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바이 베스파
박형동 지음 / 애니북스 / 2008년 3월
평점 :
품절



아이이던 시절이 없는 사람도 있을까. 꿈을 가진, 어른을 꿈꾸는 아이 시절이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 어디에 존재할 수 있을까. 세상의 모든 어른들도 한때는 아이였다. 어른들은 한 번씩 떠올린다, 다시 아이의 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것은 우리 어른들 안에 아직도 아이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지난 시간, 아무것도 몰랐지만 꿈결 같았던 그 시절을 헤아리며 다시 되돌아가고 싶은 마음. 하지만 우리는 되돌아갈 수 없다. 이미 어른이 된 사람은 절대 다시는 아이가 될 수 없다. 비록 아이 같은 어른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이 만화에는 동물과 사람, 과거와 미래, 현실과 몽상이 한 데에 뒤섞여있다. 꿈을 꾸는 것 같으면서도 한편 지독한 현실이기도 하고, 소망이었으나 이제는 너무 멀리 와버린 현재가 있다. 어른이 되어버린 아이와, 아직도 아이이고 싶은 어른. 사랑과 현실, 회상과 괴리 등. 누구나 한 번쯤은 어렴풋하게 경험하는 것들이 특유의 색채로 어우러져 있다.

이제는 닳고 닳아 귀퉁이가 바래고 종이는 다 헤지고 색깔도 누렇지만 서랍의 맨 아래 칸에 간직하고 있는 사진이나 일기처럼. 이 만화의 색깔은 밝지도 반짝거리지도 새 것도 아닌, 갈색이다. 이미 되새길 대로 되새겨서 단물이 다 빠진 것들이다. 하지만 오래된 것이라고 해서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한때는 사랑하고 아껴 마지않았으나 이제는 가끔씩 술 마실 때에나 알싸하게 떠오르는 것이 된 것들. 그것은 세월이다.

유독 이 만화의 전반에 깔려 있는 코드 중에서 눈에 띄는 것은 시간 혹은 나이이다. 아이가 어른이 되려면 꼭 건너야 하는 것이 바로 시간의 다리인 것처럼 말이다. 누구나 아이에서 어른이 되듯이, 누구나 세월을 거스를 수 없다. 그 불가항력의 거대한 힘에 수그리고 하염없이 따라가고 마는 것이 사람인 것처럼, 만화에서는 시종일관 시간과 관련된 테마들이 나온다.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누구나 시간을 먹고 아이에서 어른이 된다. 하지만 어떤 어른이 될 것인지, 어떻게 변할 것인지는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이 선택한다. 원래 그렇게 될 것처럼 자라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살면서 선택을 하고 그 선택은 되돌릴 수 없는 것이 되어 먼 후일에도 가슴 속에 남는다. 그것은 자라는 동안에 우리가 감수해야 할 것이 비단 시간뿐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준다.

결국 이 만화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시간을 따라 어른이 된 우리가 아니다. 우리 스스로가 선택해서 된 어른의 모습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 누구도 후회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프로스트(Frost)의 시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에서처럼 지금의 순간 아무리 만족할 지라도 우리는 언제나 뒤를 돌아보고 하나쯤 내가 다른 길을 선택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고 상상한다. 우리가 모든 가능성의 길이 열려 있었던 때로부터 무엇 하나를 선택해서 온 지금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방법은 다양하다. 거대한 물고기의 배에서 잠을 취하고 밤새 산길을 달려 다시 되돌아오고, 떠난 연인과 어째서 우리는 그렇게 되었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그 안에는 우리가 한 무수한 선택들이 있다. 각자의 소망 각자의 사랑 각자의 삶이 우리와 닿아있다.

좀 더 곱씹으며 읽으면 좋을 다섯 편의 만화. 거기에는 많은 것들이 담겨 있지만 정작 그 전하는 방법이 약간 미숙하고 너무나 직설적이지 않았나 싶어 아쉽다. 만화 자체가 그림과 함께 있는 것이니 글보다 기본적으로 표현에서는 앞설 수도 있다. 이러한 점을 많이 활용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글을 따라가는 그림보다는 그림과 글이 혼연일체가 되어 조금만 덜 말하고 느낄 수 있도록 안배했다면 더욱 좋았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지적하자면, 작가는 아이템이나 소재 선택에 좀 더 의미를 유기적으로 두었으면 했다. 조금 더 걸출해보이고 그럴싸해 보이는 것보다는 필요할 수밖에 없는 물건들을 배치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겉멋은 잔뜩 들었지만 그저 분위기를 위한 소재들의 남발이 아쉬웠다. 무릇 시대가 70년대라고 가정한다면, 이야기 자체가 꼭 70년대여야만 하는 이유가 필요하다. 그러니 작가여, 조금만 겉멋을 줄이고 작품을 생각하라. 그럴싸한 것보다 더 멋진 것은 정말로 그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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