하니 뭐니 논하지 말 것)을 구하고 대신 죽은 한 일본인 청년, 즉 히로쓰 고지가 소개되었지요. 보편적 인간애가 국적보다 앞섰던 사례를 거론하면서 긴장 관계에 있는 한일관계를 우호적으로 풀어보려는 의도도 있었지요. 내용인즉, 1941년 일제치하때 청진 앞바다에서 일본상선 기비호가 러시아의 기뢰에 부딪쳐 침몰하게 됩니다. 이 배의 구명보트의 수가 적어 일본 경찰은 일본인만 구조를 하게 되었는데, 그때 히로쓰 고지라는 23세의 청년이 자기 자리를 한 조선인에게 양보하고 침몰하는 배에 남아 죽었다는 게 그 스토리의 골잡니다. 이 청년이 조선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의 京都大學 윤리학과(철학과) 3년생이란 것과 죽을 때 칸트의 유명한 유언 뇌까렸다는 일화가 있었어요.
그 히로쓰 고지가 요즘 저를 유혹하는 청년입니다. 의로운 일로 요절해서가 아니라 철학정신을 가지고 치열하게 고민하면서 살았던 한 철학도로서 말입니다. 그는 죽기 3년 전 20세의 나이에 쓴 일기를 남겼는데, 그의 사후 친구들이 이 일기를 정리해 <어느 철학도의 수기>란 표제로 책을 출간했습니다. 이 일기는 수학자 김용운 선생의 번역으로 박영사에서 문고본으로 1978년에 펴낸 적이 있습니다. 참, 오래된 책이지요. 아마 구할 수 없을테니 제 소개가 필요하리라 생각해요. 그리고 이런 좋은 책을 우리 젊은이들이 계속 읽도록 펴내지 않는 것, 또한 안타까이 생각합니다.
20살의 청년이 철학적 고민을 해봤자 얼마나 심도있게 하겠느냐고 의혹을 제기할 분이 있을지도 모릅니다.일부분 맞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책을 보면서 우리의 20살 젊은이도 저 정도로 삶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스스로 진로를 택하는지 묻고 싶었어요. 히로쓰 고지는 인간의 삶의 궁극적인 목표가 인격의 완성이라 생각하고 생존적 현실이 문제되는 전쟁통에도 철학을 전공으로 택합니다. 시간의 흐름이 직선적이지 않은 이상, 오늘 날의 학생이 70년전의 학생보다 더 현명하다고 말할 수는 없어요. <로마사이야기>에서 읽어 보았듯 당시의 공화정에 대한 토론은 우리보다 더 정치하지 않습니까. 고지의 책을 읽으면서 마흔이 넘은 제가 생각하는 것들을 스무살 그청년이 그대로 했다는 것에 솔직이 놀랐어요. 의롭게 요절해서 영원히 젊음을 얻은 게 아니란 걸 알았어요. 그 청년은 가슴속에 불타는 생명, 즉 존재의 문제를 탐구하는 치열한 불꽃을 지니고자 했다는 점에서 '영원한 청춘의 사람'이었던 거지요.
저도 고지처럼 '관념의 인간 ', 다시말해 정신의 사람이고자 했지요. 정신의 인간이란 다시말해 철학하며 사는 인간이란 뜻입니다. 이것은 하나의 정신적 관념을 설정하고 거기에 맞추어 사는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흔히 오해하듯이 현실을 배제하고 추상적 관념 속에서 산다는 것도 아닙니다. 현실에 부딪치는 경험들에 맞서 적당히 타협하지 않고 진실을 규명하고자 치열하게 사색하며 사는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안일한 삶을 포기하고 끊임없이 싸우며 사는 것이지요. 고지의 말을 빌면 "끊임없이 과한 과제를 스스로에게 부여하며" 말이지요. 이상주의라고 말할 때 그 이상이란 미래적인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현실의 배경이 되어 현실을 단련시키는 것을 말한다는 고지의 일기를 읽었을 때, 제게 있어 관념이란 그런 것이라 생각했지요.
자기 도덕의 기준이 완화될까 사랑과 용서란 말을 쉽게 뱉지 못한다는 청년, 사랑한다는 것이 때론 도끼날을 들고 내리찍는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아는 청년, 운명을 사랑하는데 앞서 운명과 싸우겠다는 청년, 그 싸움이 오히려 살아있는 운명을 사랑하는 방식이라는 청년. 그 청년을 시험에 찌들어 수동적 삶을 사는, 그리고 먼 이상보다는 가까운 현실을 덜컥 손에 잡는 오늘날의 또래의 청년이 만나기를 나는 바라는 것입니다. 대학이 기업 인력공급의 인큐베이터로 전락해 사회의 방향을 설정할 인문학조차 위태로운 이 때 철학도의 글을 권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젊은 시절의 치열한 고민이야말로 작게는 인생의 비젼을 수립하게 하는 밑걸음이고, 크게는 한 사회의 방향에 대해 장기적인 안목으로 바라볼 눈을 기르는 시기인 것입니다.
철학적 사고란 어떤 것인지 고지의 글을 토대로 한 번 예를 들어 볼께요.
<요즘 길거리에서 흔히 아름다운 사람을 많이 본다. 이 도시는 발전의 결과 오히려 경박한 것으로 타락해버렸다. 그러나 반면에 도회적 색채가 짙어진 것도 사실이다. 그것 때문에 비교적 세련된 근대적인 미를 지닌 사람이 많아졌다. 그런 사람을 보면 하나의 피가 통하는 형상으로서 그 아름다움에 도취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이라는 것을 그 대상에 넣고 생각한다면 완전히 벌거벗은 벌레, 요염한 아미도 그 순간에흙덩어리나 다름없어진다....중략...사람이 사람으로서 살아 있는 모습이 아름다운 것은 그 사람이 인간 세계에서 자신의 인간성과 인정을 교차시키며 끝내는 그것을 넘어선 점이 있기 때문이다.>
고지의 생각을 하나 더 소개하지요. 고지는 당시의 문화인 혹은 인텔리겐차의 생활이 단순히 외적 자극에 반응할 뿐 극히 단순하고 유치한 감각에 의지하고 있다면서 이러한 생활은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진정한 문화가 아니라고 평합니다. 문화란 비록 '그것이 좁은 것일지라도 깊은 것'에서 발생한다는 것이죠.
외적 감각 생활에 쫒겨 내적 생명을 망각할 때 그것은 자기 상실이며 자기 생명의 상실이랍니다. 즉 커피를 마시고 영화를 보고 음악회를 다니고 유행하는 옷을 입고 스파게티를 먹는다해도 그것이 내적 생명을 길러주는 것이 아니라면 차라리 '문화인'이 되는 것을 거부하고 야인이 되겠다고 고지는 말합니다. 이러한 고지의 생각은 평소의 제 생각과 많이 닮아 있습니다. 자신이 생활속에서 공명하지 못하는 문화적 행사의 향유가 문화는 아니라는 생각요. 음악회에 졸면서 앉아 있는 것이 문화가 아니라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을 즐기며 듣는 것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문화일 수 있다는 거 말입니다.
죽음에 직면해서 결단을 요구받았을 때 고지는 평소의 사색하던 바대로 행동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es ist gut"이라 외칠 수 있었던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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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기:
운명은 그에게 살아날 기회를 줬지요. 일본인들이 다 구조되기에 그 또한 그 일원이 되면 별다른 죄책감없이 살았을 거예요. 그러나 철학도였던 고지는 그 운명에 맞서 조선인에게 양보하고 스스로 죽음을 결단합니다. 안일을 경계하고 치열하게 진리를 추구하며 살겠다는 일기의 내용처럼요. 그런 자신의 철학적 죽음이기에 '이것으로 좋다'고 받아들였던 것이지요.
사람이 자기 생각대로 살기도 힘들며 하나의 생각만을 견지하며 살기도 힘듭니다. 오히려 하나의 일관성 있는 관념만 추구하며 사는 것은 독선과 편견이 될 때도 있고요. 하지만 안락한 일상을 경계하고 정신의 날을 갈며 때론 시대와 불화하며 사는 것도 젊을 땐 필요하다고 봅니다. 젊은이가 너무 둥글한 것은 보기 좋잖습니다. 날선 정신이 세월따라 둥글고 깊게 갈아지기를 소망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