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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ㅣ 패러독스 1
피에르 바야르 지음, 김병욱 옮김 / 여름언덕 / 2008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저자인 피에르 바야르는 독서에 관한 우리의 일반적인 두려움. 그러니까 독서를 해야 한다는 두려움과 책을 펼쳤으면 정독을 해야한다는 두려움, 그리고 정독을 했으면 그 책의 내용을 정리해서 말할 줄 알아야 한다는 두려움을 덜어주고자 한다. 사실 한국인에겐 이 두려움들이 정도를 넘어 거의 죄책감 수준으로 다가올 것이다. 나만 그런가?
학습공간은 완전한 읽기가 가능하다는 환상 속에서, 학생들이 질문을 받거나 자신들의 견해를 표명하는 그 책들을 과연 실제로 읽었는지 읽지 않았는지를 알아내는 데 총력을 기울이는 폭력의 공간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읽기는 참과 거짓의 논리를 따르지 않으므로, 모호성을 걷어내고 과연 그들이 진실을 말하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확실하게 평가하려는 것은 부질없는 환상이다. - 173p
책 속에서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팁을 알려주기는 한다. 다양한 상황들을 예로들며 친철하게 대처 요령을 설명한다. 하지만 저도 모르게 마빡을 후려칠 만한 참신한 팁은 없다. 그보다 책을 읽지 않은 것에 대해 당당할 수 있는 정당성(?)을 부여해준다. 저자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진정한 교양인이 되기 위해서는 되려 정독을 지양할 것을 권한다.
교양이 있다는 것은 어떤 책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신속하게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며, 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책을 다 읽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다. 그런 능력이 뛰어날 수록 문제의 책을 읽을 필요성이 덜해진다고도 말할 수 있다. - 36p
훑어 보기를 통한 전체(숲)의 총제적 시각화 VS 특정 분야(나무)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 넓고 얉은 지식을 가진 제너럴리스트나 특정 분야의 스페셜리스트가 목표가 아닌 이상에야 둘 중 하나를 굳이 선택해야 하는지 의문이다. 평범한 독서가라면 본인이 처한 환경이나 목적에 따라 훑어 보기 또는 발췌독과 같은 방식이 더 현명한 방법이 될 수도 있고, 각 잡고 들입다 파야 하는 경우도 있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이 책의 외부에 있다. 왜냐하면 중요한 것은 담론의 순간이며 책은 그 구실이거나 수단일 뿐이기 때문이다. '어떤 책에 대해 얘기한다는 것은 그 책의 공간보다는 그 책에 대한 담론의 순간과 더 관계가 있는 것이다.' - 211p
중요한 것은 어디까지, 어떻게 읽었느냐가 아니라 그 책에서 무엇을 얼마만큼 얻었느냐다. 긴 시간들여 완독하고는 몇 달 후에 죄다 까먹는 사람이 있는 반면, 발췌독으로 10분의 1 분량만 읽었지만 거기서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문장을 발견할 수도 있다. 그러니 완독에도 목매지 말고 비독서에 죄책감을 느끼지도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