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보들레르와 릴케의 <말테의 수기>에서 형상화된 당시의 산보객은 대도시의 우수를 표현하는 심미적 아름다움의 표지일뿐 아니라 속도화 되고 획일화 되어가는 도시문명에 대한 느린 저항이기도 하였다. 한 개인을 거대한 도시라는 기계 속의 한 원자로 만드는 익명은 자유를 보장하는 대신 외로움과 불안, 우울, 상실과 공포, 무력감 등을 부상으로 제공했다. 훗날 이러한 대도시에 반기를 드는 "산책자들"은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 하비, 잭 케루악, 장 보드리아드, 게오르그 짐멜등 비평가와 사회학자들의 화두가 되었다.
19세기말 20세기초 작가들 역시 이 문제의식을 소설 속에 담았다.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을 쓴 알프레트 되블린이나 <특성없는 남자>를 쓴 로베르트 무질도 이런 대도시, 즉 베를린과 빈이라는 거대도시에 내던져진 개인의 저항할 수 없는 무기력함, 빈곤 우울, 불신 등을 배경으로 그것을 극복해가는 실존의 문제, 인간성의 회복 등을 소설의 주제로 다루었다. 두 소설 모두 연상법, 일상의 대화, 의식의 흐름 등을 소설에 사용함으로써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나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비견되는 소설로 평가된다.
이번에 인간 내면의 문제를 포착한 독일 표현주의의 문학의 대표작이라 불리는 되블린의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 이 민음사에서 독문학자 김재혁교수의 번역으로 다시 나왔다. 귄터그라스와 벤야민("언어의 정신이 이런 식으로 독자를 뼛속까지 흠뻑 적신 적이 없었다")이 극찬한 이 소설은 소설로서는 말할것도 없고, 당시의 사회정치면 기사 기사나, 일기예보, 도로망, 상점의 간판, 전차노선, 회사의 광고문, , 주식시장에 대한 정보, 전화번호부, 유행가 가사등을 삽입해 1927-9년까지의 당대 베를린의 대도시 풍경을 실증적으로 묘사한 신뢰할 만한 베를린실록이란 점에서소설외적으로도 아주 중요한 작품이다. 베를린 동부의 번화가 로젠탈광장의 거리 풍경과 알렉산더 광장 주면에 사는 인물들의 군상......그래서 소설의 제목도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이고, "프란츠 비버코프이야기"는 부제일 뿐이다.
주제면에서나 소설기법에서나 녹록치 않아 번역하기 힘든 이 소설을 멋진 우리 말 번역으로 읽을 수 있게 된 것은 독자의 행운이다.
알프레트 되블린의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은 1999년에 99명의 저명한 독일어권 저자, 문학 비평가, 학자들이 집계한 베스트 10선 4위를 차지했다. 참고로 1위는 로베르트 무질의 <특성없는 남자>, 2위는 프란츠 카프카의 <소송>, 3위는 토마스 만의 <마의 산>이다.
* 1999년 Literaturhaus München and Bertelsmann 선정 독일어권 소설 베스트 10선
(The Best German Novels of the Twentieth Century )
1. Robert Musil: The Man Without Qualities
2. Franz Kafka: The Trial
3. Thomas Mann: The Magic Mountain
4. Alfred Döblin: Berlin Alexanderplatz
5. Günter Grass: The Tin Drum
6. Uwe Johnson: Anniversaries. From the Life of Gesine Cresspahl
7. Thomas Mann: Buddenbrooks
8. Joseph Roth: Radetzky March 10. Franz Kafka: The Castle
11 homas Mann: Doctor Faustus
(출처: Wikipedia)
* 노벨연구소 및 노르웨이 북 클럽 공동 선정 세계 100대 소설 중 독일어권 소설
괴테, <파우스트>
토마스 만, <붓덴부르크 일가> <마의 산>
카프카, '단편', <심판> <성>
되블린,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
로베르트 무질, <특성 없는 남자>
파울 첼란의 '시집'
귄터 그라스, <양철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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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람을 믿음으로써 끊임없이 저주받았던 비버코프는 어떻게 자신을 구원해 갔을까?
그게 궁금하다. 오래전 문학전집 속에 있어서 읽다가 둔 소설인데, 수년 전 Fassbinder 감독의 영화 <Berlin Alexanderplatz> 가 한국에 소개되었을 때 관심을 가지고는 늘 다시 보아야지 하면서도 책을 잃어 볼 수 없었던 책이다.
프란츠 카프카의 <성>에서 그리고 <소송>에서 수없이 거부당하고 실패하면서도 그 실패를 향해서 나아갔던 K처럼 비버코프도 그 숱한 실패를 통해서 자신을 확장시켜 간 것은 아닐까. 착하게 살고자 했지만 언제나 상황에 휘둘리고 마는 나약해 보이고 무기력해 보이는 비버코프와 자신의 죄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도 소환법정에 휘둘리고 늘 엉뚱한 선택을 하고 마는 답답한 K. 대도시에 /거대한 사법체계에 항거할수록 더욱 비참해지는 그들. 그럼에도 그들은 끊임없는 시도를 한다. 비버코프는 거듭된 실패를 통해서 자신의 질못을 깨달아 간다. 그 실패의 방향성. 모리스블랑쇼는 그게 K, 어찌보면 무기력해진 개인을 구원한다고 말한다. 폴 오스터의 <달의 궁전>의 마르코도, 크누트 함순의 <굶기>의 주인공도 다 자기 몰락을 극한(죽음)의 경계까지, 심지어는 죽음너머로 시도함으로써 구원으로 가는 희망을 발견했다. 죽음의 경계선에서 죽음과 씨름하던 “그 저녁시간에 이전의 프란츠 비버코프는 죽었"고, 그 죽음은 그를 새롭게 출발하는 “프란츠 칼 비버코프 Franz Karl Biberkopf” 로 탄생했다.
결국 구원은 타자에 대한 환멸과 모순을 받아들이는 자신의 내적 자아의 확대에서 오는 것일까. 아주 사회적인 소설에서 그 결말은 괴테류의 교양소설이나 기독교적 논리를 보는 것 같아 결말이 흔쾌하지만은 않다.
결코 닿을 수 없는 먼 희망을 향하여 끝없이 좌절하고 넘어지며, 망설이며......그러면서도 바보처럼 다시 일어나 실패가 예정된 그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길. 그 실패의 기록, 그 몰락의 기록,그 희생의 기록 그게 인생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인간은 몰락하도록 운명지워진 존재다" 짜라투스투라의 목소리였던가!
작가 되블린의 말처럼 변하고 망가지고 몰락했지만 끝내는 올바른 길을 찾은 한 사나이 프란츠 비버코프의 이야기는 인생에서 빵 이상의 것을 요구하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프란츠 비버코프처럼 그러한 좌절과 몰락을 겪고 운명이나 거대한 권력이나 힘앞에서 무기력해져 크고 작은 불운을 거듭하며 인간을 불신하며 사는 우리에게 귀기울일 가치가 있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어제 보다 나은 몰락을 꿈꾸며!!!
3. 파스빈더 감독의 영화. 유투브에 가면 대강 그 단편은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