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재발견 수필 쓰기 새로운 글쓰기의 보고 세상 모든 글쓰기 (랜덤하우스코리아) 9
이정림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소설이나 시와 비교해 수필은 진입장벽이 낮다는 인식이 있다. 일상의 경험을 규칙에 얽매이지 않고 펜 가는 대로 쓴다는 느낌이다. 나 역시 수필 하면 떠오르는 문장이 '무형식의 형식'일 정도로 만만하게 봤다. 하지만 이 책 <인생의 재발견 수필 쓰기>(2007, 랜덤하우스코리아)에서는 정반대의 이야기를 한다.

생활에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은 결국 사색하는 삶을 산다는 뜻이다. 사색이 동반되지 않는 소재의 나열은 신변잡기에 지나지 않는다. (중략) 따라서 수필은 그 어느 장르보다 철학 성을 요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철학조차 '붓 가는 대로' 쓴 것처럼 자연스럽게 글 속에 용해시켜야 한다. - 19p

책에 따르면 수필은 펜 가는 대로 자유롭게 쓰는 글이 아니라 펜 가는 대로 자유롭게 쓴 것처럼 써야 한다. 절제된 언어의 채택, 감정의 여과로 필자의 품위를 지켜야 하며, 본인의 철학과 사상을 일상의 소재를 빌어 글에 녹여낸다. 주제(메시지, 소재의 의미)의 경우 독자를 가르치려 하기보다 스스로 깨닫게 해야 한다. 이렇듯 수필을 작성하는 데 여간 신경 쓸 것들이 많다.

'나도 한번 써볼까?' 하며 가볍게 펼친 책의 팩폭 퍼레이드에 된통 혼이 났다. 덕분에 수필 쓰고 싶다는 생각이 쏙 들어갔다. 다만 수필이 무엇인지,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대한 윤곽 정도는 잡을 수 있었다.

소재는 우리의 생활 속에서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다만 같은 소재라 해도 그것을 발견할 수 있는 눈을 가진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것을 그냥 지나쳐버리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 99p

수필 작가는 자신의 철학을 일상의 소재에 빗대어 문학적으로 표현해야 한다. 고로 사유와 철학이 빈약한 이는 수필 쓰는 과정에 애로 사항이 만발할 수 있다. 그러니 수필을 쓰고자 하는 분들은 평소 자신의 일상을 집요하게 관찰하고 깊이 사유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체험 중에서 글감이 되는 것을 선택하는 것은 쓰는 사람의 안목(작가 정신)에 속한다. 또한 그 소재를 어떻게 형상화하고 어떻게 그 소재에 의미(주제)를 부여하는가 하는 것은, 작가가 평소에 지니고 있는 철학과 사상에 달린 문제라 할 수 있다. - 100p

다 좋다. 그런데 작가의 품위를 이유로 들며 유학내 풀풀 나는 양반 스타일의 글을 써야 한다는 설명에는 가슴 한편에 반항심이 솟구친다. 글이 좀 점잖지 못하고 장난스럽거나 삐딱하면 어떤가. 이에 대해 호불호를 따질 순 있어도 시비를 가릴 일은 아니지 않나. 뭐 물론 '그러니깐 그게 수필이라고!!'라 하면 어쩔 수 없고.ㅋ 그냥 내 식대로 쓰고 말지……. 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 절제미와 소박함이 수필의 매력 중 하나인 거 인정. 난 그저 그런 점 때문에 수필이란 장르가 갈수록 사람들에게서 멀어지지나 않을까 걱정됐을 뿐이다.

향기가 있되 진하지 않고, 소리가 있되 요란하지 않으며, 아름다움이 있되 천박하지 않은 글, 이것이 바로 수필인 것이다. - 23p

수필의 문장에서는 감정이 여과되어야 한다. 미움, 증오, 분노, 슬픔, 기쁨 같은 감정이 원색적으로 글 속에 드러나면 글은 품위를 잃는다. (중략) 그런 원색적인 단어를 사용하지 않아도 전편에 슬픔과 고독이 절절하게 배어 나오도록 쓰는 것이 뛰어난 묘사법이다. - 96p

여튼 책은 좋다. 수필이 무엇인지 궁금한 분에게 강추. 별은 넷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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