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들 - 손석희의 저널리즘 에세이
손석희 지음 / 창비 / 202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손석희 『장면들(The Scenes)』 | 창비


덩치 큰 매스미디어뿐만 아니라

1인 유튜브 방송까지 여기에 가세하여 각자의 뉴스를 생산하는 시대.

제각기 다른 요구를 가진 소비자가 제각기 다른 뉴스를 소비하고 있는 세상.


...


전통적 의미의 ‘기자다움’보다는

포스트트루스 시대의 ‘내 편다움’이 더 환영받는 시대에

이른바 ‘기레기’가 되지 않으려면 기자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


왜냐하면 사람들에겐 이미 각자의 진실이 존재하는

‘유튜브’가 있기 때문에…


-2019년 10월 22일의 앵커브리핑 중에서(p.299)



--------------------------------------


내 방에서는 캐롤이 울린다. 저작권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었기 때문에 그 어느 해보다 유튜브에 캐롤 풍년이 든 느낌이다. 나는 캐롤을 듣기 위해 거리로 나가지 않는다. 어릴적 캐롤을 듣던 기억은 목적이 아니라 짧은 ‘장면’들로 구성된다. 어떤 겨울들은 슬프다. 한 때의 장면만 떠올려도 내 삶은 고단하기만 할 뿐, 도무지 나아가려하지 않는 느낌도 든다. 



사소한 장면들은 마음에 각인되고 


어떤 장면들은 평생 가기도 한다.




창비에서 손석희 작가의 책이 나왔는데, 잠시 호칭에 고민을 하게 된다. 앵커라 해야 하나? 책을 냈으니 작가라 해야 할 것 같다. 이 호칭은 단순히 책을 냈기 때문은 아니다. 수많은 장면들의 무게를 감당해야 하는 고역스런 일을 모처럼 시작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28년 만이라 한다. 28년동안 스쳐갔을 장면들이라니! 목차만 읽어봐도 느낌이 온다. 이 중 하나의 장면이 내 인생에 정면으로 뛰어든다면 나는 평생 헤어나오기 힘들 장면들인데. 


이 책은 에세이처럼, 혹은 시나리오의 장면번호처럼 구성되어 있다. 그래선지 책 전체에서 주석을 찾기가 힘들다. 덧붙인 해명도 없다. 마치 이 책의 출간으로 인해 엄청난 오해의 파장이 몰아친다 해도, 그 자체 역시 자연스럽다고 말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포스트모더니즘을 포스트투르스 시대라 한다. 디지털 시대이든 어떻든 항상 사회의 불신과 불화는 존재하기 마련이다. 불신과 불화 속에서 희망처럼 신뢰라는 것이 생겨나고, 그러다보면 편이라는 것도 생기기 마련이다. 어쩌면 이런 너무나 사회적이고 인간적인 흐름 속에서 잠깐 ‘매스미디어’라는 것이 끼어들었던 것은 아닐까? 그래선지 이 시대의 불화와 신뢰라는 것이 새삼스럽게 새로운 운명인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지금은 개인 방송들이 많다. 우리는 뉴스를 골라보기도 한다. 이전에도 매스미디어에서 보여주는 것을 수동적으로 보면서 혀를 차다가 마음에 안 들리면 채널을 돌릴 권한 따위는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채널을 돌리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내가 원하는 방송을 골라서 담아놓는다. 뉴스도 예외가 아니다. 이전에도 채널을 돌리는 이유에 대해 우리는 별 고민이 없었다. 어쩌면 ‘그냥 보기 싫다’라는 단순한 마음일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그 짧은 순간의 선택에도 미디어에 대한 취향과 성향이라는 것이 분명히 존재했으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요즘 정치적 이슈를 소재로 하는 개인미디어에는 취향과 성향을 넘어 맹목적적 신뢰라는 것이 생겨나는 것 같은 기분이다. 내가 1인 미디어의 채널에 ‘구독’과 ‘좋아요’를 누르는 순간, 나는 그에게 무제한적 신뢰를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날로그와 달리 디지털 세계의 채널은 돌아가지 않는다. 누르는 것과 해지가 있을 뿐이다. 실시간적 장면들이 송출되고 있지만, 그것을 송출하기 위해 부딪히고 싸우고 고민하는 저널리스트들의 장면들이 궁금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이 책을 읽게 되었는데, 여러 정치적 사회적 이슈들에 대해선 이 지면에서 직접 거론하고 싶진 않다. 그저 책을 읽어보고, 지인들에게 소개하고, 그 지인들과 잠깐 티타임을 가지며 이야기 나눠보고 싶을 뿐이다. 



다만, 이 책에 실려 있는 수많은 ‘장면’들의 무게가 좀 장난 아닌 건 사실이다. 뉴스가 쉽게 생겨나고, 구독자들도 쉽게 생겨나는 세상이다. 한 뉴스가 다른 뉴스를 카피하고 그 카피된 정보에서 생각이 자란다. 그리고 그 생각을 구독하는 것에 대해 조금은 조심스러워진다. 아직도 혹은 앞으로도 이 책이 내게 의미를 주는 점이 있다면, 저널리스트는 두 발로 뛰게 될 것이며 뉴스는 아직 두 발로 걷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으리라는 조심스러운 신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2021. 12월 첫날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