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국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1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유숙자 옮김 / 민음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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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 7p


4년 만에 다시 읽었다. 지난번에는 남주인 시마무라에 집중했지만 이번에는 상대역인 고마코에 더 관심이 갔다. 역시나 이야기에 특별한 굴곡(기승전결)은 없었다. 방송으로 치면 KBS <인간극장>정도? 그래도 감각적인 현실 묘사 외에 인물들이 처한 상황, 관계를 알아가는 재미가 있었다. 4년 전 기억에는 그 유명한 첫 문장과 같은 영화적인 묘사로 가득했지만 다시 읽어 본 바, 그런 부분이 생각처럼 많지는 않았다. 물론 문장들은 여전히 감탄을 자아낸다.

《 국경의 산을 북쪽으로 올라 긴 터널을 통과하자, 겨울 오후의 엷은 빛은 땅밑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간 듯했다. 낡은 기차는 환한 껍질을 터널에 벗어던지고 나온 양, 중첩된 봉우리들 사이로 이미 땅거미가 지기 시작하는 산골짜기를 내려가고 있었다. 이쪽에는 아직 눈이 없었다. 개울을 따라 이윽고 너른 벌판으로 나오자, 신기하게 깎아지른 정상으로부터 완만하고 아름다운 사선이 멀리 산기슭까지 뻗어내린 능선 위에 달이 떠올랐다. 들판 끝, 단 하나의 볼 거리인 그 산의 온전한 모습을 엷게 노을진 하늘이 짙은 남빛으로 선명하게 그려냈다. - 75p 》

거의 매년 한번씩 '설국'에 들르는 시마무라는 도시를, '설국'의 게이샤인 고마코는 작품의 배경이 되는 시골을 상징한다. 부유함, 개인주의, 외로움, 우유부단함은 내가 생각하는 도시의 이미지다. 시마무라는 이런 이미지를 대변한다. 나와 같은 골수 도시인에게 시골이란 어떤 의미일까. 동경은 하지만 살고 싶지는 않은, 나에게 시골은 그런 공간이다. 이번에 읽으면서 든 생각은 시마무라에게 고마코는 '서양무용'과 같은 존재였다는 것이다. 시마무라에게 시골(=설국)과 고마코, 서양무용은 모두 비슷한 존재들이다.

스토리 위주로 감상하는 이는 접근 금지다. <설국>을 읽으려거든, 오감을 깨우는 현실 묘사와 주요 인물들의 관계 및 상황 변화에 집중할 것을 권한다. 별점은 네 개다. 아무리 특별한 매력이 있다 한들 기승전결 부재인 소설은 슈크림 없는 붕어빵이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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