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밀란 쿤데라의 <사유하는 존재의 아름다움>(김병욱 옮김, 청년사, 1994) 을 읽다가
쿤데라가 감동했다는 포크너의 소설 <야생종려나무>의 결론 부분에 나도 감동했다.
사랑하던 부인의 죽고나서 10년 징역형에 처해져 감옥에 가게 된 사내가 누군가가
배려의 뜻으로 감옥에 넣어 준 극약 한 알을 먹기를 거절한다. 자기 부인의 생을 연장하는
유일한 방법이 그가 간직하는 추억 뿐이라는 이유로!
작가 포크너는 감동적이지만 독자에게는 어쩌면 식상할지도 모르는 이런 내용을 멋지게
표현했다.
" ...그녀가 존재하기를 멈췄을 때, 추억의 절반 또한 존재하길 멈췄다; 그리고
나마저 존재하기를 멈출 때는 모든 추억이 존재하기를 멈출 것이다. 그렇다,
슬픔과 무 사이에서 내가 선택하는 것은 슬픔이라고 , 그는 생각했다."
( 포크너, 밀란쿤데라의 같은 책에서 재인용, 김병욱역)
슬픔과 無 사이에서 슬픔을 선택했다는 말이 내겐 인상적이었다.
그에게 죽음은 외려 간단하다. 그러나 그는 사랑때문에 산 지옥을 택했다.
생에는 어떤 기억을 혹은 어떤 세월을 무화시키지 않기 위해서
끌어안고 가야 하는 슬픔이 많다. 無대신 슬픔을 택할 수 있는 자세!
그 자세에는 성스러움이 깃들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