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레이] 작전명 발키리
브라이언 싱어 외 감독, 톰 윌킨슨 외 출연 / 20세기폭스 / 2009년 6월
평점 :
품절


어느 한 장교의 독백과 불발탄

2차 세계대전 당시 북아프리카 튀니지 전선의 어느 독일군 막사에서 한 장교의 독백이 들려온다. 독백의 주인공인 슈타우펜베르크 대령(톰 크루즈)은 히틀러가 독일 국민에게 약속한 미래가 허상이며 오히려 총통과 그의 이너서클의 반 인륜 행위로 인해 독일의 명예가 먹칠이 아니라 피칠갑을 당하고 있음을 고백한다.

그리고 그는 독일 내의 대부분이 이러한 진실을 외면하고 있음에 안타까워한다. 이어 변화의 필요성을 절감하며 무언가를 행하려 하지만 불의의 공습을 당한다....

한편, 동부전선의 스몰렌스크(러시아)에선 시찰 온 히틀러를 암살하기 위한 작전이 시도되지만... 안타깝게도 술병으로 위장한 폭탄이 불발된다. 운이 좋게 술병을 회수하여 숙청의 피바람은 피했지만 그들의 의지는 굽힐 줄을 모른다.

베를린 밖에서 믿을 만한 인물을 물색하기로 한 그들의 레이더에 공습으로 왼쪽 눈과 오른손 그리고 왼손의 두 손가락을 잃고 가까스로 살아남은 슈타우펜베르크 대령이 잡히는데... 과연 그들의 운명은?

검은 오케스트라

2차 대전 당시 독일인 중에는 나치에 저항한 양심적인(?) 이들이 많았다. 실제 나치 정권 수립 후 당시까지 십 수회에 달하는 히틀러 암살 시도가 이를 증명한다. 오늘 소개할 영화 <작전명 발키리>(2008)는 1944년에 있었던 히틀러 암살 미수 사건 '검은 오케스트라'를 소재로 삼았다. 역사가 이미 스포를 한 셈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극적이라 평가받은 작전인 만큼 끝까지 몰입할 수 있었다.

브라이언 싱어 X 톰 크루즈

제작비만 비교적 적을 뿐이지 감독부터 배우들까지 휘황찬란하다. 우선 '엑스맨 시리즈' 이전 전설이 된 스릴러 <유주얼 서스펙트>(1995)를 연출한 브라이언 싱어에게 메가폰을 맡겼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평타 이상은 기대할 수 있다. 거기다 주연부터 조연까지 구멍 없는 배우진의 쫄리고 쫄리는 연기 대결을 감상할 수 있다. 말 그대로 초반 일부만 빼면 보는 내내 아주 그냥 쫄깃쫄깃하다.

참고로 화려하거나 통쾌한 액션씬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의 스릴을 만들어낸 스탭과 배우들에게 감사하고 싶다. 톰 크루즈야 말이 필요 없는 배우다. 톰이 연기한 슈타우펜베르크 대령의 차분한 모습이 실제 인물과 반대라는 유족들의 지적이 있었지만 극의 긴장을 생각하면 배우와 감독의 선택이 더 현명하다고 생각한다. 어디까지나 이건 다큐가 아니라 상업 영화니까.

톰 크루즈 외에 올브리히트 장군으로 분한 빌 나이의 연기도 인상적이다. 특히 우유부단함을 표현하는 장면에선 그의 눈빛과 표정을 보고는 나도 모르게 주먹을... 그리고 히틀러를 연기한 데이빗 벰버를 보고는 싱크로율이 너무 높아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ㅎ

그들의 계획이 틀어지는 과정을 보면 어느 정도 고증을 한지 모르겠지만 사실이라는 가정하에 너무나 안타깝다. 그때 히틀러가 죽었다면 어땠을까? 아마 쿠데타의 성공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서방과의 휴전은 극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을까?

독재자(국가)와 국민

이 영화를 보고 현재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독재자의 존재와 국민 의식. 왜 어느 나라는 국민이 목숨을 걸고 독재자를 쫓아내고, 어느 나라는 그것을 받아들이는지 말이다. 사실 멀리 갈 것도 없다. 남과 북을 보라. 과거 한국도 그렇고 최근의 우크라이나(유로마이단)를 봐도 나라가 잘 살고 못 살고의 문제도 아니다.

나에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 모두 친구들이 있다. 우크라이나의 친구들은 당연히 침략을 당한 쪽이니 대부분이 정부를 신뢰하고 힘을 싣고자 한다. 흥미(?) 로운 쪽은 러시아 친구들이다. 그들은 대개 둘로 나뉜다. 전쟁에 1도 관심이 없거나 온라인 상에 Z표식을 퍼 나르며 정부와 군대를 지지하는 식이다(물론 겉으로 표현하지는 않지만 반전을 원하는 이들도 있긴 있을 것이다). 그들은 전 세계가 러시아를 잡아먹으려 한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그 말을 듣고는 놀랐다.

그중 가장 오래된 친구 한 명은 전쟁 이전에는 너무나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친구였다. 고등교육을 받고 어릴 적부터 미국 및 서방의 대중문화를 즐겼다. 성인이 되어서는 국제변호사로 일하며 한국을 포함 다양한 나라를 여행한 친구였다. 그런 친구조차 후자의 반응을 보이다니...

솔직히 머리로는 이런 일로 친구 관계를 끊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내 감정은 의식적으로 거리를 두고 있음이 느껴진다. 그래서 너무 슬프다. 물론 여전히 안부를 물으며 지낸다. 어찌 되었든 난 이번 사태로 어느 때보다 러시아 국민들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추후 그들의 선택이 너무도 궁금하기 때문이다.

히틀러의 독일과 푸틴의 러시아

영화 리뷰하다가 옆길로 새 버렸다. 아무튼 결국 독일은 최악의 전범국가라는 오명을 지금의 긍정 이미지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 모르긴 몰라도 이 영화처럼 당시 독일의 명예와 인류애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인물들이 독일인에게 끼친 영향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 러시아는? 수십 년 후 러시아는 우리에게 어떤 모습일까? 쿠데타나 혁명의 성공 여부를 떠나 이 영화 속 인물들과 같은 이들이 나오기나 할까? 난 그것이 궁금해서 매일 관련 뉴스에 귀를 기울인다.

그들과 같지 않음을...

다시 영화로 돌아와서... 영화 속에선 다음과 같은 대사가 여러 번 나온다. "We have to show the world that not all of us were like him." 그래도 독일인 전체가 그들(히틀러&이너서클)과 같지는 않았음을 세계에(넓게는 그들의 후손에게도) 보여줘야 한다는 것. 성공 가능성을 떠나 목숨을 걸고 암살 시도를 하는 이유를 너무나 멋지게 설명한 대사다.

마무으리

굳이 역사를 몰라도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영화를 나름 즐겨 보는 분들에겐 익숙한 배우들이 많이 나와서 배우들을 기억하는 부수적인 재미도 얻을 수 있다(나만 이게 재미있나?;;). 작전이 종료되며 부대들이 철수하는 장면부터 마지막까지는 알 수 없는 답답한 감정에 휩싸인다. 하지만 마지막에 나오는 글귀들과 지금의 독일의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가슴 한편이 따뜻해 짐을 느꼈다.

총알이 난무하고 포탄이 빗발치는 전투를 기대하는 분들 빼고 담백하고 차갑지만 가슴 한편이 뜨거워짐을 원하는 분들께 추천한다. 별 5개 만점에 다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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