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폴리스 서울의 탄생 - 서울의 삶을 만들어낸 권력, 자본, 제도, 그리고 욕망들
임동근.김종배 지음 / 반비 / 201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가 모르던 서울의 역사가 펼쳐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정치생태학 - 비판적 개론
폴 로빈스 지음, 권상철 옮김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08년 4월
평점 :
품절


정치생태학이라는 생소한 영역을 비교적 쉽고 명쾌하게 설명해놓은 책인데, 번역이 많이 아쉽다. 정치생태학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은 핵심이 무언지 이해하기 쉽지는 않겠다. 정치생태학을 제대로 공부한 학자나, 아니라면 적어도 정치학이나 생태학을 공부한 사람이 나누어 옮겼으면 어땠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해명 입장총서 26
미셸 세르 지음 / 솔출판사 / 1994년 4월
평점 :
절판


긴긴 추석동안 할일 없이 빈둥거리기 뭣해서 괜히 책장을 정리하는 척 하다 미셸 세르와 브루노 라투르가 나눈 대담을 펴낸 "해명"(Enlaircissements)을 집어 든다.

2000년 여름, 삼개월에 걸친 군 훈련을 마치고 조금은 나른한 특기 교육을 받으며 거의 매주 주말마다 진주에서 서울까지 비행기를 타고 다니던 때, 학교 앞 서점에 들러 쌓아올려진 책 더미 제목들을 올려다보며 애써 고른 책이며, 그 후 몇년간 쓸쓸하거나 스스로 꾸짖고 싶을 때마다 일기장에 등장하던 그 말투, 그 문장들을 낳은 책이다.

고전 문학, 신화, 우화, 과학(수학과 물리학), 철학을 넘나드며 읽는 이들이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속도로 글을 펼쳐내는 세르는 글이 너무 어렵거나 철학이 아니라 문학(시)에 다름없거나 산만하거나 남을 속이는 글을 쓰는 철학자로 오해받곤 한다.

아마도 언젠가 세르와 만난적이 있고 공동 작업을 한 적 있을 과학사회학자 브루노 라투르는 이런 오해를 풀기 위해, 다른 사람들과 토론(전투)하는 것이 전혀 생산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는 세르에게 해명의 기회를 주기 위해, 일 년에 걸친 (편지를 포함한) 대담 자리를 마련한다.

태어나면서 전쟁을 겪어야만 했던 세르는 수학에서 과학으로, 과학에서 고전연구로 옮겨가며 헤르메스라는 철학하는 인물을 만들어내고자 한다. 어쩌면 라투르도 비슷할터. 울가와 함께 자연과학 실험실에 들어가 생활하며 과학자들이 어떻게 실험을 구상하고 행하며 인정받는지를 관찰하고, 자연-사회 구성론(잡종론)을 펴지 않았던가.

고전을 넘나들며 (사람들이 시대에 뒤떨어졌다 여기거나 그 시대에 독특한 특성을 지닐뿐이라 말하는) 수백년 전 문학 작품과 현재 과학연구들을 한 문장에서 뒤섞어버리는 세르는 직선으로 된 차곡차곡 쌓이는 시간이 아닌 찢기고 구겨지고 접히는 시간을 말하며 해명한다. 뤼크레스와 말라르메는 유체 흐름과 바탕소음을 이미 자신들의 언어로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현재 유체역학이나 소음학과 직접 맞닿아있다. 철학자와 과학자가 둘이 아닌 이유는 그들이 시를, 수필을, 소설을 쓰는(구상하는) 방법 그대로 철학을 논하기 때문이다. 논리에서 신화로 우화로 윤리로 과학으로 뛰어넘는 그들 각자가 갖고 있는 맺고 품(관계)의 방식. 세르가 찾고 만들고자 하는 사이의 철학.

헤르메스, ..로 난 통행로, 기생자, 전치사, 천사들... 그가 만들어낸 맺음/품의 인물들.

알튀세르, 푸코, 들뢰즈를 거쳐 세르를 소개받고 과학사, 과학철학, 과학사회학을 통해 알게된 라투르에게서 들뢰즈와 세르의 냄새를 맡고, 그 사이에 이 책을 읽었음에도 이 책의 두 대담자 가운데 한명이 라투르였음을 한참이나 지난 오늘에야 새삼 알아차리다니... 세르만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 영미철학에 익숙하고 공격적이며 버릇없는 상대편 질문자에게 얼마나 불편함을 느꼈던가. 아, 지금은 어떠한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윤리학 - 악에 대한 의식에 관한 에세이 동문선 현대신서 40
알랭 바디우 지음, 이종영 옮김 / 동문선 / 2001년 11월
평점 :
절판


알랭 바디우의 "윤리학 - 악에 대한 의식에 관한 에세이"를 읽다.

사건과 충실성, 진리에 대해 논하고 있다.

  • 사건 :  상황, 의견, 제도화된 지식과는 '다른 것'을 도래시키는 것이다. 우연적이며 예측불가능하고 나타나자마자 사라지는 잉여적 부가물이다.
  • 충실성 : 과정의 이름이다. 사건 그 자체의 정언명령 하에서 상황에 대한 지속적  탐구가 바로 그 과정의 관건이 된다. 계속적이고 내재적인 단절이다.
  • 고유한 의미의 진리 : 충실성이 점진적으로 구성해 나가는, 상황에 내부적인 다양성이다. 충실성이 재집합시키고 생산하는 것이다.

이에 반해 (사건에 상관적인) 시뮬라크르, (충실성에 상관적인) 배반, (진리의 힘에 상관적인) 명명될 수 없는 것의 촉성은 악의 형상들이다.  

  • 시뮬라크르 : 거짓된 사건에 대한 테러적인 충실자로 존재하는 것
  • 배반 : 자기 자신의 이해 관심을 위해 진리를 양보하는 것
  • 명명될 수 없는 것에 대한 촉성 또는 파국 : 진리의 힘이 전능하다고 믿는 것

윤리학은 "계속하시오!"라는 정언명령 하에서 식별의 자원(시뮬라크르에 말려들지 않기 위해), 용기(양보하지 않기 위해), 유보(총세성의 극단성들에 휩싸이지 않기 위해)를 결합시킨다.

학부 1학년 때, 중국철학 개론서에서 맹자의 성선설과 순자의 성악설이 크게 다른 것이 아니라고 설명하는 것에 놀란 적이 있다. 아니, 이른바 강조점이 다를 뿐. 

인간의 본성이 선하든 악하든 관계없이 덕 수양에 소홀해서는 안되는데, 인간은 본디 선하지만 세상은 추잡함으로 가득하거나, 인간은 본디 악하지만 수양을 통해 그 본성을 억누를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진리가 무엇이든, 사건을 어떻게 바라보든, 개념 체계가 어떻든... 끊임없이 자신을 살피고 수양하라. 하핫. (2002. 3.3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기식자 동문선 문예신서 201
미셸 세르 지음, 김웅권 옮김 / 동문선 / 2002년 8월
평점 :
절판


죽는 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고, 잠자는 데에도 두 가지 방법이 있으며, 짐승이 되는 데에도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소란 속에 머리를 그대로 처박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질서와 키탄질 속에 안정되게 정착하는 것이다. 우리는 폭발의 위험에 대비해 감각과 본능을 상당히 잘 갖추고 있다. 우리는 죽음 앞에서 질서에 의해 박탈당하고, 혹은 졸음 앞에서 규칙과 조화에 의해 박탈당한다.(p208)

그가 글을 쓰듯이, 카드놀이에서의 카드의 배분에 관해, 우연의 모습들이 지닌 검고 어두운 이면에 관해 글을 써보라. 당신이 당신의 게임과 악보를 감추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이면-표면에 관해 글을 써보라. 우연, 무질서, 소음과 반대 방향으로, 당신의 있는 그대로의 적나라하고 고유한 상황들과 반대 방향으로, 타자를 위해 그리고 타자와 함께 조화-음악을 계속해서 작곡해 보라. (p218)

구름의 흩어짐, 나뭇잎의 떨어짐, 어둠의 침입, 여명, 빗방울, 물빛, 작은 곤충의 움직임, 새의 날개짓... 등에 무언가를 대입한다. 자연의 흐름 혹은 동물들에 비유하는, 물리,화학,생태학 등에 환원하는 것만은 아니다. 카드 배분처럼 우연한 것들에 무언가를 던져 넣는 것. 그럼에도 밝혀질 비밀과의 접속을 기대하는 것. 다른 기차로 갈아타기. 외부의 기차-계열, 허나 내 안에서 아우성치고 있는 안전장치.

모터들, 기계들, 거대 공장, 미디어, 도로와 철도... 인간의 육체를 연장하고 뛰어넘고 대체해버리는 모든 것. 에너지의 전환과 투입, 폐에너지의 방출, 서비스와 편의, 정보의 지식, 기획으로 살아가기. 폐허 직전의 화려한 도시 공간의 확대. 집적. 모자람에 대한 공포. 남겨진 것 혹은 희귀한 것에 대한 갈망. 탈출.

기식자는 열을 자극하는 자이다 (p305). 항상 비켜 물러났다가 비켜 치는 것이다. 다양한 부문과 약한 고리라는 은유에서 벗어나기. 우리는 항상 사선이다.

공간이든 역사든외부의 중심. 있거나 혹은 없거나 하는 비어있는 공간. 그 곳에서의 거리. team이 되기 위해 상황에 따라 바뀌는 외부의 중심에게 주어 버린다. 내 안에 들어온 중심. 그럼 나는 무엇이란 말인가. (2002.10.1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