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 빈센트 - 행복한 책꽂이 03
박홍규 지음 / 소나무 / 199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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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빈센트"를 읽는다. 빈센트 반 고흐가 이렇게 민중적이며 이상적 공동체를 (종교적으로 다음엔 예술적으로) 꿈구며 사랑에 목말라하던 사람이란 말이지. 그저 흔하고 평범한 목사나 화상(동생 테오처럼)이 될 수도 있었는데(그렇게 꿈꾸기도 했는데), 그러한 괴팍한 방랑길에 접어들고 말았다는 말이지. 무엇이었을까. 정말 첫사랑의 실패 때문일까. 광산촌에서의 경험때문일까. 아아, 우리시대의 치열한 삶이 겪게 되는 불안이여. (2002. 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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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미술사 (무선)
E.H.곰브리치 지음, 백승길 외 옮김 / 예경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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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려온 책이기에 다시 들춰볼 기회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림을 제대로 접할 기회가 없기에 저자의 설명을 다시 반추해볼 기회는 없을 지도. 미술가들이 미술사를 만들어간다 했는데 이미 알고 있던 이름 외에 특별히 기억나는 미술가 이름도 없다. 그래도 한켠에 쌓인 찌거기가 치워진 느낌. 다행이다. 좋은 책을 만나서. 그 두꺼운 책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어서.

보이는 대로 그리는 것은 어떠한 것인가.

아마, 매우 어려운 질문. 원근법은 그림을 매우 사실적으로 보이게 하지만(벽에 그려진 프레스코화는 그림 뒤편에 새로운 공간을 만든다), 그 정해진 규칙(사람이나 사물의 길이가 짧아보이거나 작게 보이는...)을 따르다보면, 우리가 무의식 중에 사물을 보는 양식과 상충되곤 한다. 이를 조화되게 만들어보려 하면 (중용한 사람이 두드러지고 완전하게) 그림의 구성이 단순해지거나 유치해질 수 있다고 한다. 소묘(음영)와 색(빛깔)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음영은 지금껏 특정 공간 안에서 의도적으로 배치되었다. 밖으로 시선을 돌리자 안에서 만들어진 공식들은 가짜를 만들어낸다.

사진과의 차이라는 점(이제 초상화를 그리기보단 가족과 개인 사진을 찍고 풍경화보다는 풍경 사진이 더 아름다워지고, 기본적으로 더 사실적이라 여겨지고)에서 회화의 위치가 새로워지나, 기존의 업적들에 대한 평가가 엇갈린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는 사진처럼 사실적이었나? 추상미술이 나타난다. 서예처럼 온 몸을 감아오는 감정과 느낌(그리고 이상)을 담아 그려내는 것.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것인가, 미술가만이 내적 분출을 담아내는 것인가. (2002. 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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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당평전 1 (양장) - 일세를 풍미하는 완당바람, 학고재신서 31
유홍준 지음 / 학고재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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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 교수의 "완당평전 1"을 읽다.

추사 김정희의 초상화를 보고 놀라다. 이름만큼 말쑥한 모습이려니 했는데, 그의 가문만큼이나 권문세가의 대감 같은 모습이다. 완고하고 심술궂을 듯한. 

소설 "상도"에서 중국 사신 대열에 합류하여 옹방강과 완연을 만나 제자가 되는 모습(난을 그리며...)을 보며 신기해하였는데, 그 이상으로 사귐이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다. 그 많은 서신이며 책의 교환들.

"완당평전 1"에서는 언젠가 어릴 적 보았던 추사체가 등장하지 않는다. 말년에 이르러서야 (제주도 귀양생활 중) 그 모습을 보이는가. 아마 그 추사체라는 것도 상상과 다를 듯. 부인에게 보낸 서찰에서 보이는 한글서체는 너무나 흘림이라 읽기 어렵다. 다들 그런식으로 한글을 썼던가.

 유홍준 교수는 완당의 학문과 사귐, 서체의 변화에 대해 자세히 서술하고 있는데, 아직 큰 감동이나 감흥은 없다. 완당은 무엇을 추구했던가. (2002. 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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