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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에어 납치사건
재스퍼 포드 지음, 송경아 옮김 / 북하우스 / 2003년 7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일종의 대체역사 소설이지만, 하도 여러가지 요소들이 섞여 있어서 '대체역사 소설'만이라고 단정짓기는 어렵다. 어쨌든 책의 배경이 되는 세계에서는 영국과 러시아가 여전히 크림전쟁을 벌이고 있고, 사람들의 최고 관심사가 '고전문학'인 좀 이상한 세계다. 이렇기 때문에 특수작전망이라는 수사대가 존재하는데, 이중에는 문학과 관련된 범죄를 담당하는 '리테라텍'도 있다. 그리고 책의 주인공은 '리테라텍'의 1등급 수사관인 30대 중반의 여성 서즈데이 넥스트(Thursday Next)이다.
그리고 이 책의 중심사건은 책의 제목으로 짐작하겠지만 당연히도 '제인 에어'이다. 어느날, 디킨슨의 작품 [마틴 처즐윗](이 책은 읽어본 적이 없는데, 번역된 적도 없지 않나 싶다. 디킨슨 정도 되는 사람이라도 실은 몇 권밖에는 국역된 게 없지 않나. 제목만큼은 엄청나게 유명한 [픽윅 페이퍼스]도 아마 번역되지 않았을 것이다.)의 원본이 사라진 후, 이 책에서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등장인물이 책 속에서 없어진다. 그리고 당황스럽게도 실제 세계에서 시체로 발견되는 것이다.
리테라텍의 수사관들이 수사에 착수하고, 범인이 희대의 악인 아케론 하데스라는 것이 밝혀진다. 그는 신비한 능력을 소유한 자로, 주인공 서즈데이 넥스트와는 대학의 강사와 학생 사이로 안면이 있었다.
하데스의 다음 타겟은 영국인들이 사랑하는 [제인 에어]. 로체스터의 미친 아내가 로체스터의 침실에 불을 지르고 제인이 로체스터를 구출하는 장면에서 제인 에어를 납치해 실제 세계로 데려와버리고 만다. 서즈데이 넥스트는 아케론 하데스를 잡기 위해 책 속으로 들어가 로체스터와 협력을 하게 되고... 뭐, 결말은 당연히 하데스를 잡고 제인 에어는 무사히 작품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는 것이다.
재미 있는 점은, 서즈데이 넥스트의 세계에서 [제인 에어]의 결말은 우리가 아는 것과는 달랐다. 제인은 로체스터를 떠난 후 다시 돌아오지 않고 그대로 따분하고 경건한 사촌(이름도 생각나지 않는다. '세인트 존'스러운 따분한 이름이었던 듯)과 함께 인도로 포교활동을 위해 떠나는 것으로 소설이 끝나는 것이다. 소설 속 영국인들은 [제인 에어]를 사랑하지만 대부분이 이 결말에 불만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서즈데이가 책 속에 들어가 활약하면서 슬쩍 책의 스토리라인에 개입한다. 덕분에 제인은 다시 로체스터에게 돌아와 행복하게 결합하게 된다,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줄거리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제인 에어]의 이야기는 책 속 '실제 세계'인 서즈데이의 실생활과도 묘하게 겹친다. 서즈데이가 [제인 에어]의 결말을 바꾸는 것처럼, 책 속에 들어갔다 나온 서즈데이의 인생도 그 덕분에 행복한 결말을 맞게 된다.
[제인 에어]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도 아니면 그저 재미 있는 이야기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썩 마음에 들만한 책이다. 적당히 대중적이고 적당히 지적 허영심도 자극할 수 있는 책
저자의 약력이 독특하다. 20년 이상 영화산업에 종사한 인물로 아주 밑바닥부터 시작해 겨우 이름을 내걸만한 작업을 한 게 <엔트랩먼트>(캐서린 제타 존스와 숀 코넬리가 나오는 그 영화!)와 <퀼스>의 카메라맨 보조다. 직업에 쏟아붓는 시간 외의 여가 동안 틈틈히 이렇게 재미 있는 소설을 써냈다는 것이다. 모두 6편의 소설을 썼다는데 얘기가 기묘하다 하여 모두 출판사에서 거절을 당했다 한다. 이 소설은 꽤나 성공을 거두었다 하니, 곧 다른 소설들도 읽을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끝으로, 번역자는 역주를 잔뜩 붙이면서 꽤나 공들여 번역한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인상을 준다'라고 쓴 것은 그 결과가 그리 만족스럽지는 않다는 뜻이다. 역주도 초반에만 집중되어 있고, 무엇보다 문제는 좀더 발랄한 문체로 번역되었어야 어울렸을 성 싶은데 꽤나 딱딱한 말투로 번역되어 있다는 점이다. 흥미로운 읽을거리의 재미를 반감시키는 점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