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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하게 살아 있는 캐릭터 만드는 법 - 심리학으로 풀어낸 개성 넘치는 캐릭터 창작법
키라앤 펠리컨 지음, 정미화 옮김 / 아날로그(글담)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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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하게 살아있는 캐릭터 만드는 법> 키라앤 펠리컨 지음, 정미화 옮김 | 출판 아날로그(글담)



일단 다른 건 몰라도 웹소설 만큼은 재미있어야 한다. 읽히지 않는 웹소설은 팔리지 않을 테니까. 팔리지 않는 웹소설을 쓰는 작가는 거의 없을 테니까. 나는 이 재미라는 것을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다. 하지만 경험으로는 이야기할 수 있다.


책의 분량이 끝나는 것이 안타깝거나, 인물의 이전 대화들이 그리워서 자꾸만 앞장을 넘겨다 볼 때,

밤을 새워보고나서 날이 밝았는데 내 마음은 여전히 깜깜한 밤중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책과 함께 울고 싶을 때 나는 이런 감정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읽는 재미가 있다고 생각해왔다. 이야기가 나를 이렇게 휘저어놓는 것은 단순히 배경이나 사상, 소설의 플롯과 구조가 훌륭해서는 아닐 것이며, 그 재미의 중심에 생동감있게 살아있는 '인물'이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한다.


<생생하게 살아있는 캐릭터 만드는법>의 저자 키라앤 펠리컨은 영국과 미국에서 영화 및 TV 드라마 시나리오 작가로 일했다고 한다.이 책은 저자가 심리학자 겸 작가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인물에 대한 성격과 성향 등을 분류하고 체계적으로 작업을 해 놓았다. 그래선지 일상에서 대인관계에도 도움이 될 만큼 사람의 유형들을 유형화해놓은 느낌마저 든다. 


하지만 아무래도 저술의 의도가 작가이거나 작가 지망생인 독자들을 위한 책이다 보니, 이 캐릭터들이 어떻게 작품에서 구현되는지를 각 테마마다 명료하게 보여준다. 특히 인기작이었던 영화나 미드들인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라든가 <브래이킹 배드> <왕좌의 게임> <아이언 맨> 등등의 시나리오의 일부를 발췌해서 자칫 추상적이거나 도표로만 빠질지도 모르는 분류들에 실질적인 활용법을 예로 들고 있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영미 작법책들을 읽다보면 거의 읽지 않았거나 처음 듣는 작품들이 많아 당황하던 독자들도 한번쯤은 봤거나 들어봤던 영화와 드라마들을 떠올리면서 친근하게 다가설 수 있게 배려한 점이 좋은 것 같다. 앞머리에서도 써 있듯, 이 책은 매 단원마다 포인트로 다시 정리하는 부분이 있고 책의 말미에는 책 전체를 다시 캐릭터별에 대한 글쓰기 전략으로 요점 정리해놓았다.


글을 쓰다보면 가끔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대충 인물을 이야기 한 복판에 던져 놓으면 그 인물이 알아서 이야기들을 써나가겠지."


하지만 작가라는 든든한 책임자와 보호자가 없는 캐릭터는 알아서 탄탄한 이야기들을 써 나갈만큼 능력자들이 아니다. 그렇다고 작가가 내키는 대로 인물을 창조하다보면 이야기는 개연성으로부터 멀어지거나, 아예 막장 스토리가 되기도 하며, 나중엔 장르조차도 애매해져서 독자에게 공감을 얻지 못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적어도 인물이 이 이야기의 환경과 어떻게 순응하거나 대처할지에 대한 성향의 범주가 있어야 환경과의 자연스러운 조응이 이뤄지고, 동조 인물이나 반동인물 등 주변 인물들도 탄탄하게 이전의 내용과 또 새로운 환경을 함께 엮어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생생하게 살아있는 캐릭터 만드는 법>은 인지 심리학 책이 아니기 때문에 여기에서 언급되는 성격들은 '사람들' 이나 '인간들'이 아닌 인물이자 캐릭터들이다. 따라서 이야기를 엮다보면 현실보다 극단적인 모습을 보여야 효과적일 때가 있으며 이야기를 끌어갈 수 있다는 조언도 잊지 않는다.


○ 독자의 기억에 남는 인물은 성격의 일부 요인과 측면에서 극단적인 성격을 띠기 때문이다. 전형적이지 않기 때문에 기억에 남는다.

○ 모두가 성격에 빛과 어둠의 측면 모두를 어느 정도 지니고 있으므로 인물에게 빛과 어둠의 특성이 뒤섞여 있도록 설정  // (본문 중에서)



이야기의 몰입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주는 것 또한 인물이다.

○ 대화가 서사를 이끌어가기는 하지만 인물에게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 들면 우리는 더 이상 이야기에 몰입하지 못한다. 인물 묘사가 투박하고 설명에 의존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 (본문 중에서)

이야기의 구체성을 살려내는 것 또한 인물의 생동감이라는 이야기이며, 어울리는 인물을 끌어내지 못하면 내용들이 진술적이고 설명적인 느낌이라 점점 늘어지거나 막연하게 흐른다는, 나에게 꼭 필요한 조언이었다.


위에서 말한 인물이 알아서 이야기를 써 나갈 수 있게 하는 요인들은 동기와 목적들인데, 저자는 이 '동기' 와 '목적성'에 대해서도 세세하게 이야기 하고 있다.


이 책을 읽고 내가 쓸 이야기에서 인물들이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받는가. 한 인물이 다른 인물에게 충분히 설득적인가. 하는 생각을 해봤다. 만일 그게 아니라, 내가 일방적으로 인물들에게 이래라저래라 강압적으로 지시만을 한다면 책 속의 인물들은 살아 움직이지 못하고 기계적인 NPC처럼 느껴질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상적이며 재미있던 책의 공통점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책을 읽으며 모든 스토리를 다 기억해내지 못한다. 심지어는 읽으면서 앞의 내용을 까먹는다. 새로운 내용들을 받아들이느라 앞의 내용을 복기할 겨를조차 없을 때도 많다. 하지만 책을 덮고나서도, 세월이 지나서도 그 책에서 잊혀지지 않는 것은 인물이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의 스칼렛의 모습이라든가(비비안 리로 떠오르는), 아이언맨에서의 토니 스타크의 툭툭 던지는 농담이라든가 하는 것은 잊혀지지 않는 것이며, 이러한 인물들이 책 뿐 아니라 내 가슴 어딘가에 살아 남아서 여전히 내가 그 책을 읽거나 영화를 봤다고 믿게끔 해주는 것같다.



2023. 1. 23.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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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들 - 손석희의 저널리즘 에세이
손석희 지음 / 창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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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희 『장면들(The Scenes)』 | 창비


덩치 큰 매스미디어뿐만 아니라

1인 유튜브 방송까지 여기에 가세하여 각자의 뉴스를 생산하는 시대.

제각기 다른 요구를 가진 소비자가 제각기 다른 뉴스를 소비하고 있는 세상.


...


전통적 의미의 ‘기자다움’보다는

포스트트루스 시대의 ‘내 편다움’이 더 환영받는 시대에

이른바 ‘기레기’가 되지 않으려면 기자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


왜냐하면 사람들에겐 이미 각자의 진실이 존재하는

‘유튜브’가 있기 때문에…


-2019년 10월 22일의 앵커브리핑 중에서(p.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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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방에서는 캐롤이 울린다. 저작권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었기 때문에 그 어느 해보다 유튜브에 캐롤 풍년이 든 느낌이다. 나는 캐롤을 듣기 위해 거리로 나가지 않는다. 어릴적 캐롤을 듣던 기억은 목적이 아니라 짧은 ‘장면’들로 구성된다. 어떤 겨울들은 슬프다. 한 때의 장면만 떠올려도 내 삶은 고단하기만 할 뿐, 도무지 나아가려하지 않는 느낌도 든다. 



사소한 장면들은 마음에 각인되고 


어떤 장면들은 평생 가기도 한다.




창비에서 손석희 작가의 책이 나왔는데, 잠시 호칭에 고민을 하게 된다. 앵커라 해야 하나? 책을 냈으니 작가라 해야 할 것 같다. 이 호칭은 단순히 책을 냈기 때문은 아니다. 수많은 장면들의 무게를 감당해야 하는 고역스런 일을 모처럼 시작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28년 만이라 한다. 28년동안 스쳐갔을 장면들이라니! 목차만 읽어봐도 느낌이 온다. 이 중 하나의 장면이 내 인생에 정면으로 뛰어든다면 나는 평생 헤어나오기 힘들 장면들인데. 


이 책은 에세이처럼, 혹은 시나리오의 장면번호처럼 구성되어 있다. 그래선지 책 전체에서 주석을 찾기가 힘들다. 덧붙인 해명도 없다. 마치 이 책의 출간으로 인해 엄청난 오해의 파장이 몰아친다 해도, 그 자체 역시 자연스럽다고 말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포스트모더니즘을 포스트투르스 시대라 한다. 디지털 시대이든 어떻든 항상 사회의 불신과 불화는 존재하기 마련이다. 불신과 불화 속에서 희망처럼 신뢰라는 것이 생겨나고, 그러다보면 편이라는 것도 생기기 마련이다. 어쩌면 이런 너무나 사회적이고 인간적인 흐름 속에서 잠깐 ‘매스미디어’라는 것이 끼어들었던 것은 아닐까? 그래선지 이 시대의 불화와 신뢰라는 것이 새삼스럽게 새로운 운명인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지금은 개인 방송들이 많다. 우리는 뉴스를 골라보기도 한다. 이전에도 매스미디어에서 보여주는 것을 수동적으로 보면서 혀를 차다가 마음에 안 들리면 채널을 돌릴 권한 따위는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채널을 돌리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내가 원하는 방송을 골라서 담아놓는다. 뉴스도 예외가 아니다. 이전에도 채널을 돌리는 이유에 대해 우리는 별 고민이 없었다. 어쩌면 ‘그냥 보기 싫다’라는 단순한 마음일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그 짧은 순간의 선택에도 미디어에 대한 취향과 성향이라는 것이 분명히 존재했으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요즘 정치적 이슈를 소재로 하는 개인미디어에는 취향과 성향을 넘어 맹목적적 신뢰라는 것이 생겨나는 것 같은 기분이다. 내가 1인 미디어의 채널에 ‘구독’과 ‘좋아요’를 누르는 순간, 나는 그에게 무제한적 신뢰를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날로그와 달리 디지털 세계의 채널은 돌아가지 않는다. 누르는 것과 해지가 있을 뿐이다. 실시간적 장면들이 송출되고 있지만, 그것을 송출하기 위해 부딪히고 싸우고 고민하는 저널리스트들의 장면들이 궁금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이 책을 읽게 되었는데, 여러 정치적 사회적 이슈들에 대해선 이 지면에서 직접 거론하고 싶진 않다. 그저 책을 읽어보고, 지인들에게 소개하고, 그 지인들과 잠깐 티타임을 가지며 이야기 나눠보고 싶을 뿐이다. 



다만, 이 책에 실려 있는 수많은 ‘장면’들의 무게가 좀 장난 아닌 건 사실이다. 뉴스가 쉽게 생겨나고, 구독자들도 쉽게 생겨나는 세상이다. 한 뉴스가 다른 뉴스를 카피하고 그 카피된 정보에서 생각이 자란다. 그리고 그 생각을 구독하는 것에 대해 조금은 조심스러워진다. 아직도 혹은 앞으로도 이 책이 내게 의미를 주는 점이 있다면, 저널리스트는 두 발로 뛰게 될 것이며 뉴스는 아직 두 발로 걷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으리라는 조심스러운 신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2021. 12월 첫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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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눈동자 안의 지옥 - 모성과 광기에 대하여
캐서린 조 지음, 김수민 옮김 / 창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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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서린 조 『네 눈동자 안의 지옥』 , 김수민 옮김, 창비


"세상 모든 어머니들은 미쳤어."

고1 때였다. 국어선생님은 임신 중이었다. 출산 후에 수업에 복귀하며 했던 말이 떠올랐다. 국어 선생님은 알겠니? 하면서 이 말을 몇 번이고 되풀이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어머니'와 '미쳤다'라는 두 개의 말이 한 마디에 나란히 섞일 수 있다는 것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들 중 누구도 두 말이 섞인 질문을 하지 못했다.


캐서린 조의 『네 눈동자 안의 지옥』 은 그때 아무도 하지 못했던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해주는 내용이었나. 아니, 왜 미쳤는지의 광기에 대한 답을 속시원히 들려주지 않았다. 왜냐면 그 광기는 속시원한 것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정체성의 위기는 여러 차례 온다. 지위와 역할에 따라서, 사람의 관계에 따라서.

하지만 '내 몸이 정말 내 것이었는지'에 대한 질문을 이렇게 적나라하게 대답할 수 있는 책이 있었을까.

단순히 육체적이고 병리적인 것 외에, 자신을 대하는 사람들의 시선과 행동에 대해서도.

책은 가제본이었기에 병동에 있는 상태에서 끝난다. 병동에서 '정상인'으로 판정이 되는 명분은 무얼까. 자기 정체적 혼란의 두려움을 진정으로 극복하게 될까, 아니면 사회에서 용인할 수준을 인지하고 두렵지 않은 척을 하게 되는 것일까. 그 능숙함의 척도에 따라 더 정상적이거나 덜 정상적인 것일까? 혹은 두렵지 않은 척을 할 만큼 능숙하지 못해서 미친 사람의 판정을 받고 마는 것일까? 읽지 못한 이후의 지면들에서 생겨날 나의 질문들이 궁금해진다.

그 때 국어 선생님의 "세상의 어머니들은 모두 미쳤어"라는 것은

두려움을 감추는 데에 능숙한 어머니들이 차마 말하지 못한 광기를 우리들에게 폭로했던 것일까.

이 책을 읽은 나는 아주 오래 전 교실에서 듣고 잊어버린 줄 알았던

'어머니'와 '미쳤다' 라는 단어를 과감히 배열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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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이후, 인생의 멋을 결정하는 습관들 - 온전히 나답게 사는 행복을 찾다
이시하라 사치코 지음, 신은주 옮김 / 더퀘스트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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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이후, 인생의 멋을 결정하는 습관들 / 이시하라 사치코 , 더퀘스트




'멋'이라는 것이 무얼까. 멋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차이는 무얼까. 한 때 멋이라는 개념에 대해 고민한 적이 있었다. 멋이라는 것이 정확히 무언지 모른 채 누구나 멋을 내고 다닌 적이 있지 않았을까. 나 역시 그랬다. 멋이란 단순히 감각의 문제라 믿었다. 하지만 그건 그저 한 때의 유행에 불과했던 것 같다. 멋은 공부하고 배우고 연출한다고 해서 단기간에 익혀지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단기간의 노력으로 멋있다는 이야길 들어도, 그 멋이란 세월 속에서 덧없이 잊혀지는 것 같다. 일의 바쁨으로, 일상의 게으름으로, 나에 대한 사랑에 대한 상실로. 그렇게 따지면 멋이라는 게 가장 깊이 맞닿아있는 건 '자신'이라는 것이 아닐까.


일본의 스타일리스트 이시하라 사치코는 <50이후, 인생의 멋을 결정하는 습관들>에서 패션, 소품, 인테리어, 음식 등등 크고 작은 다양한 것들을 삶의 복판으로 가져와 연출하고 있다. 그 기꺼움의 밑바탕엔 사물에 대한 애정도 있겠지만, 더 깊은 곳에 자신에 대한 신뢰, 나다움이라는 것이 있는 것 같다. 자신에 대한 사랑 없이 사물에 대한 애정들이 이뤄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에 대한 애정이 없다면 사물에 대한 사랑은 애착이 아닌 집착이 될 지도 모르니까.


왜 50이후, 라는 말이 제목이었을까 고민을 하며 읽었다. 왜 50인가, 50이후의 멋인가. 그 멋이라는 건 50이후에 새롭게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50세 이후에도 계속 지속할 수 있는 감수성은 오로지 평생에 걸친 습관을 통해 이어져나가는 것이라 그런 건 아닐까. 책을 읽다보면 50세 이후의 여성에 대한 특유의 분위기같은 건 느껴지지 않는다. 50이 지나서도 여전히 살아있는 자신에 대한 애정과 사물에 대한 감수성이 50이후의 삶을 지속하는 것, 그런 느낌으로 한 장 한 장 읽어나갔던 것 같다. 이시하라 사치코라는 저자의, 자신만의 유일한 '브랜드'는 그렇게 유일무이한 것으로 이루어져 온 것이다.


그럼 다시 돌아와 멋이라는 게 무얼까. 그건 사전을 찾아 정의내릴 수 있는 개념같은 것이 아닌 것 같다. 자신에 대한 애착, 타인에게 주는 기쁨, 나누는 것, 사물에 대한 감수성, 자신만의 개성 연출... 이런 것들은 평생의 삶에 걸쳐 이어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저자는 오십이라는 나이를 훌쩍 넘었지만, 이미 많은 습관들을 통해 이루어진 취향들이고, 그 취향이라는 것은 짧지 않은 시간 - 평생이라는 시간 단위를 통해 여전히 진행형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 저자는 자신이 세상에 없는 이후에도 사물에 타인의 이름들을 지어주면서 그것들이 계속 지속하기를 꿈꾼다. 멋이라는 건 그런 것이 아닐까. 자신에 대한 애정에서 출발하여 그 감수성이 타인과 주변세계에 여전히 즐거움을 주며 아름답게 머물 수 있는 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20-08-28금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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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봐도 연애소설
이기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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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봐도 연애소설 / 이기호 ,위즈덤하우스

사회적 거리유지를 하다보니 집 안에 있는 시간들이 늘어난지 오래다. 그러다보니 심심할 때 부담없이 읽히는 글들이 주로 전자도서나 웹소설 연재물들이다. 요즘 북맥이라는 말도 생겨났다. 맥주와 책. 어울리는 도서를 탐색한다. 우선은 호흡이 짧은 책, 언제든 뒹굴뒹굴 읽다가 얼굴에 엎어놓다 다시 집어들어 읽어도 부담없는 책, 그러면서 적당히 적당히 사람의 마음을 짠하게도 하는 그런 도서를 원했다.

<누가 봐도 연애소설>이 딱 그런 책이었다. 로맨스라는 갈래는 시대불문 엄청 인기를 끄는 장르이지만, 요즘은 웹소설과 장르문학의 약진으로 여전히 강세를 보인다. 하지만 이 책은 독자의 요구치에 맞는 클리셰로 맞장구치기엔 삽화처럼 짧게 그려지다 여운을 남기며 희미해진다. 인물들도 뛰어난 검사나 재벌집 아들, 혹은 공작, 백작, 남작이 아닌 공시생, 취준생, 이혼한 가정, 좀 찌질한 성격의 소유자들, 혹은 칠순이 넘은 부부... 이 책을 읽다보면 어쩐지 내가 취준생도 되고 돌싱이 되기도 하고, 찌찔한 나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으며, 때로는 칠순이 넘은 채로 여전히 변함없이 배우자와 다투는 사람으로 변해있는 느낌이다. '누가 봐도' 라는 제목은 그런 의도였었나. 누가 봐도 자기 이야기같은. 연애를 하지 않는 사람도 세상살이가 거창한 사랑이 아니라, 찌질하면서도 아프고 짠한 연애감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만 같다.

미니픽션이라는 짧은 분량도 호흡을 함께 한다. 어쩐지 뒷 이야기는 안 봐도 될 것 같다. 왜냐면 뒤의 결과가 궁금한 게 아니라, 이런 이야길 슬쩍슬쩍 들추어본 것으로 만족스럽기 때문이다. 노트북을 돌려받았을 때 너와 나의 사진이 아닌 바탕화면의 사진으로 바뀌어있는 것을 봤을 때의 그 순간, 그 감정선. 그 뒤에 어떤 원인과 결과가 딱히 놓여야 할 것처럼 보이진 않는다.

뒷편의 내용들이 궁금해지지 않은데 이들의 이야기들은 계속 전개되어갈 거라는 믿음이 생긴다. 왜냐면 내 삶도 그렇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미래가 내다보이지 않는 삶, 그런데도 딱히 궁금해할 것도 없고 궁금해하지도 않은 채 진행되는 삶, 가끔 슬쩍 남의 이야기를 엿보면 내 인생도 크게 어긋나진 않는구나. 나만 유치한게 아니구나. 다들 유치하고 약했어. 나만 찌질한게 아니었어, 하는 안도감이 내 미래보다 더 살갑게 다가오기 때문이 아닐까.

20-08-21 금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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