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작품을 처음 접한 건 약 10년 전 <소년이 온다>(2014, 창비)였다. 그때 느꼈던 분노와 울컥함이 쉽게 잊히지 않아 이후 2번이나 더 읽었다. 


작가의 노벨상 수상 소식을 접한 뒤 <작별하지 않는다>(2021, 문학동네)를 만났고, 말로는 옮기기 어려운 상실이 문장을 타고 파도처럼 끊임없이 다가오는 경험을 했다. 하지만 나에겐 <소년이 온다>에 미치지 못했다.


그러다 드디어 올해, 기대했던 <채식주의자>(2007, 창비)를 펼쳤다. 세 작품 중 가장 복잡하면서, 가장 조용했고, 동시에 가장 강렬했다.




<채식주의자>는 어떤 이야기?



이 작품은 2016년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하며 세계적으로 주목받았다. 세 편의 중편(채식주의자 - 몽고반점 - 나무 불꽃)이 연결된 구성으로, 한 여성이 어느 날 갑자기 채식을 선언하며 사회와 단절되고, 결국 자기 존재마저 거부해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소설에서 ‘채식’은 그저 저항을 위한 도구일 뿐이다. 나에게 이 작품은 삶의 전방위에서 가해지는 사회적 억압 속에서 ‘침묵 속 몸의 저항’을 통해 살아남으려 발버둥 친 인물의 생존기다.


사실 난 제목 때문에 오해했던 독자 중 한 명이다. 건강 때문에 거의 채식 위주로 먹으면서도 채식 자체엔 관심이 없어서 오랫동안 이 책을 미뤘었다. 읽고 나서 생각하니 그 선택이 너무 아쉽다. 





읽는 동안, 마음이 서서히 바스러지다


이야기는 영혜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진행되지만, 그녀는 작품 내내 자신의 목소리를 거의 내지 않는다. 독자는 그녀의 변화와 행위를 주변 사람들(남편, 형부, 언니)의 시선으로만 접하게 된다.


그녀를 관찰하는 동안 한국 사회에 팽배한 크고 작은 억압과 강요, 유무형의 폭력들이 때로는 조용하고 차분하게, 때로는 기괴하고 강렬하게 눈앞에 펼쳐진다. 


우리가 어릴 때부터 평소 표현하지 못했던 감정은 언젠가 ‘몸’으로 드러나게 마련이다. 개인에 따라 멘탈의 강도에 차이가 있겠지만 그래봐야 결국 사람, 갭은 그다지 크지 않을 것이다. 


<채식주의자>를 읽으며, 한국에서 사는 동안 내 안의 억눌렸던 감정들을 보듬게 되었다.






<채식주의자>가 나에게 던진 질문



우리는 언제부터 남과 스스로를 억압해왔나?

‘정상‘이라는 기준은 누가 정하는 걸까?

어디서부터 ‘비정상‘일까?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저항이 왜 타인의 눈에 마뜩잖게, 아니꼽게 보이는 걸까?



<채식주의자>는 위의 질문들을 내게 던졌다. 물론 말로 직접 설명하지 않고, 그저 이야기로, 장면으로, 문장이 주는 생각의 여백으로 말이다.


그래서 더 아프게 더 무겁게, 더 오래 여운이 남는 것 같다.





이런 분께 추천해요


한강 작가의 작품을 딱 하나만 읽겠다는 분

본인이 사회 부적응자라는 생각에 고통받는 분

여운이 길고 깊게 남는 소설을 찾는 분

문장을 하나하나 곱씹으며 읽기를 선호하시는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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