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머니 속 시집을 꺼내 놀이터 가로등 아래서읽다 왔습니다. < 봉숭아>란 시가 왜 이리 좋은지요! <봉숭아> / 장옥근나를 바라볼 때나는 비로소 서럽다손톱 세운 적 없으므로여름 한철꽃으로 서 있다속까지 젖는 줄도 모르고빈집새어나오는 불빛처럼잊힌 옛일처럼피어서-장옥근 신작 시집 << 가을 살청>> 에서-----------------'살청'이란 녹차의 푸른 생잎을 불에 덖거나 구워서 갈변시키는 것을 말한다. 생명의 특징은 시간 속에서 부패하고 썩는 것이다. 이 변화의 주 원인인 물기와 활성산소를 제거함으로써 잎을 썩지 않고 오래 보존하려는 것이 '살청'이다. 드라이 플라워나 박제 같은 것.가을 낙엽은 자연스럽게 햇살로 살청한 것이다. 이 장옥근 시인의 시집은 인생의 나날에서 이 살청이 일어나기전에 자신 안에 있는 '푸름'을 기록해 둔 것이다. 일종의 푸름의 비망록이랄까. 살청의 '번제'를 드리기 전의 가시지 않은 푸른기를 언뜻 본 듯도 하다.<지렁이가 울 때>누군가 소리 내어 울고 있을 때 바닥을 핥는 물길은 더욱 세차고기억을 믿을 수 없는 혼란털어내지 못하고그 누군가 마음에 들어온 순간부터고개를 숙인 적도마음을 돌린 적도 없을 때* 표제시 <가을 살청>여름 강을 건너도짙푸름 가시지 않아무쇠솥에 들어가 푸른빛을스스로 거두어들이고 있다.언제 가장 푸르렀는지언제 생의 절정이었는지그때가 있기는 한 것이었는지그래도 나는 지금나를 스스로, 푸른 시절을죽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