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트레이드 센터
올리버 스톤 감독, 니콜라스 케이지 외 출연 / 파라마운트 / 2007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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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의 추억

나에게 처음으로 각인 된 테러는 9/11이었다. 그 순간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독서실의 지하 식당에서 라면을 먹으며 티비를 보던 그 순간. 지금은 너무도 유명한 그 충돌 장면이 계속해서 보도되고 있었다. 그전까지 테러란 단어는 마치 다른 세상의 것이었기에 그 충격이란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였다. 물론 당시엔 전혀 몰랐다. 이후 테러가 이리도 친숙한(?) 단어가 될지 말이다.

카불 공항 테러 소식을 접했다. 어느 테러가 잔혹하고 안타깝지 않겠냐만... 접할 때마다 진짜 징한 쉐킷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것도 알고리즘의 영향일까? 관련 기사를 구글과 유튜브로 몇 건 검색했을 뿐인데 넷플릭스에 <월드 트레이드 센터>(2006)가 추천으로 떴다. 예전에 보려고 했다가 좋아하는 배우들이 나옴에도 불구하고 평이 너무 좋지 않아서 패스했었다. 이번엔? 나도 모르게 재생 버튼에 손이 갔다.

폭풍전야의 무게감

영화는 테러 당일 아침, 이전과 다를 것 없던 뉴욕의 일상을 담담하게 비춘다. 꽤 많은 재난 영화들이 이런 클리셰를 반복한다. 하지만 이건 확실히 다른 느낌이다. 실화 기반, 그것도 나와 동시대에 일어난 사건이기에 폭풍전야의 그 무게감이 훨씬 크게 다가왔다.

극은 구조 작업 지원을 나갔던 두 항만 경찰국 직원 존 맥클로린(니콜라스 케이지)과 윌 히메노(마이클 페냐)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두 인물은 당시 18번째와 19번째로 구조된 생존자다. 충격적인 사실은 당시 구조된 인원이 단 20명이란 것...

정확한 대사는 기억나지 않지만, 구조대원 중 한 명이 '그 많은 사람이 다 어디 갔느냐'며 한탄하는 장면이 나온다. 총 구조 인원을 알고 다시 생각하니 당시 그 말을 한 이의 심정이 더욱 절박하게 다가온다. 그 많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단 스무 명이라니... 이 수치는 당시 사고 현장이 얼마나 참혹했는지를 여실히 증명한다.

왜 경찰 생존자만 다룬 거야?

영화에 대해 혹평을 하는 주된 이유를 보니 우선, 왜 많은(?) 생존자 중 경찰의 케이스만 다뤘냐는 거고 또 하나는 주인공 둘이 영화 시작 30분부터 끝까지 누워만 있다는 것이다.

첫 번째 의문의 정확한 이유야 제작진이 아닌 이상 알 수 없지만 이해 못 할 정도는 아니다. 이런저런 다양한 피해 또는 생존 케이스를 다 다루려면 다룰 수도 있겠지만 그러다 보면 필연적으로 이야기가 끊길 수밖에 없다. 옴니버스 영화나 다큐를 만들 게 아니라면 그걸 보완하기 위해 인물들 간에 픽션을 추가해야 하는데 그럼 이 작품을 만드는 의미가 있을까 싶다.

그리고 일반 생존자들 중에 증언을 거부했을 가능성도 있다. 영화 제작은 사고 후 고작 4년이 지난 시기였다. 누가 그 지옥 같은 순간을 생생하게 떠올리고 싶을까? 오히려 잊고 싶어도 자꾸만 떠올라서 더 고통스럽지 않을까? 그럴바엔 차라리 죽음을 무릎쓰고 현장에 뛰어든 영웅적이고 모범적인 이들에 집중하는 게 현명한 방법이 아닐까.

게다가 이건 EBS 교육방송이나 국민 계몽 영상물이 아니고 상업 영화다. 스토리와 흥행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런점에서 필자는 감독의 선택이 도덕적이거나 정의로운지까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현명했다고 생각한다.

배우들이 날로 먹었다?

두번째로 많았던 혹평의 이유는 주연 배우들이 거의 대부분을 누워만 있었다는 거다. 아마 그 분들은 재난영화 특유의 스펙타클한 액션을 원한 분들 같다. 만약 그렇다면 그 분들의 아쉬움이 충분히 이해간다. 하지만 그게 별점테러(테러 영화에 테러라니...)의 명분이 되는가에는 동의가 어렵다.

혹시 영화를 볼 예정이신 분은 미리 알고 계시길 바란다. 이 영화는 박진감 따위는 없다. 단순하게 말해 약 2시간 동안 두 주연 배우의 가족과 동료가 되는 간접 체험을 하게 될 뿐이다.

마무으리

물론 영화적으로 엄청난 대작이라 할 순 없다. 하지만 네이버 평점 6.5~7점 정도의 푸대접을 받을 만한 작품은 아니다. 최소한 8점 이상은 받아야하지 않을까. 모르고 보면 올리버 스톤 감독의 작품인지 전혀 모를 정도로 (정치적으로)담담한 연출이 영화를 더 잘 살린 것 같다(아니나 다를까 애초에 올리버 스톤은 정치 스릴러를 구상했다고...;;;;).

후반부에 약간 오글거리는 부분이 나오지만 이 정도 쯤이야~! 만약 우리나라에서 9/11 같은 테러를 당했다고 생각하면 영화 제작시 몇 십배에 달하는 신파를 담지 않았을까?

니콜라스 케이지, 마이클 페냐, 매기 질렌할 등 배우들의 열연이 돋보인다. 그냥 그들의 연기만 따라가도 충분하다. 성향이 각기 다른 두 가족의 기다림을 필자는 2시간 내내 가슴 졸이며 함께했다. 두 인물에 대한 배경지식 없이 봤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혹시 둘 중 한 명은 죽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마지막까지 조마조마했다.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

지금까지도 난 목숨 걸고 구조 작업을 하는 훌륭한 분들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 장담하는데 난 절대 그렇게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또한 안다.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는 것을. 인간은 특정 한계 상황에 도달할 경우 테러리스트가 될수도, 영웅이 될 수도 있다.

사람은 환경을 만든다

환경이 사람을 만들지만 사람은 환경을 만들 수 있다. 그러니 사회 구성원들이 테러리스트나 범죄자가 나올 수 있는 상황을 줄이도록 노력해야한다. 2차대전의 독일과 일본의 참혹한 만행이 과연 상부 극소수의 인물들로만 가능했을지 생각해볼 일이다.

노파심에 말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용서해야 한다는 게 아니다. 죄는 죄다. 사람은 미뤄하지 말아야 하지만 죄는 확실히 철저하게 미워해야 한다. 적절한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는 말이다. 9/11 테러에 관심이 있는 분이나 최근 삶의 의욕이 없어 힘드신 분들께 추천드린다. 아마 삶에 대한 욕구가 샘솟을 것이다. 별 다섯개 만점에 넷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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