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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을 사냥하는 자들 ㅣ 그리폰 북스 4
바버라 햄블리 지음, 이지선 옮김 / 시공사 / 2003년 12월
평점 :
절판
전직 스파이인 언어학 교수 제임스 애셔는 어느날, 뱀파이어 이시드로의 방문을 받는다. 자신과 사랑스런 아내의 목숨을 담보로, 애셔는 최근 일어나고 있는 뱀파이어 살해사건의 범인을 밝혀야 한다.
[밤을 사냥하는 자들]의 줄거리는 간단히 말하면 위와 같다. 사실 이 소설에서 흥미로운 점은 스토리의 진행이 아니다. 적어도 나에게는, 뱀파이어가 어떻게 묘사되어 있는가를 보는 것이 재미 있는 요소였다.
뱀파이어는 분명히 가상의, 환상적인 creature지만 이 정도로 많은 문학작품과 특히 영화에서 자세하게 특성이 묘사된 환상생물도 드물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특성의 묘사는 그런 소설 내지는 영화에서 큰 부분을 차지한다.
이 소설의 경우 뱀파이어의 특성은 앤 라이스의 소설들([뱀파이어와의 인터뷰], [뱀파이어 레스타], [저주받은 자들의 여왕])에서 따온 것이 많다. 아주 오랫동안 뱀파이어로서 살아 온 '늙은' 뱀파이어들이 햇빛에 견딜 수 있는 능력을 획득한다던가, 마늘이나 십자가 등에는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다던가, 뱀파이어가 사람을 뱀파이어로 만들려면 자신의 피를 사람이 마시게 해야 한다던가, 뱀파이어 사회는 철저한 규칙과 위계에 의해 움직이는 사회라던가 하는 것들은 모두 앤 라이스의 소설에서 쓰인 요소들이다. 등장인물에서도 앤 라이스의 영향을 엿볼 수 있다. 어린 소녀 뱀파이어 클로에는 어쩐지 [뱀파이어와의 인터뷰]에 나오는 '클로디에'를 연상하게 하고, 주인공 뱀파이어 이시드로는 '아르망'을 떠올리게 한다. 재미 있는 것은 이시드로를 뱀파이어로 만든 뱀파이어의 이름이 '라이스'라는 점이다. 앤 라이스에게 바치는 오마주인가?
그런 점에서 [밤을 사냥하는 자들]은 아주 흥미로운 뱀파이어 소설은 아니다. 독특한 점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범인을 추적하는 과정이 막바지에 다르면 마음을 졸이게 하는 정도의 흥미는 제공한다. 하지만 곧 김이 새버리고 만다. 범인의 정체는 뜻밖이었지만, 범인을 퇴치하는 방법은 어느 정도 예상 가능했기 때문이다.
끝으로, 번역은 최근 읽은 소설들 중에서 가장 엉망이었다. 어쩌면, 번역이 더 좋았다면 책을 더 재미 있게 읽을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기껏 역주를 달아놨는데, 그 역주가 잘못된 것인 경우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